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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이야기
여행기에서 황금이 가득찬 곳으로 소개…2세기후 대탐험의 동기 유발
동양을 신비의 눈으로 바라본 마르코 폴로
2022. 04. 09 by 박차영 기자

 

베네치아의 상인 마르코 폴로(Marco Polo)가 구술하고, 그의 감방 동기인 루스티첼로(Rustichello)가 정리했다는 이른바 동방견문록의 원제목은 'Divisament dou Monde'이다. 직역하면 '세계의 서술'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책이 '동방견문록으로 번역된 것은 일본의 번역(東方見聞錄)을 차용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선 馬可波羅游記‘, 또는 馬可波羅行記로 번역하고, 영어권에도 'The Travels of Marco Polo'로 소개한다.

마르코 폴로(1254~1324)의 시대엔 동양과 서양의 개념도 없었고, 책을 읽어보면 중국 뿐 아니라 비잔틴 제국, 중동, 아프리카에 관한 내용도 서술되어 있어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란 번역이 옳을 것으로 본다.

마르코 폴로는 24년간(1271~1295)에 걸친 기나긴 여행을 했다. 그가 여행을 마치고 베네치아로 돌아온지 4년 뒤인 1299년 베네치아와 제노바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에서 마르코 폴로는 포로가 되어 제노바의 감옥에 갇혀 피사 출신 작가 루스티첼로에게 자신의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루스티첼로는 그의 이야기를 받아 적었다.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 우리에게 동방견문록으로 알려진 책이다.

 

제노바의 도리아 트루시 궁전에 그려진 마르코 폴로 모자이크 /위키피디아
제노바의 도리아 트루시 궁전에 그려진 마르코 폴로 모자이크 /위키피디아

 

마르코 폴로는 귀국 후에 친구들에게 체험담을 들려주면서 툭하면 백만(milione)이란 단어를 사용하며 허풍과 과장을 즐겼다. 그래서 그는 밀리오네라는 별명을 얻었다. 마르코 폴로가 임종을 앞두었을 때 친구들이 그의 여행기에 실린 거짓말들을 취소하고 회개하라 권했다. 그러자 그는 내가 본 것들의 절반도 다 이야기하지 못했다고 했다.

1300년대초,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어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고 한다. 그 이유는 유럽이란 장소와 기독교라는 사고에 갇혀 지내던 사람들에게 또다른 신비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신비함은 동경을 낳고, 동경은 모험심을 자극했다. 마르코 폴로의 환상에 자극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이 1492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다. 컬럼버스는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를 밑줄을 그어 가며 탐독하고 몽골 제국의 쿠빌라이 칸을 만날 생각을 했다. 그의 항해일지에 이제 그레이트 칸(대칸)을 만날 것이라는 구절이 많이 보이는데, 그는 아메리카 대륙을 중국으로 착각한 것이다.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있다.

마르코 폴로는 자신이 중국 양저우(揚州)에서 관리로 일했다고 주장했지만 원나라 사료에 그런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게다가 페르시아(일한국)로 시집가는 공주를 호송했다고 하는 주장도 그 기록에 마르코 폴로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이밖에 마르코 폴로가 중국의 젓가락 사용이나 차 마시는 풍습, 한자(漢字), 전족 풍습, 만리장성, 인쇄술 등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또 마르코 폴로 다리(Marco Polo Bridge)라 불리는 베이징의 루거우차오(盧溝橋)의 실제 모습도 마르코 폴로의 설명과 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몇가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내용이 사실에 부합한다. 기억에 의존해 기록되었다는 점, 여러사람을 거치면서 서술된 점, 마르코 폴로의 허풍과 루스티첼로의 과장이 포함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마르코폴로 여행기는 14세기 역사와 지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의미를 갖는다.

 

베이징의 마르코 폴로 다리(盧溝橋) /위키피디아
베이징의 마르코 폴로 다리(盧溝橋) /위키피디아

 

여행기는 마르코 폴로의 아버지 니콜로 폴로(Niccolò Polo)와 숙부 마페오 폴로(Maffeo Polo)의 스토리로 시작한다. 아버지와 숙부는 마르코가 여섯 살이던 1260년에 콘스탄티노플을 출발해 중국을 여행하고 1269년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형제는 지중해를 건너 킵차크한국을 거쳐 부하라(우즈베키스탄 도시)에 도착해 3년을 머물렀고, 쿠빌라이 칸의 조정을 방문하고 육로를 거쳐 3년 만에 지중해 동부 연안 항구 도시 아크레에 도착해 지중해를 건너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폴로 형제는 1271년 다시 중국을 향해 출발했는데, 이번엔 니콜로의 17살 난 아들 마르코 폴로도 동행했다. 마르코 폴로는 아버지와 숙부를 따라 여행을 했다. 그들은 바그다드를 거쳐 바스라로 간 다음에 육로로 페르시아를 거쳐 아무다리야 강, 파미르 고원을 통과해 타림 분지에 도착했고 카슈가르, 호탄,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 오늘날 중국 간쑤(甘肅) 서부 오아시스 지대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1년을 머무른 일행은 1274년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칸의 여름 궁전이 있는 내몽골 상도(上都)에 도착했다. 마르코 폴로는 17년 간 원나라에 머물면서 그 수도 타이두(大都, 베이징)는 물론, 산시(山西), 산시(陝西), 쓰촨(四川), 윈난(雲南), 허베이(河北), 산둥(山東), 장쑤(江蘇), 저장(浙江), 푸젠(福建) 지역 등을 여행했다. 마르코 폴로는 대칸(쿠빌라이칸)의 신임을 받아 양저우(揚州)에서 관리로 일했다고 주장했다.

마르코 폴로 일행은 페르시아의 몽골 왕조 일한국으로 시집가는 원나라 공주의 호송단에 참가해 수마트라, 말레이, 스리랑카, 인도 서남부를 거쳐 페르시아에 도착했고 1295년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마르코 폴로의 여정 /위키피디아
마르코 폴로의 여정 /위키피디아

 

여행기에는 다양한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아르메니아 북방에 접경하는 조르지아에 유전이 있어 한번에 100척의 배에 실을수 있는 만큼 풍부한 용출량을 갖고 있다. 이 기름은 먹을수는 없지만, 연료로서 요긴하고, 낙타에게 바르면 비듬이나 옴 예방에 효능이 있으므로, 아주 먼 데에서도 이 기름을 가지러 온다. 이 지방에서는 이 것만을 연료로 쓰며 다른 기름을 쓰지 않는다.” (아르제바이잔의 바쿠유전을 말한다.)

프레스터 존은 징기스칸이 군대를 동원하여 진격해 온다는 말을 듣자 스스로 전군을 이끌고 대평원에 이르렀다. 적과 약 6km 정도 덜어진 지점에 포진해 있다가 맞받아치려는 계획이었다. 두 군 모두 잠시 군영에 머물면서 전투의 날에 대비하였다.”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를 프레스터 존 전설과 연결한 것 같다.)

대칸의 조폐국이 있다. 그 솜씨를 보기만 해도 그야말로 대칸이 최고의 연금술사라는 사실이 틀림없다. 대칸은 통화를 제조한다. 우선 누에의 먹이가 되는 닥나무의 껍질을 벗겨온다. 이 나무의 내피를 벗겨내어 잘게 째서 아교를 가해 종이 모양으로 만든다. ……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통화는 모두 순금이나 순은의 화폐와 똑같은 갚어치로 발행된다. 전문관리가 있어 지폐에 서명 날인을 한다.“ (중국 원나라의 지폐 제작과 유통과정을 설명했다.)

카타이 땅에는 곳곳에 검은색을 띠는 돌이 있다. 이 것은 다른 석재와 마찬가지로 산에서 캐는데, 이상하게도 장작처럼 잘 탄다. 이 돌은 처음 탈 때 약간 불꽃이 나지만 그 뒤에는 목탄과 마찬가지로 그저 계속 빨갛게 달아오르기만 한다. 대단한 고열을 내며 불은 장작에 비해 훨씬 오래간다.” (중국에선 원나리 이전부터 석탄을 사용했다.)

 

마르코 폴로 여행기는 쿠빌라이의 일본 원정도 소개했다. 그 대목에서 몽골군이 폭풍을 만난 것도 소개한다. 하지만 북풍이 불었다거나 하는 점 등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이 나온다. 들은 내용이라 상당히 와전되었을 것이다.

그는 일본을 지팡구(Chipangu)라며 금이 많은 나라로 소개했는데, 그의 과장은 후대 탐험가들을 자극하는 동기가 된다. 그는 일본을 이렇게 소개했다.

지팡구는 대륙으로부터 1,500마일 떨어진 동쪽 대양 가운데 있는 아주 큰 섬이다. 주민들은 피부색이 희고 예절 바르다. 우아한 우상을 숭배하고 독립국을 이루어 자기들의 국왕을 받들고 있다. 이 나라에서는 곳곳에서 황금이 발견되므로, 이곳 사람들은 누구나 막대한 황금을 가지고 있다. 대륙으로부터 이 나라로 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상인들조차 찾아가지 않으므로 풍부한 이 황금은 아직 한번도 나라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이와 같이 막대한 황금이 그 나라에 현존하는 것은 모두 이런 이유에서다.” (동방견문록, 동서문화사)

황금에 눈이 먼 탐험가들은 지팡구를 찾아 나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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