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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침략 전에 조선, 류큐, 필리핀, 태국, 타이완, 인도 고아에 서한 보내
300년 후에 계승된 히데요시의 야심
2022. 02. 21 by 김현민 기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우리 역사에서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침략자의 우두머리로 인식되지만, 일본인들에겐 열도를 통일하고 아시아를 제패하려 한 동양의 나폴레옹과 같은 존재다. 300여년 후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조선을 집어삼키고 중국을 침략하고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으로 질주한 그 무모함도 도요토미의 야심을 되풀이한 것이다.

도요토미는 16세기말에 그가 알고 있는 세계를 제패하려는 야욕을 가졌다. 당시 미국은 없었고, 유럽이 아시아로 발을 들여놓고 있었고, 세계 최강국은 중국이었다. 그는 중국과 그 주변의 국가들에게 자신의 꿈을 전달했다. 그 주변국에는 조선은 물론 류큐(오키나와), 마닐라(스페인), 타이완, (태국), 인도 고아(포르투갈)이 포함된다.

 

도요토미는 자신이 태양의 아들로 하늘이 내린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일본국 관백(關白)이었던 그는 조선 국왕에 올린 글에서 일찍이 어머니가 나를 잉태할 때에 해가 품 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는데, 점쟁이들이 햇빛은 비치지 않는 데가 없으니 커서 필시 팔방에 어진 명성을 드날리고 사해에 용맹스런 이름을 떨칠 것이 분명하다고 해몽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조선 임금에게 웬 뜸금없는 소리를 했을까. 그 이유는 그 다음에 설명된다. 히데요시는 이렇게 기이한 징조로 인해 나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자는 반드시 멸망하고, 나는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공격하면 반드시 상대방의 것을 빼앗았다고 했다.태양의 아들이므로 백전백승한다는 신화를 늘어놓으며 상대방의 기를 꺾겠다는 의지다. (수정선조실록 2431)

그는 필리핀의 스페인 식민당국 총독에게도 비슷한 표현을 썼다. “나는 신묘한 전조(前兆)를 갖고 태어났다. 점술가들은 이 전조를 내가 열국을 다스릴 운명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 예언은 성취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위키피디아
도요토미 히데요시 /위키피디아

 

히데요시의 자기도취는 자신의 목표가 중국에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는 일이었다. 그는 이런 계획을 중국의 명나라는 물론 중국의 조공국이었던 조선, 류큐, 서양의 식민당국이었던 마닐라의 스페인, 인도 고아의 포르투갈에게도 통보했다. 동남아의 패권을 쥐고 있던 태국 아유타야 왕국에도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히데요시는 일본 남쪽에 중국에 조공하던 류큐에도 알렸다. 당시 류큐(琉球)는 일본 막부(幕府)에 충성하지 않고 있었다.

임진왜란 발발 2년전인 1590228일에 히데요시는 류큐의 국왕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오래 전부터 외국 나라들을 나의 지배 아래에 두고 그 민족들이 나의 자비로운 통치와 보호를 누리게끔 하는 포부를 품어 왔다고 말했다. 그러니 류큐도 복속하라는 것이었다.

 

히데요시는 또 마닐라를 점령해 아시아 식민지 거점으로 삼던 스페인 총독에게도 편지를 보냈다. 편지는 1591년에는 마닐라를 왕래하는 일본 상인 하라다 마고시치로를 통해 전달되었다. 고메스 페레스 다스 마리냐스(Gómez Pérez das Mariñas) 스페인 총독에게 보낸 1591915일자 히데요시 서신에는 스페인 당국을 겁박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한국과 류큐 그리고 다른 나라들은 조공 사신을 보내어 나에게 경의를 표했다. 나는 지금 중국의 정복을 꾀하고 있다. 이것은 내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하늘로부터의 명령에 따른 행보일 뿐이다. 당신의 나라로부터는 아직 나에 대한 경의의 표시나 조공이 오지 않았다. 이에 나는 당신의 나라를 응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우리의 전선(戰船)들은 당신 나라의 연안으로 항해할 준비가 되어 있다.”

 

히데요시는 1591725일에 인도 고아(Goa)의 포르투갈 총독에게도 서신을 보냈다. 그 서신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내 나라는 이제 세계의 뛰어난 강국이다. 나는 나의 지배를 중국으로 팽창하려고 한다. 우리의 전선과 병사들을 중국으로 보내는 계획이 마무리 되었다. 이것은 곧 실행에 옮겨질 것이다. 중국을 정복한다는 하늘이 내리신 이 사명을 완수한 후에는 당신의 나라에 도달할 길을 쉽게 찾게 될 것이다. 우리의 전선과 병사들은 거리가 얼마나 될지라도 그리고 귀국의 병사들이 어떤 군대일지라도 자신들에 맡겨진 과업을 성취할 것이다.”

 

태국에도 히데요시가 서신을 보냈다고 한다. 그 사실이 태국 역사기록엔 남아 있지 않지만 명나라 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명사(明史) 열전에는 히데요시가 류큐, 필리핀, 시암(Siam) 그리고 포랑지(佛郞機)를 압박해 일본에 조공을 바치도록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포랑지는 명청시대에 중국인들이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람 혹은 그들의 식민지를 가르키는 단어다. 조공을 바쳤다는 것은 과장인 것 같지만 압력을 넣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일본의 연구에 따르면, 히데요시는 대만에도 복종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당시 대만은 네덜란드가 점령하기 전이었다.

히데요시가 대만에 보낸 편지는 조선을 침략한지 1년 후인 1593115일에 작성되었다. 히데요시는 편지에서 현재 조선이 이미 정복되었고 조선을 구하기 위해 파견된 중국의 군대도 패배해 중국이 일본에게 화의를 요청했다. 필리핀과 류큐 왕국도 조공을 보내어 항복의 의사를 밝혔다. 따라서 타이완도 즉시 일본에게 복종의 예를 표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편지를 소지한 사신 하라다(Harada)가 대만에 도착했으나, 당시 그 섬에 중앙 정부나 지역을 대표하는 통치 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전달하지 못했다고 한다.

 

도요토미가 조선 국왕에 보낸 편지는 선조수정실록에 나온다. 그는 조선국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중국이 멀고 산과 강으로 막효 있는 것을 상관하지 않는다. 한걸음에 뛰어 명()나라로 쳐들어가 중국의 400여개 주()에 내 나라()의 풍속으로 바꾸고 중국 황제의 도시(帝都)를 다스리고 교화해(政化) 억만년토록 지배하고자 하는 것이 나의 마음이다. 귀국이 앞장(先驅)을 서서 일본에 입조(入朝)한다면 원려(遠慮)가 있음으로 해서 근우(近憂)가 없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먼 지방 작은 섬도 늦게 입조하는 무리는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명에 들어가는 날 사졸을 거느리고 군영(軍營)에 임한다면 더욱 이웃으로서의 맹약(盟約)을 굳게 할 것이다.”

풀이하자면, 내가 곧 명나를 칠 것인데, 조선국왕이 자신에게 머리를 숙이고 입조하라는 것이다. (수정선조실록 2431)

 

조선 선조는 히데요시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조선은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지 않았다.

히데요시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1590년 초에 휘하 장수들에게 10만 명의 군대를 동원하도록 명령을 내렸고, 그해 중엽에 쓰시마 섬(對馬島) 태수에게 조선의 지세를 탐사하여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선조수정실록 24 51)

 

임진왜란 시 일본군과 명군의 공격로 /위키피디아
임진왜란 시 일본군과 명군의 공격로 /위키피디아

 


<참고자료>

조흥국, 임진왜란에 대한 태국의 실용외교와 중국의 이이제의 외교, 2009, 부산대

국사편친위원회,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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