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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파키스탄의 파르시, 타타그룹의 창시자, 록가수 머큐리 퀸 등
조로아스터가 남아 있는 곳
2022. 07. 12 by 박차영 기자

 

조로아스터(Zoroaster)라는 인물은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나 들어보았을 고대 철학자이자 종교가인데, 종종 현대에도 거론된다. 영국 록그룹 퀸의 리드싱어 프레디 머큐리가 조로아스터 교도인 파르시 출신이다. 오늘날 조로아스터라는 이름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한 사람은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다. 그의 대표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등장한 주인공 차라투스트(Zarathushtra)라는 조로아스터의 독일어 발음이다.

또 르네상스 화가로 유명한 라파엘로는 교황 서재로 사용했던 서명의 방벽화에 조로아스터를 그려 넣었다. 카톨릭 수장이 조용히 성경을 읽는 방에 이단종교의 창시자 얼굴이 그려진 것이다. 라파엘로의 명화 아테네 학당’(The School of Athens)에 조로아스터는 수염을 기르고 손에는 별이 가득한 천구를 손에 들고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조로아스터교는 우리나라에서 배화교(拜火敎)로 번역되고 있지만, 정확한 번역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

 

라파엘로의 그림 ‘아테네 학당’에 등장하는 조로아스터가 천구를 손에 들고 있다. /위키피디아
라파엘로의 그림 ‘아테네 학당’에 등장하는 조로아스터가 천구를 손에 들고 있다. /위키피디아

 

조로아스터는 고대의 인물임은 분명한데, 그가 태어난 시기와 장소, 활동이 분명치 않다.

조로아스터의 생존 시기는 BC 18세기에서 BC 6세기까지 진폭이 넓다. 그가 태어난 곳은 이란 북동부 어디인가로 알려져 있는데 구체적인 장소는 적시되지 않는다. 조로아스터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한 종교가 조로아스터교인데, 이 종교는 인도-파키스탄 일부에만 남아 있을 뿐 거의 사라졌다. 다만 조로아스터가 기독교와 이슬람에 미친 영향은 지대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로아스터에 대한 기록은 아베스타(Avesta)라는 경전에서 언급된다. 아베스타는 1천년 이상 구전으로 전해져 오던 조로아스터와 주신(主神)인 아후라 마즈다의 가르침을 3~4세기경 사산조 페르시아에서 문자로 기록된 것이다. 따라서 조로아스터는 후세의 종교가에 의해 다듬어진 인물이다.

조로아스터는 최고의 신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h)에게서 직접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아후라 마즈다는 지고의 신이며, 만물의 창조주이며, 정의의 수호자다.

 

조로아스터교의 상징 파라바하르(Faravahar) /위키피디아
조로아스터교의 상징 파라바하르(Faravahar) /위키피디아

 

조로아스터교는 세계를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파악한다. 선과 악의 대결에서 최종적으로 선이 악을 물리치고 유일신만 남게 된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이분법적 세계관이 조로아스터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종교철학자들의 해석이다.

조로아스터는 선과 악의 대결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한다. 인간은 선과 악을 실천한 자유의지를 갖고 있으며, 긍극적으로는 선이 악을 이기기 때문에 선을 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과 악, 정신과 물질, 진리와 거짓의 조로아스터식 이분법은 기독교 세계에도 관철한다. 선을 행하는 윤리적 결단이 인간의 의지라는 것이다.

조로아스터는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하고, 거짓된 종교를 버리고 진실한 종교를 택하라고 설파했다. 그는 악에 대해 성전(聖戰)을 벌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역사관은 유대교와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에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로아스터의 사상과 교리는 BC 6세기경 페르시아에서 처음 나타났다. 페르시아 대제국을 형성한 다리우스 1세는 그리스를 정복하고자 대군을 이끌고 침공했으나 실패했다. 그의 페르시아는 조로아스터를 유럽에 전파했다. 이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페르시아가 패망하고 조로아스터교도 거의 잊혀졌다가 AD 3세기에 사산조 페르시아가 시작되면서부터 조로아스터교는 다시 일어서게 되었다. 하지만 이슬람이 페르시아와 중동을 석권하면서 조로아스터는 인도와 이란 일부에서 쇠락한채 존속하게 되었다.

 

인도 타타그룹 창업자 짐세트지 타타 /위키피디아
인도 타타그룹 창업자 짐세트지 타타 /위키피디아

 

인도의 조로아스터교도는 파르시(Parsi)라고 하는데, 18-19세기부터 상공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현재 인도 경제계에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인도의 파르시는 19세기에 뭄바이를 중심으로 상공업을 크게 일으켰다. 이들은 면방적업을 발달시켜 인도 민족자본의 대표적 존재가 되었다. 이들은 이지적이고 진취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인도 최대의 재벌로 꼽히는 타타그룹 창업자 짐세트지 타타(Jamsetji Tata)가 파르시다. 파르시는 2014년 기준으로 인도에 7만명(2014), 파키스탄에 2만명(2016)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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