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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공(鄭成功)의 아버지 정지룡(鄭芝龍)은 명나라에 배신하고 청나라에 투항 의사를 밝혔다. 정지룡은 푸젠(福建)성의 수도 푸저우(福州)에 가서 청나라 장군 볼로를 기다렸다. 볼로는 정지룡이 흑인부대를 거느리고 노모, 부인과 함께 온 것을 보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곳곳에서 무장투쟁을 벌이는 아들과 동생들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이 청나라 장군은 짜증을 내고 정지룡을 베이징으로 모시라고 명령을 내렸다. 말이 모시는 것이지, 살제로는 압송이나 다름없었다. 흑인부대와 청군 사이에 약간의 충돌이 있었지만, 정지룡은 포로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어 베이징으로 끌려갔다. 정지룡은 청 장군 볼로의 음모에 속은 것이다.
볼로는 푸젠성의 남은 정씨 세력의 거점인 안해성(安海城)을 공격했다. 그때 정성공은 안해성에 없었고, 그의 생모 다가와가 지키고 있었다. 다가와는 정지룡을 따라가지 않았다.
청군이 공격할 때 다가와는 사무라이 집안의 딸답게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맞지 않았다. 그녀는 칼을 들고 성루에 올라가 병사들과 함께 만주족과 싸웠다. 화염에 쌓인 첨탑에서 다가와의 마지막 모습이 비쳤는데, 그녀는 단도로 자신의 목을 찌르고 아래 해자로 몸을 던졌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정성공은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듣고 정신 줄을 놓았다고 한다. 융무제도 도망을 가다가 사로잡혔다.
모든 것이 무너진 순간, 정성공은 새롭게 일어설 것을 결심한다. 유학을 배운지라, 공자 사당에 가서 제의를 거행하고, 부하들을 불러 모았다.
정성공의 최우선 과제는 아버지의 형제들, 즉 삼촌들의 지지를 얻어 내고, 무역활동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었다. 만주족과 싸우려면 엄청난 군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의 일족들은 가문의 장자인 정성공을 지지했다. 그는 모험적인 사업을 지속적으로 이어 나가며 자금을 모았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와 다르다는 내용의 서신을 거래처에 보냈다. 1648년 정성공은 샤먼(厦門) 근처의 항구 동안(同安) 전투에서 첫 번째 승리를 거두었다.
정성공의 부하 가운데 시랑(施琅)이란 장수가 있었다. 그는 노련한 선장이자 당대 최고의 수군 전략가로 널리 선망을 받는 인물이었다. 정성공보다 두어살 많은 그는 일찍부터 항해술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시랑이 류큐 열도(오키나와 제도)에서 일본으로 은(銀)을 수송하다가 선단이 폭풍우를 만나 막대한 액수의 은을 잃어버린 사태가 발생했다. 정성공은 화를 참지 못하고 시랑을 크게 질책했다. 시랑은 인간으로는 감내하지 못하는 자연재해의 상황이므로 어쩔수 없었다며 항의했다. 정성공은 지나칠 정도로 격앙해 하자, 시랑은 자신의 머리칼을 움켜잡고 탈로 상투를 잘라버렸다. 이는 사의를 표명하는 전통적인 양식이었다. 이일은 나중에 유야무야되었지만, 시랑의 마음속엔 큰 상처로 남았다.
이 사건 이외에도 시랑은 정성공과 자주 다툼을 벌였고 끝내 정씨 상단을 떠나 만주군에 투항해버렸다. 그러자 정성공은 시랑의 아버지와 동생, 조카들을 처형하라고 명하고, 특공대를 보내 시랑을 암살하려 했다.
만주족은 정성공의 푸젠성 본거지를 공격할 모든 방도를 찾았다. 그중 한 방법이 정성공이 유학자로서 높은 평판을 얻고 있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만주족은 유교 덕목중 가장 으뜸인 효(孝)를 자극하며 아버지 정지룡을 앞세웠다.
아버지는 만주족의 지시를 받고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서 아버지는 만주족이 평화협상에 응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며, 청조는 아들이 화평에 응할 경우 영토를 내리고 해징공(海澄公)이란 작위를 내릴 것이라고 꼬였다. 정성공은 남명의 황제에게서 연평왕(延平王)으로 책봉되었지만 고사한 상황이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제안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정지룡은 예의를 갖춰가며 답장을 썼다.
“저들 만주족 오랑캐의 앞잡이가 되신 아버님이 소자에게 높은 훈작이 내려질 것이라 말씀합니다. 하지만 저들이 아버님께 거짓을 일삼고 있는데, 무슨 일로 아버님은 저들이 소자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버지는 설득하고, 아들은 거절하고, 그렇게 8년이 지났다. 정지룡에 대한 만주족의 눈길이 싸늘해 져갔다. 정지룡은 넷째아들 정세도를 푸젠성으로 보냈다. 이복동생인 정세도는 형의 발 아래 엎드려 가문의 안위를 지켜달라고 애원했지만, 정성공은 화를 내며 내쫓았다. 삼촌도 아버지의 지시를 받고 왔지만, 정성공은 물리쳤다.
그 와중에 만주족은 정성공의 본거지를 수시로 공격했지만, 정씨 일가는 지켜냈다. 푸젠성은 정씨 일가의 철옹성이나 다름없었다.
이번엔 정성공이 공격에 나설 준비를 했다.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해안을 거슬러 북상해 양쯔강 하구의 중국 심장부인 난징을 점령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선봉 선단은 정성공이 가장 신뢰하는 감휘(甘輝)가 10만의 병사와 50척의 전함을 이끌고, 우익은 마신(馬信)이, 좌익은 만례에게 지휘를 맡겼다. 총 병력은 16만, 전함만 해도 230척에 이르는 대규모 병력이었다. 여기에는 철인(鐵人)이라 불리는 흑인부대도 참여했다.
정성공 함대의 중원공격은 세 차례에 걸쳐 이뤄진다.
첫 번째 공격(1657년)은 양쯔강 입구까지 진출했다. 이듬해 2차공격은 양산(洋山)이라는 작은섬에서 폭풍우를 만나 돌아왔다. 사망자가 8,000명을 헤아렸다.
세 번째 공격은 1659년에 단행되었다. 그해 4월 정성공은 모든 병력을 동원해 북상했다. 8월에 정성공 함대는 양쯔강 입구 진강(鎮江)에 도달해 성채를 점령했다. 곧이어 파주를 손에 넣는다. 이제 난징을 공격할 차례였다.
여기서 정성공은 성격상 약점이 드러난다. 그는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성격이었다.
파주성의 적장은 주의좌(朱衣佐)는 정성공이 유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을 알고 고향으로 돌아가 연로한 부모님을 돌보게 해달라며 500냥을 바쳤다. 정성공은 그를 풀어주었다. 주의좌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난징으로 가 수비대를 편성하는데 참가했다.
정성공의 부대는 난징으로 향했다. 여기서도 적장은 속임수를 썼다.
남경도독 낭정좌(郎廷佐)는 정성공에게 아첨으로 가득찬 항복문서를 보내고 세상의 이목이 있으니, 저항하는 흉내를 낼 터이니 30일간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한족 출신인 그는 만주족이 30일은 싸워야 충성을 이해한다고 둘러댔다.
정성공은 이 말을 또 믿었다. 그의 책사가 계략임을 간파하고 충언을 했지만 정성공은 책사를 질타했다. 정성공의 군대는 기강이 느슨해졌다. 적진에선 어떠한 저항의 낌새도 보이지 않았고, 군사들은 성 주변을 어슬렁거리거나 성벽을 둘러싼 해자에 낚시를 하기까지 했다. 술병을 차고 보초를 서는 병사도 있었고, 아예 만주족 진영으로 탈주하는 자들도 나타났다.
그러던 중 정성공의 생일이 가까워왔다. 진중에서 그는 잔치상을 마련토록 했다. 생일을 며칠 앞둔 어느 시점에 적병은 성벽 아래로 낸 지하통로를 통해 쏟아져 나와 정씨 군대를 덥쳤다. 정성공은 서둘러 퇴각하라고 명을 내렸다. 그런 가운데 북쪽에서 대규모 청군이 새카맣게 밀려 내려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만주병들이 정씨 군대를 공격하자 진중에선 대혼란이 벌어졌다. 시간을 더 이상 끌수 없었다. 정성공은 울며 겨자먹기로 전면철수를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 10년간 준비한 난징 공격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었다.
베이징에선 한때 정성공의 부하였다가 항복한 황오란 자가 청조가 정성공에게 주기로 한 해징공이란 직책을 얻어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순치제가 그를 불렀다. 정씨 군대를 박멸할 아이디어를 내라는 것이었다.
황오는 정성공을 너무나도 잘 알있다. 그는 정성공을 멸할 방도를 제시했다.
첫째, 아버지 정지룡을 처형해 정성공이 일족과의 관계를 차단하라는 것이다. 둘째, 정씨 가문의 선산을 파괴할 것, 셋째, 투항자에게 두둑한 보상을 내릴 것. 순치제는 여기까지 시큰둥했다.
네 번째 황오의 계책은 해금령(海禁令)이었다. 황오의 지론인즉, 정성공의 힘이 바다에만 있는 게 아니라, 육지에도 있다는 것이다. 정씨 가문은 내륙에 있는 비밀동맹 세력의 물자 공급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해안을 차단하면 세력이 약해진다는 주장이다. 명조가 왜구의 침입을 차단하기 위해 취했던 해금령을 정씨 세력에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오의 네 번째 아이디어에 순치제의 눈이 번쩍 뜨였다. 청 황제는 중국 해안의 바닷가 전체를 둘러싸 경계하고 해안에서 50여km 이내 육지에는 아무도 살지 못하게 한다는 칙령을 내렸다.
해금령은 단기적으로 정성공에게 이득이 되었다. 주민들이 떠나간 자리에 식량 등 남아있는 모든 것을 쓸어 담았다. 바다에서 생활한 일부 주민들은 내륙으로 들어가지 않겠다며 대만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정성공은 이들을 배로 실어 푸젠성 건너 대만으로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해금령은 효과가 나타났다. 황오가 옳았던 것이다. 정성공의 해상 세력은 내륙의 비밀 조직과 연락이 끊기고 물자공급이 두절되었다. 팽호도(澎湖島) 등 주변의 몇몇 섬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론 대선단을 꾸려나가지 못할 상황이 되었다.
드디어 정성공은 대만으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곳에 정착하려면 네덜란드인들이 자리를 비켜주어야 했다. 네덜란드와의 전투는 불가피했다.
1661년 4월 21일 정성공의 대만 원정함대는 푸젠을 떠났다. 규모는 전함 900척, 병력 2만5,000명.
정씨 함대는 쉽게 팽호도를 점령했지만, 젤란디아 요새의 네덜란드 군은 완강하게 버텼다. 병력수는 정씨측에서 10배 이상이었지만, 젤란디아 성은 요새인데다 네덜란드군은 현대식 포대를 갖추고 있었다. 전투는 무려 9개월을 끌었다. 해를 넘겨 1662년 2월 1일 지친 네덜란드 군이 평의회 의결을 거쳐 마침내 항복문서에 조인했다. 네덜란드 군인들이 무장한채 깃발을 흔들고 북 소리와 함께 영광스럽게 철수하는 조건이었다.
정성공은 또 들어주었다. 하지만 네덜란드인은 만주족에 투항한 한족 장군처럼 속이지 않았다. 네덜란드인들이 떠나자 정성공은 적감성(赤嵌城)으로 들어가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
대만에서 나라를 세운 직후 정성공은 이내 지병으로 숨졌다. 그때 나이 39세. 아버지 정지룡은 한해전 아들을 설득하지 못한 죄로 청조에 의해 능지처참형에 처해졌다.
정성공의 나라는 아들 정경에(鄭經)게 넘어갔고, 정경이 20년간 대만을 통치하자 죽게 되자, 청조 강희제가 더 이상 대만을 내버려둘수 없다며 침공해 점령했다. (1683년) 그 때 앞장선 장군은 정성공을 배신하고 떠난 시랑이었다. 청조는 1684년 대만을 푸젠성에 예속시키고 부(府)로 격하했다.
정성공이 개척한 대만은 1908년 청일전쟁의 전리품으로 일본에게 넘어갔다가 1945년 일본이 패망하면서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다. 그후 1848년 장제스의 국민당 군대가 모택동의 공산군에게 밀려 대만으로 건너와 국민당의 나라를 세웠다.
정성공은 일본인들도 받들고, 대륙의 중국 공산당과 섬으로 도망친 중국 국민당도 추앙하는 인물이다. 일본인들은 정성공의 어머니가 일본인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중국 공산당은 제국주의 침략자들을 물리첬다는 점을, 국민당은 대만을 새로운 양토로 개척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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