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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이야기
브리튼섬 발견, 북극해 탐험…조석간만과 달의 관계 규명, 지구구형론 확인
북극을 탐험한 고대 그리스인 피테아스
2022. 03. 07 by 박차영 기자

 

피테아스(Pytheas)는 고대 그리스의 지리학자이자 탐험가이며, 그가 태어나서 자란 곳은 그리스 식민지였던 마살리아(Massalia), 지금의 프랑스 지중해 도시 마르세이유다. 출생년도는 분명치 않으나 BC 350년 경으로 추정된다.

피테아스는 특히 영국 본섬인 브리튼섬을 탐험해 온몸에 그림을 그린 사람들이라는 Prettanikē라는 표현으로 브리튼의 어원을 만든 사람이다. 북극지방을 탐험하며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발견한 연구자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탐험하고 연구한 결과를 대양에 관하여’(ta peri tou Okeanou)라는 책으로 출판했지만,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그의 저술 내용은 후대의 학자인 스트라보, 아리스토텔레스, 폴리비오스, 플리니우스 등을 통해 인용되고 언급되면서 부분적으로 소개되고 전해지고 있다.

 

피테아스 상 /위키피디아
피테아스 상 /위키피디아

 

피테아스가 유럽의 대서양 북서부지역으로 항해를 떠난 시기는 BC 325년 추정된다.

출항 목적은 전설적인 주석의 섬을 찾기 위해서였다. 청동기 시대에 주석(tin)은 구리의 강도를 높이는 희귀 광물로, 후대의 금과 같이 소중하게 여겨지던 귀금속이었다. 마르세이유의 상인들이 그의 원정에 재정으로 후원을 했다. 그의 배는 온갖 장비를 갖추고 25명의 선원과 1명의 전문 항법사를 태웠다.

피테아스의 출항로는 미스터리다. 당시 지중해는 페니키아인들과 그리스인들 사이에 패권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페니키아의 카르타고인들은 그리스인들이 지중해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지브롤터 해협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피테아스가 프랑스의 육로를 이용해 대서양으로 가 그곳에서 항해를 시작했다는 견해가 있다. 또다른 견해는 카르타고인들의 방해를 뚫고 지브롤터 해협을 빠져나갔다는 해석도 있다.

 

피테아스의 항로 /Seafareer’s Blog
피테아스의 항로 /Seafareer’s Blog

 

그의 항해 거리는 4만 스타디아(stadia)로 지금의 거리로 환산하면 7,000여 해리라는 계산이 나온다. 후대의 학자들이 그의 동선을 추적해 그의 탐험로가 브리튼섬을 지나, 발트해, 스칸디니비아 반도, 심지어 아이슬란드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의 항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브리튼섬의 존재다. 그는 브리튼섬의 전체적인 모습이 삼각형이며, 섬 전체를 일주하려면 7,000km에 이른다고 했다. 브리튼섬과 아일랜드섬과 합치면 대략 삼각형 모양이다. 현대 실측으로 브리튼 섬을 일주하는 거리는 5,000km이어서 그의 계산에 다소 편차가 있다.

 

그는 세상의 끝을 가보았다고 했는데, 그곳을 툴레(Thule)라고 했다. 후대의 지리학자들은 툴레가 발트해의 에스토니아, 또는 스칸디나비아로 추정했는데, 최근의 연구로 아이슬란드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피테아스는 자신이 도착한 지역에 한달 내내 백야가 지속되고 있다고 기술했다. 그가 방문했을 때가 하지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얼음바다를 헤치고 항해했다고 썼다. 이는 북극 바다의 유빙(drift ice)을 말한 것이다.

 

피테아스는 브리튼 섬의 셔틀랜드 제도에서 심한 조석 현상을 경험했다. 그는 그 현상이 달의 모양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연구를 통해 밀물과 썰물 현상이 하루에 두 번 일어난다는 것과 보름달이 뜰 때마다 조석 간만의 차이가 최고조로 달하는 사리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냈다. 내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는 달이 지구의 조석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인류 최초의 천문학자였다. 그의 연구는 후에 아이작 뉴턴이 중력에 대한 해석에 영향을 미쳤고, 달의 인력이 밀물과 썰물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수학적으로 증명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는 또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에 있는 비스케이만(Bay of Biscay)의 형상을 최초로 지도에 그려 넣었다.

그는 여러 섬의 풍토와 상황을 기록했는데, 그 가운데 툰드라 지대에 생장하는 식물과 사람의 생활양식도 포함되었다.

그는 마실리아(베르사이유)가 북위 43°에 위치한다고 밝혀냈다. 현대의 실측으로 마르세이유는 북위 43° 17‘ 52“이니, 그의 관측이 대단히 정밀했음을 보여준다. 피테아스는 또 황도와 적도가 23° 49’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피테아스는 인류로는 처음으로 극지를 탐험하고 지구의 자연현상을 천문학적으로 규명한 인물이지만, 그가 언제 죽었는지조차 확실치 않다. 다만 그가 탐험하고 연구한 유산은 인류의 자산으로 전해지고 있다.

 


<참고자료>

Wikipedia, Pythe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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