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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3~1415년 사이 중앙아시아 거쳐 아프가니스탄까지 17개국 순방외교
명초 鄭和에 못지 않는 서역 외교관 陳誠
2022. 07. 14 by 박차영 기자

 

중국사에 명()나라는 몽골()을 중원에서 몰아낸 한족 정권이다. 명을 건국한 홍무제(주원장)는 말이 황제이지 중국 동부 한족 거주지역을 차지한 지방정권의 왕에 불과했고, 몽골은 물론, 티베트, 서역, 만주에는 독자 정권이 수립되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3대 영락제는 환관 정화(鄭和)를 보내 해상을 통해 대규모 해외원정을 벌였고, 환관 이시하(亦失哈)를 흑룡강과 사할린에 보내 만주 일대를 지배권에 두었다. 서역 지방에 보낸 인물이 진성(陳誠·천청)이다.

 

명조 영락제 시기에 진성(陳誠)의 사행길, 정화(鄭和)의 항해로, 이시하(亦失哈)의 하천수로. /위키피디아
명조 영락제 시기에 진성(陳誠)의 사행길, 정화(鄭和)의 항해로, 이시하(亦失哈)의 하천수로. /위키피디아

 

이들중 우리나라에 잘 소개되지 않은 명조의 진성에 대해 살펴보자.

진성(13651457)은 자가 자로(子鲁), 호가 죽산(竹山)이며, 장시성 린촨(臨川)에서 태어났다. 홍무제 때인 1393년에 과거에 급제했다. 그는 새로 건국한 명나라의 외교사절 역할을 맡았다. 홍무 연간인 1396년에 칭하이(青海) 위구르 지역을 방문해 변방 방위에 관해 황제의 뜻을 전하고, 1397년엔 베트남(안남)에 사신으로 가서 안남(安南)에게 빼앗겼던 思明 지역을 돌려 받았다. 그후 베이징에서 도서관을 관장하는 내근직을 맡다가 영락제 시기에 본격적으로 황제의 칙사로 서역지방을 다녀오게 된다.

진성은 영락(永樂) 11년부터 13(1413~1415) 사이 2년 동안 서역 여러나라를 다녀오면서 여행한 내용을 서역행정기’(西域行程記)에 담아 영락제에 보고했다. 이 여행기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서역행정기에 따르면, 진성은 멀리 아프가니스탄의 헤라트(哈烈), 우즈베키스탄 사마르트(撒馬兒罕), 타슈켄트(達失干), 부하라(卜花兒), 중국 신쟝의 투르판(土魯番), 하미(哈密) 17개국을 다니며, 신생 명나라 천자의 위대함을 강조하며 중화주의를 강조했다.

당시 서역은 티무르제국이 전성기였다. 티무르는 살아 몽골족을 밀어낸 명나라를 치려고 했지만, 그가 죽은 후 후손들은 더 이상 명조와의 적대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그 틈에 진성은 서역을 다녀갔고, 서역행정기 이후에도 1416, 1420년에 티무르 왕조의 수도 사마르칸트를 다녀갔다.

 

진성이 방문한 후 서역의 왕들은 기뻐하면서 모두 명과 교류하고자 했고 각각 사신을 파견해 진성 등을 따라서 명에 들어가 했다고 중국사엔 기록되어 있다. 중국 특유의 사관이다.

진성은 그의 기행기에 자신이 사절로 간 곳의 산천과 성곽들, 그리고 그 풍속과 물산을 기록해 두었다. 황제는 그의 기록을 보고 기뻐하며 칭찬했고 상을 내리고 낭중(郎中)으로 발탁했다. 영락 14년에 헤라트, 사마르칸트 등 서역의 여러나라들이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입공했다. 서역의 소국들이 티무르가 죽은후 명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좋다고 본 것이다.

 

티무르(재위 1370~1405)는 명과 적대관계를 유지했다. 홍무제는 몽골을 북쪽으로 내쫓고 서역에 자주 사신을 파견하고 비단과 화폐를 보내 회유하려 했다. 그러나 티무르는 명의 사신을 사마르칸트에서 억류하고 몇 년간 보내주지 않았다. 티무르는 명나라를 치려고 준비를 했으나, 그가 죽는 바람에 그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영락제(재위 1402~1424)는 티무르가 죽자 서역과 화해할 기회를 얻었고, 그 역할을 진성에게 맡긴 것이다. 진성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서역을 다녀갔다. 그의 서역행정기에 기록된 시간은 영락 12년 정월 13일부터 그해 윤9월 초하루까지 250여 일간이었다. 또한 기록된 거리는 지금의 깐수(肅州) 주취안(酒泉)에서부터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헤라트까지 총 11.000여리였다.

그의 서역 사행(使行)은 고생길이었다. 그의 기행문을 일부 인용한다.

“29일 맑음. 일찍 일어나 북쪽으로 갔는데 약 50여리를 가니 비로소 평원이 끝났다. 작은 시내가 언 곳에서 막사를 치고 주둔하였다. 얼음을 깨서 물을 끓여서 사람과 말에게 마시게 했다.”

“17, 맑음. 아침 일찍 일어나 서북쪽으로 갔는데 높고 낮게 모래가 쌓여 있고 인가는 없으며 길은 조악하다. 90여리를 가는데 물과 풀이 조금 있는 곳에서 막사를 치고 주둔했다.”

“11일 맑음. 아침 일찍 일어나 서남쪽으로 갔는데 평지를 지나서 약 70여리를 가서 혼탁한 강에 이르렀다. 배가 대여섯 척 있어서 짐을 건널 수가 있었다. 말이 물속을 건너다가 빠져서 죽는 것들이 정말 많았다. 하루를 머물렀다.”

 

하지만 진성이 고생해서 이루어 놓은 서역과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영락제가 죽은후 신쟝 지역에 몽골 일파인 오이라트가 흥기했다. 1449년 오이라트의 군주 에센 타이시가 명 황제(정통제)를 포로로 사로잡는 토목의 변(土木之變)이 발생하기도 했다.

 


<참고자료>

Wikipedia, Chen Cheng (Ming dynasty)

송정화, 西域行程記明初西域, 2017, 이화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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