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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괴테가 60년에 걸쳐 쓴 희곡, 독일문학의 정수…선과 악의 인간 내면 그려
‘영원한 여성’ 통해 파우스트 구원받다
2022. 07. 29 by 박차영 기자

 

독일의 문호 괴테는 82세를 산 자신의 인생 가운데 60년 가까이를 파우스트(Faust)를 쏟았다. 따라서 파우스트는 그의 인생 역작이며, 독일 문학의 최고봉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가 살았던 시기에 영국에선 산업혁명이, 프랑스에선 시민혁명이 일어났다. 그가 살던 독일에는 허울만 남은 신성로마제국이 해체되었지만 수십개의 작은 나라들로 분열되어 있었다. 게다가 독일엔 봉건적 앙시앵 레짐이 억압구조를 형성하고 있었다. 파우스트는 이런 독일의 정세 속에서 쓰여졌다. 과학의 발전과 개인적 자유의 요구가 기독교 질서에 불신을 제기하는 가운데 선과 악이란 개념도 혼란스러운 시절이었다. 괴테는 질풍과 노도의 시기에 파우스트를 통해 선과 악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고 그 해답을 찾으려 했다.

 

괴테는 영원한 여성’(das Ewig-Weibliche)에서 해답을 찾았다. 그는 영원한 여성이 악마와의 계약에서 패배한 파우스트를 구하도록 설정했다. 원래 전설대로 희곡을 끝맺으려면 파우스트는 영혼을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주어 지옥에 떨어져야 한다. 그런데 괴테는 독일에 떠도는 전설과 달리 파우스트 1부에 나오는 여주인공 그레첸을 2부 마지막에 다시 등장시켜 그를 구원하도록 한다. 그레첸과 성모마리아를 여성성(feminine)의 상징으로 끌어내 죄 지은 파우스트를 하늘나라로 올라간다.

 

영광의 성모가 그레첸에게 말한다. “, 이리 오너라. 보다 높은 나라로 오르라! 그 사람도 너 인줄 알면 따라 오리라.”

마리아를 숭배하는 박사는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올린다. “모든 회개하는 연약한 여인들아. 구원의 눈초리를 우러러 보라. 거룩하신 신의 심리를 따라서 감사하며 스스로를 변모시키기 위해.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 누구나 받들어 모시는 동정녀여, 어머니여, 여왕이시여. 여신이여, 길이길이 은혜를 베푸소서.”

신비의 합창이 노래한다. “일체의 무상한 것, 한낱 비유일 뿐. 미칠수 없는 것 여기에 실현되고, 말할수 없는 것 여기에 이룩되었네. 영원한 여성은 우리를 인도한다.”(민음사, 정경석 번역 600~601p)

 

괴테는 파우스트 영원한 여성은 우리를 높은 곳으로 인도한다고 마지막 문장을 맺었다.

(원문: Das Ewig-Weibliche Zieht uns hinan,)

(영역: The eternal-feminine Draws us on high.)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영원한 여성에 대해 정의를 내리지 않았다. 다만 앞의 문맥에서 영원한 여성은 파우스트의 여인이었던 그레첸이나 헬레네일수도, 요한복음의 사마리아 여인, 누가복음의 죄 많은 여인일수도, 성모마리아일수도 있다. 구체적인 여성이라기보다 추상적인 여성, 즉 여성성을 말한 것이다.

 

폴 세잔의 “영원한 여성”(1877) /위키피디아
폴 세잔의 “영원한 여성”(1877) /위키피디아

 

파우스트는 15~16세기에 실제로 살았다는 요한 게오르크 파우스트라는 마술사라고 한다. 1480년경에 태어난 그는 신학을 공부하고 각지를 돌아다니며 자연철학의 지식을 몸에 익히고, 인문주의자와 교류했다. 그는 1540년경에 갑작스럽게 죽었는데, 악마가 그의 생명을 빼앗았다는 전설을 만들어 냈다. 괴테 이외에 영국의 C. 말로, 독일의 레싱, F.M. 클링거. N. 레나우, 하이네, 토마스 만 등 수많은 작가들이 파우스트 전설을 테마로 사용했다. 대다수 작품에서 파우스트는 악마에 의해 파멸되는데, 괴테만이 파우스트를 구제했다. 괴테는 파우스트가 그렌첼과 헬레나 두 여인을 파멸시키지만 영원한 여성이란 개념을 통해 죄인을 구제한다는 역설을 만들어 냈다.

 

괴테가 파우스트를 쓰기 시작한 것은 1773, 즉 그의 나이 24세로 슈트라스부르크대학에 다닐 때였다. 이렇게 시작한 파우스트는 그가 죽기 1년전인 1831년에 비로소 완성되었다. 무려 58년이나 걸렸다. 집중적으로 쓴 시기는 몇 년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어쨌든 그의 인생을 거쳐 쓴 작품이기 때문에 고대와 당대의 시간, 그리스와 독일의 장소를 넘나들며 방대한 내용을 담았다.

주인공이 파우스트인지 악마 메피스토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두 요소가 인간의 내면에 공존하는 야누스적 인물을 설정한 것일수도 있다.

스토리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섭렵하고도 환멸에 빠진 파우스트 박사가 악마 메피스토와 계약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에게 자신의 종이 되어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전부하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대신에 내가 어느 순간을 보고 섰거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말한다면 너는 나의 영혼을 가져도 좋다고 말한다.

이 장난스러운 약속은 마지막까지 지켜진다. 뒤를 돌아보지 말아라, 아무와 대화하지 말아라 하는 귀신과의 약속은 신화와 전설에 많이 나오는 내용이다. 동화와 같은 약속을 내걸고 파우스트는 학문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 즉 쾌락의 세계로 내려온다. 쾌락의 세계는 공부만 하던 사람을 흥분시켰다. 술도 먹고 여인도 사귄다. 그는 1부에서 여염집 처녀 그레첸, 2부에서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의 미인 헬레네와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랑은 모두 비극으로 끝난다. 그레첸과 헬레나와의 사랑이 만든 아이들도 모두 죽는다.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안톤 카울바흐) /위키피디아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안톤 카울바흐) /위키피디아

 

두번의 파우스트 사랑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레첸과의 사랑은 기독교에서 금지하는 혼전임신이다. 그들의 사랑은 불법이었고, 그래서 파멸로 종결되었다. 그레첸의 어머니, 오빠가 죽고 그레첸은 감옥에 가고 아이도 잃는다. 파우스트는 난봉꾼이었을 뿐이다. 죄를 지은 자는 파우스트인데, 죽는 사람은 그레첸과 주변인물이다. 대단히 모순된 내용이 기독교적 윤리, 남성중심적 관습에 의해 전개된다.

2부는 황제가 등장하고 트로이전쟁의 주인공들이 소환되는 판타지 소설과 같다. 황제는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염두에 둔 것 같다. 괴테는 평상시 신성로마제국에 대해 신성하지도, 로마답지도, 제국도 아니다고 비아냥거렸다. 파우스트 2부에서도 황제에 저항해 민란이 일어나고 제후들이 반역을 도모한다. 파우스트는 황제파에 가담해 북쪽 해안의 저지대를 얻어 간척사업을 벌인다.

2부의 사랑도 판타지성이다. 그리스 신들이 모두 등장하고 지하의 세계로 들어가 죽은 헬레나와 그의 남편 메넬라오스 왕이 현실의 세계에 부활한다. 어떤 해설자는 파우스트 2부가 어렵다고 하는데, 환상의 세계라고 생각하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여기서 파우스트는 메넬라오스와 싸워 헬레나를 쟁취한다. 트로이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헬레나를 차지하지만 파우스트의 사랑은 또다시 비극을 불러들인다. 아들 오이포리온이 죽고 헬레나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의 세계로 돌아간다.

 

라이프찌히의 아우어바흐 지하실 술집에 서 있는 메피스토와 학생 동상 /위키피디아
라이프찌히의 아우어바흐 지하실 술집에 서 있는 메피스토와 학생 동상 /위키피디아

 

1부에서 파우스트는 학식이 많은 박사로 등장하지만, 2부에선 제후로 등장한다. 2부의 파우스트는 황제를 도운 댓가로 북부 해안지대의 땅을 얻어 간척사업을 한다. 그의 간척사업은 자유민들에게 땅을 주기 위한 것인데, 오히려 자기의 집을 지키려는 노인 부부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죄악을 저지르게 된다. 그는 우수라는 회색여인에 의해 눈이 먼 상태에서 간척사업을 마무리한다. 그는 마침내 멈춰서라, 너는 진정 아름구나라고 말한다. 그는 악마와 약속한 금기어를 입으로 내뱉고 말았다. 그 직후 그는 죽는다. 그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와 악마 메피스토에게 넘어가려는 찰라에 천사들이 나타나 장미를 뿌리며 파우스트의 영혼을 뺏아간다.

 

천사들은 말한다. “영의 세계의 귀한 분이 악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언제나 노력하며 애쓰는 자를 우리는 구원할수 있습니다.” (p593)

이 대목이 희곡의 주제라고 할수 있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파우스트는 속죄를 위해 무슨 노력을 하고 애를 썼나. 그는 구원을 받을 자격이 있었나. 괴테의 이 표현은 어쩌면 견강부회다.

이 죄많은 파우스트의 영혼은 메피스토펠레스와의 약속대로 악마에게로 건너가 파멸되어야 한다. 괴테의 작품 속에 파우스트는 너무나 많은 죄를 저질렀다. 평범헌 처녀 그레첸을 유혹해 그녀와 그의 가족을 파멸시켰고, 간척사업을 하면서 선량한 노부부를 살해했다. 당연히 지옥에 떨어져야할 파우스트는 영원한 여성이라는 괴테적 해석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

천사들이 사랑의 장미를 던지자, 메피스토펠레스는 천사에게 파우스트의 영혼을 빼앗긴다.

천사들은 합창한다. “여인들의 손에서 나온 그 장미꽃이 우리들의 승리를 도았습니다. 악마들은 사랑의 고통을 받았던 것이지요.” (p594)

속죄하는 여인(그레첸)이 성모에게 매달린다. “굽어보소서. 비길 데 없는 당신이여! 광명에 넘쳐 흐르는 당신이여! 제발 저의 복됨을 인자하게 얼굴을 돌리시어 보시옵소서. 옛날 사모하던 그분이 이젠 아무런 더러움 없이 그분이 돌아왔습니다.”

성모는 말한다. “자 이리 오너라. 보다 넓은 하늘로 오르라. 그 사람도 너인줄 알면 따라 오리라.”(p599~600)

 

괴테는 마지막 장면에서 파우스트의 구원자로 1부에서 사랑하던 여인 그레첸을 끄집어냈다. 그레첸은 크리스천이었다. 헬레나는 메피스토가 말하듯 이교도다. 괴테는 고대 그리스인을 현세에 등장시켜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억지를 만들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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