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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는 해달이나 바다사자가 서식하기 좋은 기후환경을 제공했지만, 사람이 살기엔 부적합한 곳이었다. 1900년대초에 러시아인들이 북아메리카에 정작한 이후 가장 큰 어려움은 식량난이었다. 툰드라지대에 순록이 살고 강물엔 연어가 올라오지만 곡물을 재배할수 없었다. 유럽에서 식량을 운반해 올수도 없었다. 신대륙에 온 러시아인들은 영양을 골고루 취할수 없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1804년 틀링깃족을 제압한 이후 러시아 아메리카 회사(RAC)는 본거지를 코디액 섬에서 노보 아르한겔스크(싯카)로 옮겼다. 원주민의 공격에서 벗어나니 곧바로 식량위기에 봉착했다. 1806년 노보 아르헨겔스크엔 괴혈병과 기아로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이 때 러시아 귀족출신 니콜라이 레자노프(Nikolai Rezanov)가 노보 아르한겔스크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RAC 탄생의 주역이었고, 그 전신인 셸리호프 회사의 창업자 사위였다. 레자노프는 이 기근을 극복하기 위해 아메리카 대륙에서 식량을 찾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태평양 연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스페인령 캘리포니아에 농경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당시 RAC는 캘리포니아에서 어업을 하던 미국인과 거래를 트고 있었다.
1806년 2월 레자노프는 미국인 소유의 주노(Juno)호를 매입해 캘리포니아로 떠났다. 당시 캘리포니아는 지금이 미국 캘리포니아인 알타캘리포니아(Alta California)와 멕시코 땅인 바자캘리포니아(Baja California)로 나눠져 있었다. 레자노프는 3월 27일 샌프란시스코만에 도착했다. 그곳의 스페인 사령관은 호세 다리오 아르겔로(José Darío Argüello)였다.
스페인은 식민지에서 외부와 교역을 금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레자노프는 특유의 화술과 외교력으로 식량을 구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앞서 1804년 일본 나가사키를 방문해 차르의 전권특명대사로서 토쿠가와 쇼군에게 통상개방을 요구하다 실패한 적이 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차르가 부여한 전권대사의 위임장을 들이밀고 곡물거래를 성사시켰다. 러시아인들은 북부 아메리카에서 생산한 모피등을 팔고 밀, 보리, 복숭아, 콩, 밀가루, 소금 등을 사서 5월 10일 샌프란시스코를 떠났다. 이 짧은 6주 사이에 레자노프는 스페인 사령관의 딸과 사랑에 빠져 국경과 종교를 넘나드는 연애담을 남기기도 했다.
레자노프가 구해온 식량으로 러시아 식민지인들은 곡물위기를 극복했으며, 이후 농경지가 있는 캘리포니아에 눈독을 들이게 된다. 레자노프는 차르 알렉산드르 1세와 RAC의 사장 바라노프에게 캘리포니아에 정착촌을 만들 것을 건의했다.
러시아 아메리카 회사는 레자노프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1808년 바라노프는 상업자문관 이반 쿠스코프(Ivan Kuskov)에게 배 2척을 주어 캘리포니아에 유럽인들이 손을 대지 않은 땅이 있는지를 살펴보라고 지시했다. 쿠스코프 탐사대는 샌프란시스코 북쪽 보데가만(Bodega Bay)에 무주공산의 땅이 있음을 발견하고 몰래 땅을 파고 명판을 묻어버렸다. 나중에 스페인이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할 경우 반박할 근거로 내세울 속셈이었다.
바라노프는 쿠스코프에게 캘리포니아 정착촌 건설을 지시했다. 1812년 쿠스코프는 이미 보아둔 보데가만의 땅으로 가서 정착촌을 세웠다. 그런데 그 해변엔 이미 미국인들이 해달을 남획해 씨를 말리고 없었다. 러시아인들은 그곳보다 24km 북쪽에 더 훌륭한 입지를 발견하고 그곳에 요새를 지었다. 그 요새가 포트로스(Fort Ross)다. 로스(Ross)는 미국인들이 러시아를 줄여 표현한 단어다. 지금의 캘리포니아주 소노마 카운티다.
포트로스 설립의 주목적은 식량 생산이었고, 부수적으로 모피 시장의 역할을 했다. 러시아인들은 포트로스에서 풍차를 세워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고, 조선소도 설립했다. 러시아 과학자들운 이곳에서 캘리포니아의 자연과 주변 인디언들의 생활상을 연구했다.
미국은 1803년 프랑스에게서 루이지애나를 매입, 로키산맥까지 영토를 확장했지만 아직 태평양 연안에 영향력이 미치지 못했다. 캘리포니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스페인은 러시아의 정착촌 건설을 막지 못했다. 대신에 스페인 정착촌을 확대하고 카톨릭 사제들을 파견해 러시아 정교의 보급을 저지하는 소극적 대응에 그쳤다.
포트로스의 농업생산은 그리 쉽지 않았다. 초기 10년간은 투입된 자본보다 생산실적이 따라가지 못했다. 모피사업도 해달이 고갈되면서 위축되었다.
1818년 포트로스의 인구는 128명이었다. 러시아인 26명, 인디언 102명이 살고 있었다. 이후 이 정착지엔 세계각지의 인종들이 모여들었다.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폴란드, 벨라루스, 핀랜드, 발트 독일인, 에스토니아, 리투니아, 라트비아, 그루지아, 코카서스, 타타르인이 거주지에 등록했고, 원주민도 알래스카의 알류트족, 북미 인디언, 스페인 혼혈 크레올로가 일자리를 찾아와 포트로스는 다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여러 인종이 모여 살면서 전염병에 수시로 노출되었다. 천연두가 수차례 유행하면서 캘리포니아의 러시아촌은 생기를 잃어갔다.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에서 독립하면서 캘리포니아의 영유권을 이어받았다. 멕시코는 스페인 지배시절보다 포트로스에 적극적으로 나왔다. 멕시코는 수차례 조사원을 소노마로 보내 러시아 정착촌의 실태를 조사했다. 러시아가 포트로스 주변에 대형 농장 3개나 운영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알타캘리포니아의 주지사 호세 피게로아(José Figueroa)는 포트로스의 팽창을 저지해야겠다고 판단했다.
피게로아 주지사는 포트로스에 가까운 곳에 멕시코군 주둔지를 건설했다. 그리고 러시아 정착촌 주변의 땅을 멕시코 대지주에게 분양했다.
러시아는 캘리포니아 식민지를 영토로 생각하지 않았다. 1824년 미국과 체결한 조약(Russo-American Treaty)에서 북위 54.4° 이북에 대해 알랙스카의 독점권을 인정한다고 약속했고, 다음해에 영국과도 동일한 조약(Treaty of Saint Petersburg)을 체결했다. 따라서 러시아가 캘리포니아를 영토라고 주장하면 멕시코는 물론 영국과 미국과 마찰을 빚는 문제가 있었다.
식량공급지로서 포트로스는 그 효력을 상실해 갔다. 멕시코인들이 주변을 포위하고 필요한 물품을 팔지 않아 주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졌다. 이럴 때에 영국인이 운영하는 허드슨베이 회사(Hudson's Bay Company)가 러시아령 아메리카에 식량을 공급하는 조건의 조약을 체결해 포트로스의 존재이유가 사라졌다.
캘리포니아는 상트페테르스부르크에서 너무 멀었다. 수도의 귀족들은 먼 곳에서 분쟁이 일어나는 것이 꺼려했다. 그들은 가까운 크림반도와 발트해에서 영향력을 넓히는데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스위스 출신 멕시코인 조한 수터(Johann Sutter)가 캘리포니아에서 토지를 넓혀 가고 있었다. 1841년 러시아 아메리카 회사는 포트로스를 매물로 내놓았고, 수터가 최종 낙찰을 받았다. 가격은 3만 달러. 일부 러시아인들은 수터가 그 대금을 갚지 않았기 때문에 포트로스의 토지매각은 무효이고, 그 땅은 아직도 러시아 땅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수터는 토지대금으로 2만 달러를 지급했다고 하는 주장이 있어 사실 여부가 불투명하다.
이런 논쟁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1848년 미국은 멕시코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캘리포니아를 먹어버렸다. 러시아가 그때까지 포트로스를 운영했더라면 그냥 미국에 빼앗겨 버렸을 것이다.
<참고자료>
Wikipedia, Nikolai Rezanov
Wikipedia, Fort Ross, California
Wikipedia, Russian colonization of North A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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