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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정복자의 통역자로 부상…멕시코에선 인디오의 배신자로 낙인
코르테스의 정부, 메스티조의 어머니 말린체
2022. 03. 13 by 박차영 기자

 

스페인 정복자 코르테스를 도와 아즈텍 정벌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디오 여성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말린체다.

말린체(Malinche, 1500~1529)는 코르테스의 애인이었고, 멕시코 혼혈민족인 메스티조의 어머니로 불린다. 그녀의 도움이 있었기에 코르테스는 소수의 병력으로 거대한 제국을 정벌할수 있었다. 하지만 후세 멕시코인들은 그녀에게 배신자, 반역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인디오를 배신하고 스페인에 부역했다는 이유였다.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ś, 1485~1547)가 말린체를 만난 것은 15192월 마야 문명의 본거지 유카탄 반도를 공격했을 때였다. 코르테스는 스페인인 600, 인디오 300, 12, 대포 10문을 10대의 배에 싣고 황금이 무진장 많다는 유카탄 반도를 공격했다. 압도적인 화력에 현지 타바스코인들은 스페인 정복자에 굴복하고, 항복의 댓가로 20명의 여인을 바쳤다. 이들은 스페인군에 허드렛일을 하고 정복자에게 성적 대상이 되었다.

이들 중에 말린체가 끼어 있었다. 그녀는 원주민 귀족의 딸이었다. 아버지가 일찍 죽은 후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재혼해 그 사이에 아들을 낳았다. 어머니는 상속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딸이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노예로 팔았다. 말린체는 타바스코 부족에게서 노예생활을 하던 중에 코르테스 부대를 만난 것이다. 그녀는 코르테스의 부하 장교에 넘겨져 카톨릭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아즈텍어와 마야어를 했다. 코르테스는 유카탄에서 포로로 잡혀 있다 풀려난 스페인 신부 아길라르(Jerónimo de Aguilar)를 통역사로 쓰고 있었다. 아길라르는 마야어를 알았지만 아즈텍어를 하지 못했다.

코르테스가 유카탄에 상륙하자 아즈텍 제국에서 그들의 동정을 감시하기 위해 사절단을 보내왔다. 코르테스는 아길라르와 말린체를 통해 스페인어-마야어-아즈텍어라는 이중통역 과정을 거쳐야 했다.

말린체의 언어감각이 빨랐다.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스페인어를 배웠고, 아길라르 없이 곧바로 아즈텍어, 마야어를 통역했다. 코르테스는 말린체의 언어능력을 보고 그녀를 부하에게서 빼앗아 자기 옆에 두었다.

 

라 말린체 /위키피디아
라 말린체 /위키피디아

 

말린체는 통역사로만 일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즈텍과 주변 부족의 정보를 파악해 코르테스에게 알려주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다. 말린체가 물어온 정보는 아즈텍의 적대 부족을 규합해 우군으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말린체는 아즈텍에 강한 증오를 품고 있었다. 당시 아즈택은 인신공양이란 야만적 관습에 젖어 있었는데, 주변 부족에게 희생될 사람을 요구했다. 희생을 제공하지 않으면 전쟁을 벌여 사람을 잡아 오곤 했다. 코르테스가 아즈텍을 공격할 때 어떤 곳에 1만명의 희생들이 갇혀 있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인간 희생을 제공하는 부족들은 아즈텍에 굴복하면서도 내심 저항하고 있었다. 말린체는 그런 정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코르테스에게 아즈텍에 우호적인 부족과 적대적인 부족을 판별해 주었다.

코르테스 군이 최신의 무기를 보유했다고 해도 당시의 총과 대포로 수십만명의 아즈텍 군대를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들이 아즈텍을 제압할수 있었던 것은 아즈텍에 저항하는 부족들을 규합해 동맹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린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녀는 현지어를 알았기 때문에 부족들과 소통해 코르테스 우호세력으로 만들었다.

 

에르난 코르테스가 말린체(오른쪽 끝)를 앞세우고 멕시코 정벌에 나서는 그림 /위키피디아
에르난 코르테스가 말린체(오른쪽 끝)를 앞세우고 멕시코 정벌에 나서는 그림 /위키피디아

 

말린체는 코르테스에게 적대적인 부족을 파악해 알려주는 역할도 했다. 코르테스 군대갸 아즈텍으로 진군하는 도중에 촐룰라Cholula)에 들렀다. 그들은 그곳에서 물자를 보충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곳 부족 장로들은 코르테스를 환영하러 나오지 않았고, 아즈텍의 사신들과 무언가 뜻 모를 대화를 한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촐룰라가 적인지, 동맹인지 판단을 말린채가 결정했다. 말린체는 코르테스에게 촐룰라의 한 귀족 여성이 자신에게 다가와 "이방인들과 함께 있으면 위험에 처하게 될 테니 우리 집에 피신했다가 나의 아들과 결혼하라"라고 제안했다고 전했다. 코르테스는 촐룰라가 적이라고 판단하고 족장들을 불러 총으로 쏘아 죽이고, 부족 3,000여명을 도륙했다. 이 역사적 사실을 두고 후대의 사람들은 말린체를 인디오의 배신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씌웠다.

 

코르테스가 통역관 말린체를 앞세워 아즈텍 황제 목테주마 2세와 담판을 하는 모습. /위키피디아
코르테스가 통역관 말린체를 앞세워 아즈텍 황제 목테주마 2세와 담판을 하는 모습. /위키피디아

 

코르테스는 151911월 연합군을 이끌고 마침내 아즈텍의 궁궐에 들어가 목테주마 2(Moctezuma II)를 만났다. 그는 말린체를 대동했다. 아즈텍 황제는 말린체를 보며 대화를 했다고 한다.

코르테스는 목테주마를 사로잡아 인질로 삼고 금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하지만 아즈텍인들이 뭉쳐 스페인군을 수도에서 쫓아낸다. 코르테스는 멕시코 동해안으로 도망쳐 그곳에서 병력을 보충해 다시 아즈텍 정벌에 나섰다. 2년후인 1521년 코르테스는 마침내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을 점령했다.

이 시기에 본국에서 파병되어 온 병사 중 한 사람이 천연두에 걸려 있었다. 그 병사가 신종 바이러스를 신대륙에 퍼뜨렸다. 아즈텍인들은 천연두로 인해 수없이 죽어갔으나, 정복자들은 이미 면역이 되어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천연두가 아즈텍의 멸망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즈텍을 정벌한 코르테스는 말린체와 함께 살았다. 이듬해인 1522, 말린체는 코르테스의 아들 마르틴(Martín Cortés)을 낳았다.

코르테스는 말린체와 정식 결혼을 하지 않았다. 코르테스는 쿠바 총독 벨라스케스의 처제와 결혼했는데, 그의 첫 부인은 얼마후 죽었다. 코르테스는 온두라스 정벌 때에도 말린체를 동반했다.

하지만 본국의 카를로스 1세 국왕은 신대륙에서 독자적인 군벌 행세를 하는 코르테스를 견제하기 위해 1526년 그를 파면했다. 코르테스는 멕시코에서는 왕 노릇을 했지만,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이기도 한 군주에 대항할수 없어 귀국했다.

코르테스는 귀국에 앞서 말린체를 부하 장교인 후안 하라미요에게 주었고, 둘은 정식으로 결혼했다. 말린체는 하라미요와의 사이에 딸 마리아((Maria Jaramillo)를 낳았다. 말린체가 코르테스에게서 낳은 아들 마르틴과 하라미요의 딸 마리아는 라틴아메리카 역사상 최초의 메스티소로 기록된다. 메스티조(mestizo)은 스페인인과 원주민인 인디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종을 말한다. 말린체는 메스티조의 어머니라 불린다.

 

말린체는 오래 살지 못했다. 그녀는 1529년 천연두에 걸려 죽었다. 나이 29세였다. 그녀도 스페인이 뿌린 질병의 희생자가 된 것이다.

그녀는 기구한 삶을 살았다. 인디오 귀족으로 태어나 노예로 살았고, 인디오 최초로 기독교 세례를 받았으며, 최초로 스페언어를 배운 여자였다. 그녀는 또 최초의 메스티조를 낳은 여인이었고, 스페인의 귀족 칭호를 받았다. 그렇게 고생한 그녀는 조금 편하게 살려고 하다가 29살의 꽃다운 나이에 죽고 말았다. 죽은 후에 그녀는 인디오의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참고자료>

Wikipedia, La Malinche

Wikipedia, Hernán Cortés

Life Story: Malitzen (La Malin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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