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A
“니가 얼매나 복이 많으면 그런 신랑을 만났겠노. 내가 얼마나 복이 많으면 니 같은 딸을 두었겠노. 죽으나 사나 매인 대로 살아야제.”
엄마가 시집간 딸에게 말했다. 딸은 대든다. “늙어 죽을 때까지 이리 살아야 한단 말입니꺼?” (마로니에북스, 298p)
엄마와 딸의 짧은 대화에서 근대화 격변기에 살았던 여자들의 숙명이 드러난다. 여자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한실댁, 숙명의 사슬을 벗어나려는 용란은 불행한 결말을 맺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던 용란은 미쳐버리고, 그를 말리던 한실댁도 마약쟁이 사위에게 살해당한다.
박경리(1926~2008)의 장편소설 ‘김약국의 딸들’은 비극에서 시작해 비극으로 끝난다. 박경리가 인생 후반 26년(1969~1994) 동안에 대하소설 ‘토지’에 매달리기 이전에 30대 중반이던 1962년에 이 소설을 썼다. 36세 젊은 박경리가 세상을 관철하는 시각이 놀랍다.
소설의 배경은 박경리의 고향인 경상남도 통영이다. 고종이 왕위에 오른 1860년대에서 1930년대까지 우리 근세사 격변기에 통영에 사는 한 가문이 3대에 걸쳐 무너져도 철저하게 무너지는 과정을 그렸다. 어머니라는, 아내라는, 딸이라는 굴레에 묶여 사는 여인들의 한 많은 인생이 흑백 영상처럼 움직인다. 아버지의 권위주의, 아들에게 강요되는 의무감, 기울어가는 가세에도 첩 살림 치리는 양반댁, 자본주의가 몰고온 인간관계의 더러운 역전이 함께 어우러진다.
가문의 비극은 구한말 김봉제의 동생 김봉룡의 충동과 격정에서 빚어진 살인행위에서 시작한다. 봉룡은 출가하기 전에 아내의 연인이었던 남자가 집을 찾아오자 질투심에 아내를 패고 그 남자(송욱)을 죽인다. 봉룡은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고 아내 숙정은 누명을 벗기 위해 아들 성수를 남긴채 비상을 먹고 자살한다.
성수는 큰어머니 송씨의 손에 자라는데, 애비는 도망가고 에미는 비상을 먹고 자살했다는 동네 입방아와 콤플렉스를 안고 산다. 큰아버지 봉제가 아들 없이 세상을 뜨는 바람에 성수가 약국을 물려받아 김약국이란 칭호를 얻게 된다.
김약국은 아들을 일찍 잃고 딸만 다섯을 둔다. 용숙, 용빈, 용란, 용옥, 용혜다. 어머니 한실댁과 다섯 딸은, 한편으로 근대 문물이 들어오고 다른 한편에 낡은 사상이 잔존하는 격변의 시기를 살아가는 한국여인의 여러 모습을 대변한다.
김약국의 아내이자 다섯 딸의 어머니 한실댁은 한국적 현모양처의 전형이다.
장녀 용숙은 욕심이 많은데 일찍이 부잣집에 시집갔으나 과부가 된다. 용숙은 아들 동훈을 치료하는 병원 의사와 정을 통하다 들켜 지탄을 받지만 당당하게 자기 삶을 산다. 돈 밖에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어머니의 도움 요청도 거절하는 수전노로 그려진다.
둘째딸 용빈은 영민하고 교육을 받은 엘리트 여성이다. 아마 박경리가 자신의 모습을 그린지도 모른다. 애인 홍섭의 배신으로 상처를 받고 교원생활을 한다. 셋째딸 용란은 미모이나 관능적이며 지적 헤아림이 없어 애욕에 빠지며, 급기야는 아편중독자 연학에게 출가한다. 넷째딸 용옥은 김약국의 어장을 관리해주는 서기두와 결혼하지만 남편의 애정을 얻지 못하고 시아버지의 겁간을 피해 남편을 찾아가다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죽게 된다. 막내 용해는 집안이 모두 망하고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를 잃은후 언니 용빈을 따라 서울로 간다.
소설에서 가장 극적인 여인은 셋째딸 용란이다. 관능적 미인인데다 시대에 반항하는 여인으로 등장한다. 용란에게 가부장의 권위와 한 남자에게만 몸을 허용하는 유교적 억압이 가해진다.
아버지 김약국은 용란을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서기두에게 시집보내려 한다. 용란은 서기두에 관심이 없고 머슴의 아들 한돌과 사랑에 빠지는데, 아버지에게 들키고 만다. 아버지는 한돌을 내쫓아 버린다. 아버지는 몸을 버린 용란을 아편쟁이이자 성불구인 연학에게 시집을 보낸다. 그녀는 남편에게서 가정폭력을 당하며 서서히 미쳐간다. 남편 연학이 감옥에 가 있을 때 도망쳤던 옛사랑 한돌이 찾아와 다시 사랑을 하게 된다.
어머니 한실댁은 그 사실을 알고 말린다. 연학이 감옥에서 돌아와 용란의 부정을 알게 된다. 아편쟁이 연학은 도끼를 들고 한돌을 죽이고, 그를 말라던 장모 한실댁도 살해한다. 용란은 미친년이 된다. 아버지가 정해준 남자에게 시집가야 하는 시절, 사랑하는 남자와 이별해야 하는 여인, 마음에 없는 결혼, 두드려 맞는 아내의 모습은 지금은 용서되지 않는, 구시대의 잔영을 박경리가 체험하며 글로 풀어나갔다.
“비상 묵고 죽은 자손은 안 지린다더니 정말 그런갑습니다. 그 집 딸을 보이소. 하나나 쓰겄는가. 큰딸이 그렇지요. 둘째는 시집도 못가고, 셋째는 어마이까지 잡아묵고 미쳤으니, 넷째는 또 어떻고요? 없는 살림에 고생이 막심한갑습니더.”
“그러기. 김약국인가 그 양반도 엔간히 도도하더라마는 음지가 양지가 되고, 양지가 음지가 되고……,” (P386)
김약국네는 철저하게 몰락한다. 사업은 망하고 딸들은 동네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소설은 김약국이 죽고 용빈과 용혜가 서울로 떠나는 것으로 끝난다. 남은 재산은 부채의 담보를 해제하면서 사라졌다. 부자 3대 못간다더니, 떵떵거리던 한 어촌도시의 양반댁은 이렇게 무너졌다. 박경리는 구시대의 몰락을 슬프게 묘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