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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 타고 9일간 항해 끝에 일본 봉화섬 표착…후쿠라 16나한상의 전설
17세기 법성 스님의 표류 연구⑤…일본 도착
2019. 06. 16 by 이효웅 해양전문가

 

보름정도 기다려 마침내 북풍이 불어오자 순풍을 타고 9일간 남쪽으로 항해를 하였다. 주1)

오늘날 선박들은 선박용 위성항법장치 주2), 항해지도, 나침반 등으로 항해하지만 과거에는 주로 연안 항해를 하면서 태양이나 별자리를 보거나 물의 색상과 바다 지형을 바라보면서 항해를 하였다. 법성이 탔던 배의 사공도 일본을 다녀 온 경험이 있어 순풍만 계속 불어준다면 고향에 무사히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므로 장거리항해에 만전을 기하였다. 부산에서 목미도까지 17일 걸렸으므로 남쪽으로 보름정도는 가야 고향이나 일본으로 갈 수 있다고 믿고 를 지내며 기다렸을 것이다.

마침내 보름 정도 기다려 계절이 바뀌면서 북풍이 불자 환성을 지르며 돛을 올렸다. 법성은 북풍을 만나 남쪽으로 끝없이 항해하고 표류하다 수평선 끝에 제일 먼저 보이는 우뚝 솟은 해발 2,236m의 조카이산(鳥海山) 주3)을 발견하고, 여기에 키를 맞추고 항해하다 9일 만에 일본의 봉화섬에 이르게 되었다.

법성의 선박은 처음에는 북풍을 타고 빠르게 남쪽으로 항해하였지만, 초가을 북풍은 하루 정도 불므로 나머지는 동한난류와 미풍을 타고 이동하였다. 펠리스섬에서 도비시마까지 직선거리로 약420마일이다. 그러나 실제항해는 북풍을 타고 남쪽으로 항해하다 바람이 그치자 북대화퇴에서 북해도로 이동하는 약0.5~1노트의 동한난류 주4)와 미풍을 타고 남동쪽으로 표류하여 약100마일 이상을 더 항해하였다고 본다.(10노트x24시간=240마일, 1.5노트x8x24시간=288마일, 528마일) 다행히 높은 조카이산이 보이므로 방향을 잡아서 빨리 올 수 있었다.

 

그림 18. 동해 해류/구글  (이하 이효웅 제공)
그림 18. 동해 해류/구글 (이하 이효웅 제공)
그림 19. 일본 江戶시대 선박 모형/고베해양박물관
그림 19. 일본 江戶시대 선박 모형/고베해양박물관

 

돛을 내리고 봉화대 섬으로 노를 저어가니 대포 소리가 3번 들렸다. 그 섬에 가까이 가니 왜선 36척이 있었고, 왜선들이 다가와서 배를 둘러싸고 어디서 오는 배냐?”고 묻자, 법성은 나는 고려의 승려다.”라고 대답하였다. 주5)

법성은 북풍을 받아 일본의 봉화섬에 표착하였는데, 일본 서해안의 표착 가능한 섬은 도비시마(飛島), 아와시마(粟島), 사도가시마(佐渡島), 헤구라지마(舳倉島), 오끼노시마(隠岐) 등이 있다. 8월초 북풍을 받고 항해하다 동한난류를 타고 남동쪽으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남쪽의 오끼노시마는 아니라고 본다. 사도가시마는 큰 섬으로 산의 정상과 해안까지 약7km정도 되므로 아니라고 본다. 과거의 항해자들은 견시자를 두어 육지나 섬을 찾았는데, 여름철에는 산봉우리에 싸여있는 구름의 모양을 보고도 육지나 섬을 찾을 수 있었다. 펠리스섬에서 남동쪽으로 가면 조카이산이 제일 높기 때문에 제일 먼저 보인다. 선박에서 조카이산까지의 시인거리 주6)는 관측자 높이3m, 조카이산 높이 약2,200m로 계산하면, 100해리(185km)가 되므로 가을 쾌청한날 해 뜰 무렵에는 170km~160km까지 가면 볼 수 있다.

 

그림 20. 조카이산/구글
그림 20. 조카이산/구글
그림 21. 도비시마/구글지도
그림 21. 도비시마/구글지도

 

실제 1253동안거사집에 이승휴가 몽골군을 피하여 삼척 두타산의 窈田山城(해발1,000m)에 왔다가 160km 떨어진 울릉도를 보고 望武陵島行란 시를 지었다. 삼척 소공대 주7)에서는 과거부터 가을철 찬바람이 불면 울릉도를 보았다는 옛 기록이 많다. 필자도 사진촬영을 위하여 해발고도 약280m인 소공대 인근에서 140km 떨어진 울릉도를 여러 차례 보았는데, 201196일 새벽, 태풍이 지날 때 가장 좋은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

 

지 명

거 리km

360도방위

8방위

높이 m

조카이산

824

115

남동

2236

비 도

781

116

남동

66

아와시마

806

122

남동

220

사도가시마

772

128

남동

1166

헤구라지마

706

137

남동

16

오끼노시마

728

167

637

<4> 볼쇼이 펠리스섬과의 거리와 방위

 

그림 22-1. 삼척소공대에서 울릉도 촬영
그림 22-1. 삼척소공대에서 울릉도 촬영
그림 22-2. 삼척 소공대에서 본 울릉도, 시인거리 140km
그림 22-2. 삼척 소공대에서 본 울릉도, 시인거리 140km

 

이시카와현의 헤구라지마는 길이 약1.5km 고도15m의 낮고 작은 섬이고, 니가타현의 아와시마는 길이7km 고도250m의 긴 섬이며, 야마가타현의 도비시마는 길이 약3km 고도68m의 작은 섬이다. 일본 서해안의 겨울철은 북서풍이 강하고 파도가 엄청나게 높아 항구를 만들기가 아주 어려웠다. 아와시마는 긴 섬으로 오늘날 산 정상에 등대가 있고 동쪽에 인공항구도 있다. 헤구라지마는 작고 낮은 섬으로 오늘날 등대와 항구를 갖추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마라도와 같이 섬이 낮아 겨울철 북서풍을 이길 수 없고 암초가 많아 많은 선박들이 정박하기 어렵다.

위 두 섬은 과거에는 자연항의 조건에 맞지 않아 법성 일행이 표착한 봉화섬이 아니라고 본다. 도비시마는 섬의 정상에 등대가 있고, 섬의 남동쪽에는 작은 섬들이 있어 비교적 자연항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 선박이 정박하기에 적당하다. 또한 30km 떨어진 후쿠라(吹浦)에는 하천이 흘러 자연항이 있었고, 동쪽에는 높은 조카이산이 옛날부터 항해자들의 이정표 역할을 하여 항구의 좋은 조건을 잘 갖추고 있으므로 도비시마와 후쿠라를 법성 일행의 최종 표착지라고 본다.

 

일본 야마가타현 아쿠미군 유자마치 후쿠라의 16나한암 /일본 遊佐鳥 해양관광협회
일본 야마가타현 아쿠미군 유자마치 후쿠라의 16나한암 /일본 遊佐鳥 해양관광협회

 

그리고 일본 야마가타현 아쿠미군 유자마치 후쿠라(山形県飽海郡遊佐町吹浦西楯) 해안의 자연 바위에 16아라한이 거친 파도를 그대로 받고 있는데, 이는 일본에서도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희귀한 불상들이다. 이것은 대법 간가이(寛海)대사 주8)1864년부터 造佛을 시작하여 1868년까지 4년 동안 16아라한과 석가모니상을 비롯하여 22상을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동해의 심한 풍랑과 파도로 후쿠라 해변가 바위 근처에 자주 어부가 표착하기에 그 영혼을 위로하고 해상안전을 기원하기 위해서 불상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남미혜는 ‘16나한상을 싣고 표착한 조선 스님의 이야기가 200여 년 동안 전해지다가 이곳 해안가 바위에 16나한상이 조각되는 것은 아닐까?’ 주9)라고 하였는데, 필자의 생각도 마찬가지로 200여 년 전 이 지역에서 불사를 크게 일으킨 법성스님의 16나한상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림 23. 후쿠라해변 16나한상/구글
그림 23. 후쿠라해변 16나한상/구글
그림 24. 쇼나이일보사 1989.6
그림 24. 쇼나이일보사 1989.6

 


1) ‘留十五日 又遇北風 行九日

2) GPS플로터: 간이 전자해도 위에 GPS의 실시간 위치확인 기능을 접목한 위치확인 장치를 말한다.

3) 조카이산은 일본 야마가타현과 아키타현의 경계에 있으며 도호쿠 지방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조카이산은 동해를 바라보는 독립봉으로 북쪽으로 이와키산, 하치만타이, 이와테산, 남쪽으로는 갓산, 아사히산지, 해상으로는 오가반도, 도비시마, 날씨가 맑을 때에는 사도가시마까지 조망할 수 있다.

4) 김철수, 동한난류의 월별 변동에 관한 연구, 한국해양연구원 보고서, 1995, p15

5) ‘到日本達里海烽臺下遙聞放砲三聲’ ‘漸近其島 有倭船三十六隻 急來圍船 問是何船 答以高麗僧人

6)  정진술, 한국해양사, p37, 시인거리 D=2.074(H+h), D: 시인거리(해리), H: 수면에서 높이(m), h: 관측자 눈높이(m), H=(D/2.074-h)2, 1해리: 배의 속도를 표시할 때의 시속 1노트(knot) 1852m

7) 임원항에서 서쪽 산의 능선을 타고 2올라간 지점의 召公嶺에 돌을 모아 돋아놓은 대이다. 소공대는 1423(세종 5)에 황희를 중국의 召公과 같은 정도의 은인이라 하여 백성들이 만든 것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8) くなったのが明治4(1871、『改定遊佐歴史には「-寛海和尚生涯恵まれずったか海禅寺白雪足跡したまま姿さなかった明治71であった-」寛海最後模様しており入水動機寛海畢生ひっせいをかけた十六羅漢のみがることであろう

명치4(1871). 寛海 스님은 평생 축복하고, 무엇을 생각했는가? 눈 내리는 밤 海禅寺​​벗어나 정원 백설에 발자국을 남긴 채 바다에 뛰어들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71세에 입적. 寛海의 투신자살 동기는 寛海筆生을 걸었던 十六羅漢만이 알 것이다.

9)  남미혜, 앞의 논문, ‘17세기 중엽 조선 승려의 이국 체험 -谷雲集소재 <법성전>의 표류기를 중심으로’ P6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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