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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솔제니친의 출세작…소련 사회 고발과 함께 인간들의 실존적 모습 표현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 드러난 인간군상
2022. 07. 13 by 박차영 기자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로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고 세계적인 문인으로 부상했다. 그는 스탈린 치하의 강압주의에 저항한 민권운동가로 부각되었다. 무엇보다도 이런 반동적 서적이 소비에트 사회에 출판될수 있었던 것은 니키타 흐루쇼프 서기장이 민주화의 공간을 부분적으로 열어 놓았고, 편집자 알렉산드르 츠바르도프스키의 강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솔제니친은 서방사회가 동서냉전을 치르면서 의도적으로 키운 인물일 수도 있다.

솔제니친(Aleksandr Solzhenitsyn)1918년 카프카스의 한 마을에서 태어나 대학을 마친후 교사로 재직했다. 군에 입대해 2차 대전에 참전, 포병 대위로서 동프로이센에서 근무했다. 그는 군인의 신분으로 편지에 스탈린을 비판한 글을 쓴 것이 발각되어 강제노동수용소 8(19451953), 추방 3년형을 언도받았다. 그는 여러 유형지를 돌며 소용소를 경험했고, 마지막에는 카자흐스탄의 에키바스트루즈(Ekibastuz)의 굴락(gulag)에서 노동을 강요당했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카자흐스탄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쓴 것이다.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솔제니친 자신을 비유했다. 슈호프는 독소전쟁(2차 대전)에서 독일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했는데 상관이 그를 적에게 회유된 스파이라고 몰아붙여 국가반역죄를 저지른 죄수가 되었다. 솔재니친은 형법 58조를 위반한 혐의를 받았는데, 소설에도 스토리가 비숫하게 전개된다.

주인공 슈호프는 1941623일 집을 떠났는데, 그는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마을 사람들에게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소설은 형기 현재 8년째가 되는 1951년 새해가 밝은 11일의 하루 일과를 썼다. 주인공 슈호프는 형기를 마치려면 겨울을 두 번, 여름을 두 번, 그러니 2년을 더 있어야 한다. 그는 이제 세상에 태어난지 40년이 되었다. 군대로 치면 제대말년이다. 또 같은 일상의 하루가 지겹도록 지나간다.

영어 제목은 이반 데니소비치 인생의 어느 하루’(One Day in the Life of Ivan Denisovich). 국내에선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로 번역되었는데, 민음사에선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라는 제목을 달았다.

책 표지(민음사)​
책 표지(민음사)​

 

소설엔 인간군상들의 다양한 모습이 드러난다. 저항소설이라기보다는 강제수용소에서 인간의 실존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

하루의 일상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중 하나가 수용소를 나가고 들어오는 과정에서 신체검사다. 규율감독관 볼코보이 중위가 작업장으로 가는 죄수들의 몸을 수색했다. 체자리는 플란넬로 만든 셔츠를, 부이노프스키는 조끼와 털 목도리를 체크당했다. 부이노프스키는 참지 못하고 볼코보이에게 대들었다. 부이노프스키는 자신의 수뢰정 위에서는 용감한 용사였겠지만, 수용소 생활은 아직 석달이 안 된 애송이였다. ”당신들은 소비에트 시민이 아닙니다.“ 전직 해군중룡이 덧붙였다. “당신들은 공산주의자들이 아니란 말입니다. 볼코보이는 참을수 없었다.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네놈은 중영창 열흘이야!“ (민음사 44)

 

입소한지 석달밖에 되지 않는 부이노프스키는 함장 시절의 권위를 빼지 못했다. 그는 감독관에 대들다가 영창신세를 진다. 수용소 생활 8년차의 슈호프는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참고 있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하고 공연히 대들거나 따졌다가는 손해보는 것은 자신 뿐이고 생각한다. 체념이 일상화되어 있다.

죄수들을 통제하는 수단은 급식이다. 1개 반을 통제하려면 집단 의무감을 부여한다. 반 전원이 빵조각을 더 얻느냐, 뜨거운 죽을 먹느냐 하는 문제에 사활을 건다. 하나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그 놈 때문에 반원 모두가 배를 곯거나 추위에 떨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강요하는 구조가 형성된다.

 

수용소에 끌려온 사람들은 억울한 사람이다.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는 스탈린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침례교도인 알료쉬카는 종교신봉자라는 이유로, 반장 추린은 아버지가 부농이라서, 영화감독 체자리는 불온한 영화를 찍었다는 게 이유였다. 스탈린 시대는 공산주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 부자도, 종교도, 부르죠아 문화도 척결했다. 그 결과는 무고한 죄인의 양산이었다.

죄수들은 아침부터 영양가 적은 빵에 멀건 국물 한사발 얻어먹고 땅을 파고 벽돌을 쌓는 노동현장에 가야 했다.

 

이런 억압 사회에도 다양한 인간본성이 나타난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소포로 보내온 물건을 감춰두고 동료들에게 밀거래하며 돈을 버는 라트비아인, 동료들을 밀고해 편안한 보직을 받고 사는 판첼레예프, 작업현장에서 잠을 자다 독방신세를 지는 몰도바 출신 죄수 등

그런 가운데 수용소 생활에서 스스로 만족을 찾는 사람도 있다. ”침례교도 알료쉬카는 뜨는 해를 바라보며 즐거운 듯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뺨은 움푹 들어가고, 무슨 돈볼이 하나 제대로 못하고 배급에만 매달려 겨우 살아가는 처지에 뭐가 즐겁다고 웃는단 말인가. 일요일이면 수용소 안에 있는 다른 침례교도들과 함께 모여 저희들끼라 수군거리곤 한다. 수용소에서 그들의 생활이란 물 만난 오리 같다.“ (p54~55)

죄수 사회를 만든 것은 소비에트 사회다. 하지만 죄수들의 하루 일과에서 경쟁자는 상대방 죄수다. 그들은 다른 반원보다 식당에 먼저 가기 위해 작업장에서 달려와야 한다. 그들은 양배춧국 한 대접을 얻기 위해 투쟁을 벌인다. 당연히 지급되어야 할 한 그릇의 양배추국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9호 막사, 104반 소속 췌-854번 죄수 이벤 데니소비치는 2년후에 형기를 마치고 석방된다. 날수로 3,653일이다. 윤년이 세번 들어 있었기 때문에 사흘을 더 살았다. 군대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하루 더 갇혀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잘 알 것이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1974, 서독) /위키피디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1974, 서독) /위키피디아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1962년 잡지 노비미르’(Novy Mir, New World) 11월호에 실렸다. 이 소설로 솔제니친은 일약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편집자 츠바르도프스키의 용기도 있었고, 바야흐로 흐루쇼프 시대였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흐루쇼프가 실각하면서 자유가 억압되고 그의 작품 발표도 막혀 버렸다. 1969년 그는 소련 작가동맹에서 제명당했다.

국내에서 그의 작품은 다시 탄압받았으나, 197011월 스웨덴 한림원은 러시아 문학의 훌륭한 전통을 추구해 온 노력을 높이 평가해 노벨 문학상을 수여했다. 그의 작품은 소련 내에서 금지되었지만 해외에서 발표되었다.

강제노동수용소의 내막을 폭로한 수용소 군도의 국외 출판을 계기로, 그는 19742월 강제추방을 당했다. 그는 서독, 스위스를 떠돌다가 미국 버몬트 카벤디시에서 살았으며, 소련 붕괴 후인 1994, 20년간의 망명생활을 마치고 러시아 시민권을 회복했다.

솔제니친은 대러시아 민족주의자다. 그는 우크라이나 독립에 반대했고, 유대인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는 소련의 억압구제를 반대한 측면에서 서방세계의 관심을 끌었지만, 편협한 슬라브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7년 국가공로훈장을 받았고, 200883일 심장마비로 모스크바에서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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