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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지리
독립 유지 위해 소련에 종속…우크라이나 국민이 선택할 몫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 바람직한가
2022. 02. 10 by 박차영 기자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가 국제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이 방안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오가며 분쟁을 중재하고 있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7일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 가능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고려되는 선택 중 하나"라고 말하면서 수면 위에 떠올랐다. 그런데 다음날, 마크롱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만나서는 그런 얘기를 부인했다. 우크라이나의 반발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핀란드화(Finlandization)란 용어는 1960년내와 1970년대에 독일의 정치인들이 외교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경멸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당시 친미적인 프란츠 요제프 스타라우스 기독사회당 대표가 사민당의 동방정책을 핀란드화라고 조롱하듯 표현했다. 핀란드가 취한 동방카드(East Card) 정책이 소련에 종속된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도 유럽과 일본이 소련에 경도되는 것을 우려했는데, 이를 핀란드화란 표현을 썼다.

핀란드인들은 서방국가에서 거론 핀란드화란 용어를 약소국이 살아나가기 위한 현실적 대안이라고 받아들인다. 소련의 팽창주의가 우려되는 시기에 약소국인 핀란드가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친소적 정책을 어쩔수 없이 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강대국 주변에 있는 약소국의 필연적 선택이다. 1차와 2차 대전 시기에 덴마크와 스위스가 독일에 편향적인 입장을 취하며 독립을 유지한 것도 비슷한 논리다. 태국이 18세기 중엽에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중립적 입장을 취하고, 2차 대전 때에 일본에 버마 공격로를 열어준 것도 생존의 논리였다.

 

핀란드의 위치 /위키피디아
핀란드의 위치 /위키피디아

 

핀란드화는 그 나라가 역사의 경험에서 터득한 결과였다.

핀란드인들은 오랫동안 스웨덴 영토에 속해 있다가 19세기초에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핀란드 대공국은 러시아와 별도의 국가였지만 군주가 동일한 형태로 러시아에 종속되었다. 러시아 지배하에서 핀란드 민족주의가 고양되었다.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으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하자, 핀란드는 독립을 선언했다. 러시아의 권력을 장악한 볼셰비키도 핀란드를 제압할 여력이 없어 독립을 승인했다.

독립후 핀란드에선 적백 내전이 벌어졌는데, 백군은 독일의 지원을 받아 승리했다. 193911월에 소련의 스탈린은 군대를 동원해 핀란드를 침공, 이른바 겨울전쟁을 벌였으나, 핀란드는 영토의 일부를 떼주고 소련과 강화조약을 맺었다.

2차 대전이 확대되어 독-소전쟁이 벌어지자, 핀란드는 독일 편에 서서 잃어버렸던 영토를 되찾았으나,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연합국측으로 돌아섰고, 수복했던 땅도 연합국의 일원이었던 소련에 돌려주었다.

지금 논란이 되는 핀란드화는 2차 대전 이후의 상황이다. 동서 냉전이 격화하면서 핀란드는 이웃 소련의 침공 가능성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1948년 소련과 협정을 체결했다. 협정에 의하면 핀란드는 독일과 그 동맹국의 공격에 저항할 의무가 있었고, 필요하다면 소련의 힘을 빌릴 수 있도록 했다. 또 이 협정에 의해서 핀란드는 중립 국가가 되었다. 이 때문에 핀란드는 미국의 마셜플랜에 참여하지 않았고, 소련의 대외 정책에 대해서도 중립을 취했다. NATO는 물론 바르샤바 조약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1991년 소련이 붕괴된 이후 핀란드는 서방과 좋은 관계를 맺었다. 1994NATO와 평화우호조약을 체결하고, 1995년에 EU에 가입하고 유로를 통화로 사용하고 있다. 친서방 정책으로 돌아선 것이다.

 

우크라이나도 핀란드와 비슷한 역사의 궤적을 밟았다. 우크라이나도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에 백색 세력에 의해 독립정권이 들어섰으나 볼셰비키주의자에 의해 장악되어 소련 연방에 편입되었다. 그후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련 해체 당시에 압도적인 표결로 독립을 선언하고 친서방정책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핀란드의 경우와 다른 점은 러시아와 같은 슬라브족이란 사실이다. 러시아가 벨라루스와 함께 슬라브족의 배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2014년 크리미아 반도 사건이 발발했을 때 헨리 키신저, 즈비그뉴 브르제진스키 등 미국의 내로라는 외교전문가들이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를 제안했다.

정작 핀란드인들은 우크라이나에 핀란드화를 권하지 않고 있다. 핀란드인들은 소련 시절에 자유를 제한한 경험을 생생하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핀란드화 정책이 추구되던 시절에 핀란드 도서관에 반소련적 서적이 퇴출당했고, 언론에서 반소적 표현이 제거되었다. 법적으로는 언론·출판의 자유가 있었지만, 보이지 않게 정부가 소련에 반하는 사회적 흐름을 금지시켰고, 사회 지도층들이 그런 분위기를 자제했기 때문이다.

핀란드화를 채택할른지 여부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선택해야 할 몫이지, 프랑스 대통령이 결정할 일은 아니다. 독립을 위해 스스로 자유를 제한당할 것인지 여부는 자결권에 해당하는 일이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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