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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아시아족의 땅, 1598년 이후 러시아 영토화…우리 역사와도 관련
인류의 마지막 보고 시베리아가 열린다
2022. 06. 21 by 김현민 기자

 

시베리아 탐사를 시작한다. 아직도 코로나 팬데믹이 완전하게 풀리지 않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이어서 시베리아 입국이 까탈스럽다. 그에 앞서 사전조사와 공부를 하기로 했다. 2022년 여름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동토의 대륙 시베리아로 사이버 여행을 떠난다.

 

시베리아 /브리태니카
시베리아 /브리태니카

 

시베리아(Siberia)는 러시아어로 시비르(Сибирь)라 하고, 로마자로 풀면 ‘Sibir’. 러시아어가 영어화하면서 시베리아가 되었고,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차용하면서 이 용어가 굳어졌다.

시베리아는 러시아 영토 내의 지리적, 행정적 개념의 용어다.

지리적으로는 우랄산맥에서 태평양 연안까지를 말한다. 면적은 1,310으로, 대한민국의 130, 한반도의 60배에 이른다. 인구는 2022년 현재 3,730만명으로 우리나라의 3분의2 정도다.

가장 큰 도시가 노보시비르스크로 인구 150만명 정도이고, 그 다음으로 110만 인구의 옴스크다. 이밖에 토볼스크, 톰스크, 이르쿠츠크 등의 도시가 거대한 대륙의 거점 역할을 한다.

시베리아가 워낙 넓다 보니, 행정구역으로는 우랄 연방관구, 시베리아 연방관구, 극동 연방관구로 크게 셋으로 나눠지고, 연방관구 내에 자치공화국(republic), (oblast), 연방직할지(krai)로 세분화되어 있다.

 

시베리아의 구분. 붉은색은 시베리아 연방관구, 진한 주황색을 합치면 역사적 의미의 시베리아, 밝은 주황색을 포함하면 광의의 시베리아다. /위키피디아
시베리아의 구분. 붉은색은 시베리아 연방관구, 진한 주황색을 합치면 역사적 의미의 시베리아, 밝은 주황색을 포함하면 광의의 시베리아다. /위키피디아

 

역사적으로 시베리아는 아시아 유목민족의 땅이었다. 에네트족, 네네트족, 훈족, 흉노족, 스키타이족, 위구르족, 몽골족, 투르크족이 할거했다. 이들 중 한 종족이 강대해지면 초원지대를 장악하고 중국 중원의 한족을 침공했다. 한족의 공격을 받아 쫓겨날 때엔 시베리아의 유목민들은 유럽 쪽으로 도주했다. 훈족이 그랬고, 투르크족, 몽골족이 시베리아를 지배했고, 이들 종족이 뒤섞여 구별되지 않을 땐 타타르(Tatars)라 불렸다.

시베리아가 러시아 영토가 되기 시작한 기점은 1598년이다. 포르투갈이 인도항로를 개척하고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지 100년 후의 일이다. 서유럽이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을 개척할 때, 러시아는 우랄산맥을 넘어 구대륙 동쪽에 진출했다. 우랄산맥 동쪽은 무주공산이 아니었다. 그곳엔 몽골족과 투르크족이 섞인 타타르족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서쪽의 슬라브족이 넘어오는 것을 용인하지 않았다.

인도유럽족의 일파인 슬라브족을 동쪽으로 유인한 것은 모피였다. 모피는 서유럽의 부르죠아지들에겐 사치품이었다. 소빙기의 추운 겨울이 지속되면서 모피는 유럽에서 중산층에까지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모피 장사에 눈독을 들여 시베리아를 넘본 사람은 스트로가노프 가문이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 일대에 살던 칼잡이 코사크족을 고용했고, 그 두목이 예르마크 티모페에비치(Yermak Timofeyevich)였다. 볼가 강에서 해적 노릇을 하던 불법 집단이 돈과 거래되어 스트로가노프 가문에 붙은 것이다. 그들은 10여년의 원정 끝에 1598년 시비르 칸국(Khanate of Sibir)을 멸망시켰다. 시베리아라는 지명은 시비르에서 연유한다.

이로부터 40년 후인 1639년 러시아 차르의 칙명을 받은 코사크 부대는 태평양에 다다랐고, 1648년 또다른 코사크 집단이 5척의 배를 타고 베링해를 건너 알래스카에 도착했다. 예르마크가 죽은지 60년만에 러시아는 태평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진출한 것이다. 남으로는 아무르강에서 청나라와 충돌해 국경을 정하는 조약(네르친스크 조약)을 맺었다. 징기스칸의 후손들이 중앙아시아 초원과 동유럽을 정벌한 것보다 따른 속도로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집어삼켰다.

 

시베리아의 면적은 아시아의 30%에 이르고, 러시아 국토의 70%를 차지한다. 러시아는 유럽쪽에 인구가 밀집해 있고, 전통적으로 유럽국가임을 자부해 왔다. 하지만 구소련이 해체되고 블라디미르 푸틴이 집권하면서 유라시아(Eurasia)의 개념을 강조한다. 아시아와 유럽은 하나의 대륙이다. 오랜 역사과정에서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갖게 되었지만, 동양과 서양이라는 멱사적 소산은 유라시아를 바탕으로 했다. 지리학자들이 우랄산맥을 기준으로 칼 자르듯 잘라 유럽과 아시아로 나눴다. 푸틴이 유라시아를 강조할 땐 시베리아를 염두에 둔 것이다.

시베리아 인구의 85%가 유럽인이고, 대부분이 슬라브족이다. 러시아는 시베리아인이란 용어를 쓰지만, 슬라브족 또는 코사크족의 후손이다. 원래 주인이었던 아시아족은 10% 정도로 위축되었다.

 

서시베리아 평원의 바시우간 늪지대 /위키피디아
서시베리아 평원의 바시우간 늪지대 /위키피디아

 

시베리아는 우리 역사와도 관련이 있다. 한민족의 기원은 바이칼호 근처라고 하는데, 그곳은 시베리아다. 우리 조상은 시베리아 한 귀퉁이에서 중국과 만주를 거쳐 한반도에 정착한 것이다.

그후 시베리아와의 만남은 러시아와의 접촉과 연관된다. 조선은 효종 때인 1654년과 1658년 두차례에 걸쳐 청나라의 요구로 병력을 파견해 러시아와 전투를 벌였다. 이른바 나선정벌이다.

구한말에 러시아는 한반도에 영향력을 발휘했고, 일본과 한반도 쟁탈전을 벌였다. 1904년 러일전쟁으로 러시아는 한반도에서 손을 뗀다. 2차 대전 종전후 소련군은 만주를 점령했고, 북위 38° 이북지역에 신탁통치를 실시했다. 북한에 김일성 공산정권이 수립된 것은 구소련의 입김에 의한 것이었고, 그후 한반도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우리 영토는 두만강에서 시베리아의 동쪽 끝인 러시아 극동과 맞닿아 있다. 동해는 남북한, 러시아, 일본이 공유하는 내해다. 한반도는 겨울에 시베리아에서 부는 북풍한설이 덮치고, 시베리아에서 한여름을 보낸 철새들이 도래하는 곳이다.

 

시베리아의 1월 연평균 기온이 영하 25°C. 하지만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시베리아의 동토가 녹고 있다. 광활한 대지엔 풍부한 천연자원이 매장되어 있다. 인류가 살기 힘들었던 대지가 이젠 귀한 땅이 뒤어 가고 있다. 시베리아는 인류의 마지막 남은 보고이기도 하다.

 


<참고자료>

Wikipeida, Siberia

Britannica, Sibe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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