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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인이 더 이상 울지 않게 하겠다”더니 전쟁의 비극 초래
평화에 매달린 젤렌스키, 돌아온 건 나치 오명
2022. 02. 26 by 박차영 기자

 

그는 러시아인도, 우크라인도 아니다. 그는 부패하고 노회한 정치인 출신도 아니다.

나이 44, 유대인, 전직 코미디언. 이 세 가지 요소로 정계에 발을 디딘지 3~4개월만에 우크라이나의 대권을 차지한 인물이 지금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y) 대통령이다. 그는 기성정치질서에 염증을 느낀 우크라이나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그는 자신의 인기에 취해 부패 척결에 나서고, 러시아와의 평화를 정착시키려 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대통령은 그를 나치의 괴수로 지칭하며 전쟁을 일으켰다

 

젤렌스키 /위키피디아
젤렌스키 /위키피디아

 

젤렌스키는 1978125일 우크라이나 중부 크리비리흐에서 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그곳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후 법조계로 진출하지 않고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17살에 연기자로 입문했고, 19세에 크바르탈95(Kvartal 95)라는 연예기획사를 설립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주연으로 나서 주로 세상을 풍자하는 드라마와 영화를 여러 편 제작했다. 그의 드라마는 모스크바를 비롯해 구소련 공화국들에서 공연되었다.

젤렌스키는 어려서 크리비리흐의 러시아어 동네에서 자란데다 모스크바에서 사업을 했기 때문에 러시아에 우호적이었다. 그가 정치적 의사를 처음 밝힌 것은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가 러시아 영화의 수입을 금지한 문화정책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한 때였다. 당시만 해도 그는 정치를 할 생각이 없었고, 다만 문화의 보편성을 강조하면서 러시아 영상물을 금지하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정책에 항의했을 뿐이다.

그의 영화사가 대박을 친 것은 2015년부터 상영한 국민의 공복’(Servant of the People) 연속극이었다. 젤렌스키가 주연으로 나선 이 드라마는 부패한 우크라이나 사회를 풍자적으로 비판했다. 드라마에서 젤렌스키는 고등학교 역사 선생으로 부패를 척결하는데 앞장서다가 대통령에 출마해 당선되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드라마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면서 시청자들은 젤렌스키에게 진짜로 대통령에 출마하면 어떻겠는가 라고 말을 건넸고, 그런 염원을 수용해 20181231일 자신이 운영하는 TV의 송년프로그램을 이용해 공식적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드라마의 제목이었던 국민의 공복을 당명으로 하는 신당을 창당하고 선거에 뛰어들었다.

3개월후인 2019331일 치러진 대선 1차전에서 젤렌스키는 30.2%, 현직 대통령인 페트로 포로셴코는 15.9%를 얻어 2차 투표로 들어갔다. 그해 4211위와 2위가 붙은 결선투표에서 젤렌스키는 무려 73.22%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젤렌스키와 영화 ‘나, 너, 그, 그리고 그녀’의 주인공들. /위키피디아
젤렌스키와 영화 ‘나, 너, 그, 그리고 그녀’의 주인공들. /위키피디아

 

2019520일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 제6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의회를 해산하고 그해 7월에 실시된 조기총선에서 창당한지 반년밖에 지나지 않은 그의 정당 국민의 공복은 의석의 43%를 차지하며 제1당으로 부상했다.

행정부와 의회를 장악한 그는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에 힙입어 사회 개혁에 나섰다. 그는 코미디언 출신답게 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더 이상 울지 않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는 사회에 뿌리깊은 부패 척결을 위해 대대적인 정풍운동에 나섰고, 나아가 2014년 크림반도 위기 이후 지속되어온 돈바스 전쟁을 해결하기 위해 평화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201910월 그는 돈바스 문제 해결을 위해 전격적으로 도네츠크와 루간스크에 주민투표를 실시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 방안은 독일 외무장관이던 프랑크-발터 스타인마이너(Frank-Walter Steinmeier, 현 독일 대통령)2016년에 제안한 것으로, 주민의 다수결에 의해 주권의 향방을 결정하자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이에 찬성했다. 이 지역 주민의 56~58%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인구이므로, 러시아에 유리한 투표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런데 여론조사를 해보니 55%의 주민이 우크라이나에 속하길 원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양쪽의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돈바스의 우크라이나계 주민들은 젤렌스키의 처사에 강하게 반발했다.

그럼에도 그해 129일 젤렌스키, 푸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4자가 파리에서 모여 돈바스 주민투표안에 서명했다. 분리주의자들은 점령지역에서 무장을 해제하고 양측은 포로를 교환했다. 이제 선거일정을 잡는 것만 남았다.

그런데 2020년초에 좋은 핑계거리가 생겼다. 중국에서 서직된 코로나19 팬데믹이 우크라이나에도 번진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돈바스 점령지역 주민에게 경계선 밖으로 이동을 금지했다. 평화조약에도 불구하고 양측의 유혈충돌이 빈발했다. 그런 가운데 선거일정은 잡지 못한채 시간이 지나갔다.

 

2019년 12월 9일 파리 정상회담의 푸틴, 마크롱, 메르켈, 젤렌스키(왼쪽부터) /위키피디아
2019년 12월 9일 파리 정상회담의 푸틴, 마크롱, 메르켈, 젤렌스키(왼쪽부터) /위키피디아

 

2021년이 되면서 푸틴은 노골적으로 젤렌스키 정권을 비판하면서 우크라이나 국경근처에 군대를 집결시켰다. 푸틴은 앞에선 평화를 외치고, 뒤에선 무력 시위를 벌이는 노회한 공세를 펼쳤다. 푸틴의 의중은 돈바스 주민투표를 거부하고 무력으로 점령하겠다는 것이었다.

젤렌스키는 그럼에도 대화를 하면 러시아를 설득할수 있다고 믿었다. 국내의 비판자들이 푸틴의 무력 도발 가능성을 제기해도 젤렌스키는 돈바스의 전사자가 급격히 감소한 점을 들면서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침공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그는 NATO 가입을 서둘렀다. 20214월 그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NATO 가입에 속도를 내달라고 요청했고, 그해 11월 푸틴이 자신의 정부를 타도하고 괴뢰정부를 수립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2022년이 되면서 러시아의 공세는 노골화되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끝나자 마자 224일 러시아는 마침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병사들에게 탈나치화를 위해 젤렌스키 정권의 전복을 사주했다. 그는 이제 나치의 수괴가 된 것이다.

젤렌스키는 유대인이고, 그의 증조할아버지와 친척들이 2차 대전중에 홀로코스트에서 사망한 슬픈 가족사가 있기 때문에 나치와의 관계는 없다. 젤렌스키가 나치란 주장은 서방에 붙으려는 우크라이나인들에 덧씌운 푸틴의 프레임에 불과하다.

푸틴은 한편으로 젤렌스키 정권의 전복을 노리면서 다른 한편으로 정전 혒상을 제안했다. 젤렌스키는 또 평화를 기대하며 회담 장소, 시간을 논의하고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

 


<참고자료>

Wikipedia, Volodymyr Zelenskyy

Wikipedia, No to capitulation!

Wikipedia, War in Donb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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