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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테르’ 7번 읽은 괴테의 문학 팬…사실과 문학 표현에 대한 대화 나눠
나폴레옹과 괴테가 만났을때,
2022. 06. 11 by 김현민 기자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와 독일의 문호 요한 볼프강 괴테(1749~1832) 는 동시대 인물이다. 나이는 괴테가 나폴레옹보다 20살 더 많다. 프랑스와 독일이 추앙하는 두 인물은 180810월 독일 튀링겐 주의 수도 에르하르트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왜 만났고, 무슨 얘기를 했을까.

 

시대는 바야흐로 나폴레옹의 전성기였고, 신성로마제국이 해체되던 때였다.

1804년 나폴레옹은 프랑스 황제에 오른후 파죽지세로 독일로 쳐들어갔다. 유럽에는 세 명의 황제가 난립했다. 독일에는 오스트리아 프란츠 대공이 허울만 남은 신성로마제국의 카이저로 군림했고, 러시아에 알렉산드르 1세가 차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세 황제가 180512월 각자의 군대를 이끌고 체코 아우스터리츠에서 한판 승부를 겨뤘다. 승리의 여신은 나폴레옹의 손을 들어주었다.

다음해인 180681일 신성로마제국에 가입해 있던 16개 제후국이 제국을 탈퇴해 라인동맹을 결성하고 나폴레옹의 보호를 받았다. 허울만 남은 신성로마제국의 프란츠 2세 황제는 재상 메테르니히를 파리로 보내 나폴레옹의 의중을 떠보았다. 나폴레옹은 810일까지 제국을 해체하지 않으면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했다. 180686일 프란츠 2세는 신성로마제국을 해체했다. 이렇게 해서 962년 오토 1세가 제위에 오른후 844년 동안 이어지던 신성로마 제국은 소멸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괴테는 내 마부가 언쟁을 벌이는 것보다 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있으나마나 한 제국이 해체되었을 뿐이라는 의미였다.

 

나폴레옹은 위세로 독일을 지배하려 했다. 1808927, 그는 유럽의 군주들을 에르푸르트로 소집해 제후국회의를 열었다. 패전국인 러시아 차르 알렉산드르가 직접 참석했고, 오스트리아 카이저 프란츠는 특사를 파견했다. 작센, 뷔르템베르크, 베스트팔렌, 바이에른의 왕들이 참석했다. 유럽이 모두 나폴레옹에 머리를 조아렸다.

지엄하신 유럽의 황제는 영국을 뺀 대륙의 모든 군주의 추앙을 받고 향연을 벌였다. 그는 가까이 있는 괴테를 불렀다. 괴테는 당시 에르하르트에서 불과 24km 거리에 있는 바이마르에 거주하고 있었다. 나폴레옹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일곱 번이나 읽었고, 이집트 전투에 나갈때도 그 책을 끼고 다녔다고 할 정도로 괴테 팬이었다. 괴테도 무능하기 짝이 없는 제국을 해체하고 자유주의 바람을 몰고온 나폴레옹을 만나고 싶어했다고 한다.

 

괴테를 만나는 나폴레옹 횡제 (Eugène Ernest Hillemacher 그림)/위키미디아
괴테를 만나는 나폴레옹 횡제 (Eugène Ernest Hillemacher 그림)/위키미디아

 

1808102일 나폴레옹과 괴테의 세기적 만남이 에르푸르트에 마련된 황제 궁 접견실에서 이뤄졌다. 당시 두 사람이 만나 나눈 얘기는 16년 뒤인 1824년 괴테가 대화록을 정리함으로써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괴테의 기록을 요약한다.

 

오전 11시에 황제의 부름을 받았다. 뚱뚱한 시종이 기다리라고 했다. 사람들이 사라졌다. 나는 사바리와 탈레랑(나폴레옹의 대신)에게 소개되었다. 접견실에 들어오라고 했다. 그런데 다루(대신)가 먼저 들어갔다. 나는 당황했다. 두 번째로 나를 불렀다.

황제는 넓고 둥근 탁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아침을 먹었다. 오른쪽 떨어진 곳엔 탈레랑이, 왼쪽엔 다루가 서 있었는데, 황제와 세금 문제를 의논했다. 황제는 나에게 가까이 오라고 했다. 나는 적장한 거리에서 그의 앞에 섰다. 그는 잠시 나를 보더니 당신이 그 사람이군요라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는 몇살입니까물었다.”여순입니다.“

황제는 건강 관리를 잘하셨군요라고 하더니 대뜸 비극 작품 몇 개를 쓰셨지요라고 말했다. 내가 요점을 설명하는데, 다루가 끼어들어 내가 프랑스 작품 몇 개를 번역한 사실을 말했다. 다루는 볼테르의 마호멧을 예로 들었다. 황제는 그 작품은 좋지 않아요라면서 세계의 정복자(마호멧)를 아주 나쁘게 그린 것은 자신에게도 좋지 않다고 상세하게 지적했다.

그리고 그는 베르테르에 대해 자세하게 말했다. 그는 어느 구체적인 대목을 언급하면서 왜 그렇게 서술했습니까. 자연스럽지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이 대목에서 장황하게 말했지만, 아주 정확했다.

나는 조용한 표정으로 그의 얘기를 듣었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그에게 대답했다. ”누군가 그런 지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완전히 옳다고 생각합니다. 문맥의 사실성이 떨어지는 문제는 인정합니다. 다만 시인은 사실 그대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에서 인위적 허구를 만들어 도피처를 찾기도 합니다.“

황제는 내 말에 동의했다. 우리는 연극으로 화제를 돌렸고, 형사재판을 그린 비극무대의 주인공에 대해 대화했다. 그는 프랑스 연극이 사실과 자연스러움에서 벗어나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비핀적 시각에서 암흑기의 운명적 연극에 관해 언급했다. 황제는 오늘날 왜 그들은 운명론을 제시하지요? 운명은 정치입니다.”라고 말했다.

황제는 갑자기 다루에게 세금문제를 의논하다가 일어나더니 나를 데리고 그들에게서 떼어 놓았다. 그는 등을 돌려 내게 결혼 했느냐, 아이는 몇이냐, 다른 개인적 문제는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나와 대공 가문, 아말리아 공작부인과의 관계를 물었다. 나는 차분하게 설명했고, 그는 만족스러워 했다.

전반적인 대화는 긍정적이었다.나는 그의 긍정적인 태도를 존경하고, 그의 대답과 제스추어를 좋아한다. 그는 때로 이해했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예스”, “옳아요와 같은 표현을 했다. 그는 의문이 생기면 괴테 선생,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다.

 

나폴레왕과 괴테 초상화 /위키피디아
나폴레왕과 괴테 초상화 /위키피디아

 

이날 두 거물의 만남은 이렇게 끝났다. 두 사람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가운데 어느 대목에서 논쟁을 벌였는지에 대해 후세의 문학자들 사이에 구구한 얘기가 있다. 괴테는 그 대목이 어디인지 설명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존경을 표했다. 둘은 그후 106일과 14일 두 번 더 연회장에서 만났다. 그땐 단 둘이 아니고 여럿이 함께 했다.

1812년 러시아 원정에 실패하고 귀국하던 나폴레옹은 괴테에게 안부를 물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만났다는 얘기는 없다. 아마 나폴레옹에게 그럴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나폴레옹은 패전해 1821년 남대서양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5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괴테는 나폴레옹의 사망 소식을 들은 후 더 살다가 1828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괴테는 친구 요한 페터 에커만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나폴레옹은 그런 사람이다. 그는 계몽적이었고,. 명쾌하고 결정력이 있었다. 그는 넘치는 에너지를 가지고 필요하고 진취적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실천에 옮겼다. 그는 신과 인간의 양면성을 가진 반신반인이었다.”

 


<참고자료?

Shannon Selin, When Napoleon Met Goethe

Wikipedia, Johann Wolfgang von Goethe

Wikipedia, Napol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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