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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표트르 대제(재위 1682~1725)는 바다를 갖고 싶었다. 모스크바 공국에서 출발한 러시아제국은 전통적인 내륙국가였다. 서유럽의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은 오래 전에 대양에 진출해 해외식민지를 개척하고 있었다. 차르는 북쪽의 스웨덴, 남쪽의 오스만 투르크를 이기려면 해군력을 강화해야 하고, 조선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표트르 1세는 스스로 250명의 사절단을 이끌고 1697년 네덜란드, 영국, 오스트리아, 독일, 몰타를 두루 순방하며 17개월의 대장정을 벌였다. 네덜란드 조선소에선 차르가 직접 연장을 잡고 목수일을 한 이야기는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진다.
바다를 얻기 위해 표트르 대제는 남쪽에 크림 칸국, 북쪽에선 스웨덴과 싸웠다. 크림칸국에선 흑해의 아조프해를 얻었지만, 오스만이 보스포루스 해협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북쪽에서 항구를 얻어야 했다. 표트르는 북쪽 발트해에 부동항을 얻기 위해선 스웨덴과 전쟁을 벌였다. 표트르는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발트해로 나가는 출구를 확보했다. 차르는 발트해 항구에 수도 건설을 명령했다. 그렇게 건설된 도시가 싱트페테르스부르크(St Petersburg)였는데, 1713년 차르는 수도를 그곳으로 이전했다.
표트르 대제는 제국의 북쪽과 남쪽의 영토를 넓히는데 성공했지만, 동쪽 끝이 어디인지 궁금했다. 그의 재위 기간에 러시아는 시베리아 동쪽 끝에 진출해 있었다. 다만 동북쪽에서 축치족이 완강하게 저항하고, 캄차카 반도에선 코랴크족이 코사크와 힘겨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시베리아종족의 제압은 시간의 문제였다.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은 시베리아 끝이 어디인지,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당시 지리학계에선 시베리아와 아메리카 사이에 바다가 있는지 여부와 해로가 있다면 북극해를 통해 중국에 갈수 있는지 여부를 놓고 논쟁이 분분했다.
표트르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재위 말년에 국책사업을 벌였다. 그는 러시아의 지식인과 기술자, 항해자만으로 이 어려운 해답을 찾는 것은 역부족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유능한 외국의 학자들을 불러 모았다. 외국의 선진기술을 배우려면 외국의 두뇌를 사거나 빌리면 된다. 외국인 인재로 국내 인재를 양성한다는 생각이었다. 스스로 서유럽에 나가 기술을 배운 통치자여서 그는 유럽에서 당대 최고의 전문가를 상트페테르스부르크로 초빙했다. 이들을 모아서 1724년에 만든 것이 러시아과학아카데미(Russian Academy of Sciences)다. 이 연구소는 지금도 러시아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핵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독일의 식물학자 다니엘 메서슈미트(Daniel Gottlieb Messerschmidt)가 차르의 부름을 받고 상트 페테르스부르크로 왔다. 표트르는 그에게 시베리아를 돌아디나며 귀한 약용식물을 찾아 보고하라고 했다. 메서슈미트는 1719~1727년 사이에 서부와 중부 시베리아 구석구석을 탐사했다. 그는 시베리아의 지리와 지질, 식물 및 동물분포, 인종 및 언어 등을 조사햇다. 메서슈미트는 시베리아에서 149종의 광물을 발견했고, 1,290종의 식물을 찾아냈으며, 그중 395종은 러시아만 보유하는 식물로 분류했다. 아울러 척추동물 260종도 조사했다. 이 독일인은 자신의 조사결과를 꼼꼼하게 정리해 시베리아 연구의 가초자료로 남겼다.
독일인으로는 식물학자 요한 그멜린, 수학자 게오르그 빌핑거, 지리학자 게하르트 뮐러 등이 러시아과학아카데미에 참여했다. 프랑스에서는 천문학자 요세프 델릴 형제가 참여했다. 이들의 연구기 진행되면서 미지의 세계 시베리아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고, 시베리아학이란 개념이 생겨났다.
표트르는 수학의 미적분학을 발견해 당대 유럽 최고의 과학자로 인정받던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Gottfried Wilhelm Leibniz)를 수차례 만났다. 1716년 라이프니츠는 독일을 찾아온 표트르에게 아시아대륙과 아메리카 대륙 사이에 다리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메리카 대륙에도 사람이 사는데 그들이 아시아인과 다를 게 없다. 그들도 아시아에서 건너갔을 터이고, 그러자면 두 대륙 사이에 육로가 있다는 것이다. 표트르는 대학자의 말에 귀가 솔깃해 1719년 러시아의 측지전문가 예브레이노프(Iwan Jewreinow)와 루쥔(Fjodor Luschin)을 캄차카반도로 보냈다. 이들은 캄차카반도와 쿠릴열도를 그려 넣은 지도를 제출했지만 아시아와 아메리카의 연결부분에 대해선 답을 내놓지 못했다. 표트르는 이 대답을 찾기 위해 1724년 제1차 캄차카 원정대를 조직했고, 원정대 대장에 덴마크 항해가 비투스 베링을 지명했다.
베링(Vitus Jonassen Bering, 1681~1741)은 덴마크 해안마을 호르센스에서 태어났다. 베링이 태어나자 곧바로 아버지가 숨졌고 어머니가 재혼했다. 배 다른 두 형은 코펜하겐대학을 다녔지만, 베링은 일찍부터 바다를 선택했다. 베링은 15살에 공부를 그만두고 선원이 됐다. 그는 덴마크 포경선을 타고 북대서양을 누볐다. 베링은 북아메리카와 카리브해를 항해했다고 한다. 이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취직해 항해사로 근무했다. 그 무렵 그는 노르웨이 출신 러시아 해군 함장의 주선으로 러시아 발트함대 소속 해군이 되었다. 23세이던 1704년의 일이다. 베링은 러시아 해군에 복무하면서 이름도 이반 이바노비치 베링(Ivan Ivanovich Bering)이라고 바꿨다.
베링은 러시아 해군에서 출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겐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군인으로 승진하려면 전쟁터에 나가 승리를 해야 하는데 그에게 전투의 기회가 오지 않았다. 당시 러시아는 발트해에 부동항을 얻기 위해 스웨덴과 오랜 전쟁(1700~1721)을 벌이고 있었다. 그는 빛이 나지 않는 보조역할만 맡게 되었다. 그가 한 일은 흑해에서 발트해로 배를 이동시키는 일, 전쟁물자를 수송하고 전함의 물자를 하적하는 일이 고작이었다. 그는 승진에서 밀렸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처가에 러시아 해군에 복무한 사람이 있었는데, 나이어린 사람이 자신보다 빨리 승진했다. 1724년 나이 43세의 베링은 해군복무에 대한 의욕을 잃고 두달치 봉급만 받은채 해군을 그만두었다. 그는 실직자가 되었다. 예비역 군인에게 실업은 고통스러웠다. 그는 다섯달만에 다시 해군에 들어갔다. 1724년 10월 그는 레스노에(Lesnoe)라는 함정의 함장 지위가 맡겨졌다.
해군에 복귀한지 얼마되지 않은 1924년 12월 29일, 베링은 차르로부터 북방항로 개척의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표트르 대제가 자신의 염원을 베링에게 맡긴 것은 미스터리다. 영웅이 영웅을 알아본 것이다.
베링은 외국 태생이지만 러시아인 동료들에게도 평이 좋았고, 무엇보다 해군에 입대하기 전에 겁 없이 세계각지를 돌아다닌 모험정신이 차르의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러시아 지리학자들에게 아메리카대륙 연결고리를 찾아보라 했더니 답을 얻지 못한 것도 이유였을 것이다. 외국인이 대장인들 어떠한가. 그 결과는 모두 차르의 몫이다.
표트르는 베링에게 지시를 내렸다. 캄차카로 가서 함대를 준비하라. 그 배로 북부 영토를 탐험하고, 아메리카 대륙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라. 아메리카 대륙과 연결지점에 유럽 다른국가의 영토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 지역의 지리를 파악하고 지도를 그려오라.
차르의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었다. 베링은 서둘렀다. 급하게 지리학자, 측량가, 항해사, 군인들을 모집했다. 표트르 대제는 칙령을 내린지 한달 후인 1725년 2월에 5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업은 후임자들에 의해 집행되었다.
<참고자료>
Wikipedia, Peter the Great
Wikipedia, Great Northern Expedition
Wikipedia, First Kamchatka expedition
Wikipedia, Vitus Be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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