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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1969년 어느 소읍의 일상을 그린 액자소설…1995년작, 100쇄 출판
12살 진희의 눈으로 관찰한 세상, “새의 선물”
2022. 06. 18 by 박차영 기자

 

은희경 작가는 왜 새의 선물이란 제목을 붙였을까. 소설을 읽다보면 에 관한, ‘선물에 관한 대목을 발견할수 없다. 작가의 대답은 이렇다.

이 소설은 작품을 다 쓰고 나서 제목을 붙였어요. 새의 선물이라는 것은 프레베르라는 프랑스 시인의 시입니다. 그 시에 보면 아주 늙은 앵무새 한 마리가 태양에게 선물을 갖다 줍니다. 해바라기 씨앗을요. 해바라기 씨앗이라고 하면 해한테는 사모와 흠모라는 의미가 있는데, 해는 그것을 거부합니다. 즉 시는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 버렸네로 끝나요,“(네이버 지식iN)

은희경은 동떨어진 제목을 설명하기 위해 프레베르의 싯구를 첫 서두에 적어두었다. ‘새의 선물에서 엮어나가고자 한 어린 시절 감옥은 12살 진희가 살았던 1969년 남도지방 어느 군청소재지 소읍 마을이다. 진희는 여섯 살에 엄마가 정신분열증으로 자살하고 아빠가 집을 떠나 외할머니 밑에서 거둬지는 외로운 소녀다. 26년후인 1995, 진희가 38살이 되던 때에 12살 시절을 회고한다. 작가는 프롤로그에 이렇게 썼다.

나는 삶을 너무 빨리 완성했다.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라는 목록을 다 지워버린 그때,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누구의 가슴 속에서나 유년은 결코 끝나지 않는 법이지만, 어쨌든 내 삶은 유년에 이미 결정되었다. 그리고 그 순수한 시절에 내 인생을 결정하도록 해준 것은 애초부터 선의라고는 갖지 않는 사람의 그나마의 호의일 것이다.“

12살 진희는 예리한 직관과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자신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찰한다. 아무리 어려서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삶 속에서 조숙했다고 하나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이모와 할머니집에 세 들어 사는 어른들의 세상을 꿰뚫어볼수 있었을까. 30대 후반의 작가가 열두살 소녀의 마음에 들어가 세상을 본 것이다. 작가는 보여지는 나바라보는 나로 분리한다. ‘보여지는 나12살 강진희이고, ‘바라보는 나38살 은희경이다. 가 하나가 되었다가 떨어졌다가 하며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을 관찰한다.

 

평론가들은 이런 유형의 소설을 액자소설로 분류한다. 이야기 속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액자처럼 끼어 들어 있는 소설이라는 것이다. 삼십대 중반을 넘긴 주인공 가 자신의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액자소설이다.

새의 선물은 어느 소읍의 감나무집에서 일어난 일을 소재로 한다. 감나무집은 우물을 중심으로 두 채의 살림집과 가게채로 이루어져 있다. 집주인인 할머니와 영옥 이모, 서울에서 공부하는 법대생 삼촌과 진희가 가족이고, 또다른 살림집에는 장군이 엄마가 장군이를 키우며 하숙을 친다. 장군이네엔 진희가 다니는 성서초등학교의 최선생과 이선생이 하숙을 한다.

등장인물들은 집안의 우물을 구심점으로 살아간다. 우물에서 감나무집, 소읍, 도청소재지, 서울로 외연이 확장되며 스토리의 공간이 형성된다. 시점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삼선개헌이 이뤄지던 1969년이다. 이승복사건, 통혁당사건, 아폴로11, 선데이서울, 주민등록증 탄생, 대한뉴스 등에서 시대적 흔적이 드러난다.

외할머니에 의해 길러지는 진희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펼치는 삶과 애증관계를 엿보거나 그 허위를 들추어낸다. 12살 소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로 상대방을 얽어매고 관찰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새의 선물’ 100쇄 표지 /문학동네 홈페이지
‘새의 선물’ 100쇄 표지 /문학동네 홈페이지

 

새의 선물1995년에 출간되었다. 은희경의 첫 장편소설이고, 이 소설로 그녀는 스타덤에 올랐다.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2022년에 이 소설은 100쇄를 찍었다. 1년에 평균 네 번 정도 인쇄기를 돌렸다. 독자들이 끊임 없이 이 소설을 좋아했고, 소설은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 팔려나갔다.

이 소설의 무엇이 한국인들의 정서를 자극했을까. 줄거리는 평이하다. 드라마틱한 전개는 없다. 등장인물 한명한명이 우리 주변에 흔히 볼수 있는 사람들이다. 다만 작가는 그들의 애환을 작가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담아냈다. 작중 화자 진희의 관찰력과 판단력은 은희경의 그것이다. 작가는 성년의 관점에서 소녀시절의 풍경을 정교하게 가다듬어 언어로 꿰어 낸 것이다. 우리 주변에 흔히 보고 느끼는 일들이 작가의 손을 거치며 섬세하게 다듬어진 것이 독자층을 형성했을 것이다.

남 험담하기 좋아하고 무슨 일이든 참견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장군이 엄마와 어리무던하고 순해서 매번 진희의 놀림감이 되는 장군이. ‘왕년에 말야하며 과거를 자랑하는 허랑방탕하고 허세 가득한 풍운아광진테라 아저씨, 그런 아저씨에게서 갖은 구박을 받으면서도 도망치지 못하고 여자의 숙명을 받아들이는 광진테라 아줌마, 양장점에서 시다로 일하며 신분 상승의 야심을 위해서 남자를 유혹하다 돈을 훔쳐 도주한 미스 리 언니. 이들은 모두 1960년대말을 산 우리 이웃들이었다.

당시 시대풍조가 그대로 드러난다. 한국여성의 숙명을 받아들이는 할머니, 남편을 떠나려다 돌아온 광진테라 아줌마, 첫키스와 첫사랑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진희는 여성의 시대흐름을 반영한다.

 

스토리는 진희가 돌아온 아버지를 만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고아나 다름없었던 진희가 아버지를 다시 만나고, 새엄마를 만나고 열두살 아래의 동생을 갖게 되는 것으로 외로움을 종식시킨다.

하지만 20여년이 훌쩍 지난 1990년대에 자신의 십대를 돌아본 진희는 세상에 변한 게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정리했다.

”90년대이지만 지금도 세상은 나의 유년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여전히 세계 어느 곳에선가는 베트남전이 일어나고 있고, 아이들은 선생님에게서 위선과 악의를 배워가며 이항렬들은 군대에서 애인을 구하고 뉴스타일양장점의 계는 깨졌다가 다시 시작되며 신분 상승을 위한 미스 리의 교태가 반복되는 한편에서 광진테라 아줌마는 둘째아이를 가짐으로써 뒤웅박 팔자 속에 구덩이를 판다. …… 그때 젊은이였던 이들이 장년이 된 지금도 요즘 젊은이들이 자신의 젊은 시절과 다르다는 탄식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사랑은 여전히 배신에서부터 시작한다.“

 

작가 은희경은 100쇄 개정판을 내기 위해 27년전에 쓴 소설 전체를 처음으로 다시 읽었다고 한다.

이 소설을 쓰던 시절의 내 모습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그때 나는 그동안 믿어온 것이 다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위축되어 있었다. 방치되었고 무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수행해야만 하는 일상은 매일 어김없이 닥쳐왔다. …… 나의 이십칠 년 전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본 기분. 그것은 뭐랄까, 내 삶을 개정판으로 편집해보는 상상을 하는 가운데, 그것을 수행하는 건 결국 나라는 걸 깨치는 순례 같은 것이었다. 삶을 다르게 쓰고 편집했어도 나는 결국 이 자리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그 시절 사랑했던 존재들과 함께.” (네이버 책)

은희경은 새의 선물’ 100쇄 기념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저에게 굉장한 빛이자 동시에 그늘이었어요. 이 책 덕분에 작가 생활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었던 반면 첫 장편이 저의 대표작처럼 평가받으며 어떤 한계 안에 저를 가두는 느낌도 들었죠. 가끔은 지금 내가 쓴 작품이 훨씬 더 잘 썼는데 왜 그 책으로만 평가하나라는 아쉬움도 컸죠. 그래도 27년 전 내가 던진 질문을 독자들이 유의미하게 받아준다는 의미에서 작가로서 가장 큰 보람입니다.” (한겨레신문)

 

<은희경>

1959년 전북 고창 출생.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상속』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중국식 룰렛』 『장미의 이름은 장미, 장편소설 새의 선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그것은 꿈이었을까』 『마이너리그』 『비밀과 거짓말』 『소년을 위로해줘』 『태연한 인생』 『빛의 과거가 있다. 문학동네소설상, 동서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오영수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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