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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출판, 스타인벡의 소설…사회주의적 문제의식과 해법 제시
‘분노의 포도’는 불온 서적인가
2022. 08. 21 by 박차영 기자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의 장편소설 분노의 포도는 대공황의 터널에 끝이 보이지 않던 1930년대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농장의 숫자가 적어졌다. 소규모 농부들은 도시로 이주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돈을 빌려 쓸 곳도, 그들을 도와줄 친구나 친지도 더 이상 구할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 역시 고속도로로 나섰다. 도로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살인이라도 저지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기업들, 은행들도 스스로 파멸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몰랐다. 농사는 잘되었지만 굶주린 사람들은 도로로 나섰다. 곡식 창고는 가득 차 있어도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구루병에 걸렸고, 펠리그라병 때문에 옆구리에서는 종기가 솟아 올랐다.” (민음사, 2110~111p)

 

1939년 초판 /위키피디아
1939년 초판 /위키피디아

 

존 스타인벡의 관점은 19세기 미국 경제학자 헨리 조지(Henry George)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헨리 조지는 기계 사용에 의해 토지 이익이 독점화되고 토지소유자는 소수화되어 간다고 주장했다. 그의 논리를 조지주의(Georgism)라고 하는데, 영국 사회주의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조지주의에 바탕을 둔 스타인벡의 인식은 현실과 괴리가 있다. 대공황시절 농민 붕괴는 과잉생산에서 파생한 것이지, 토지집적에서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은 1차 대전(1914~1918)을 거치면서 세계 최대의 농업국이 되어 있었다. 교전국들이 경쟁적으로 미국에서 식량을 사갔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후 유럽 각국에서 농업을 재개하면서 미국의 곡물 수출이 줄고 세계곡물시장의 가격이 급락했기 때문에 1920년대부터 미국 농업은 만성적인 불황에 시달렸다.

농업 불황은 대공황의 쓰나미가 닥치자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 토지 소유자들은 은행들의 담보처분으로 고향을 떠나 도시로 유입되었다. 도시에서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날품팔이 생활을 하며 방랑하게 되었다.

 

스타인벡은 분노의 포도에서 해결책을 조합주의에서 찾았다. 노동조합을 조직해 집단을 형성해 자본에 대항하고, 궁극적으로 빈곤을 해결한다는 것이다. 해결자로 내세운 사람이 전직 목사 짐 케이시와 톰 조드다.

짐 케이시(Jim Casy)는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와 이니셜(JC)이 같다는 점에서 스타인벡은 기독교의 메시아 해법을 찾으려 했다는 느낌을 준다. 캐이시는 토지에서 유리된 농민들을 조직, 운동을 벌이다가 대토지소유자들과 권력집단의 폭력에 사망하게 된다. 주인공 톰 조드가 케이시를 추종하게 된다.

 

존 스타인벡 /위키피디아
존 스타인벡 /위키피디아

 

어머니가 질문을 했다. ”, 너 뭘 할 생각이야?”

케이시가 하던 일이요.” “놈들이 케이시를 죽였잖아

어머니, 그동안 생각을 아주 많이 했어요. 우리 같은사람들이 돼지처럼 사는 것, 좋은 땅이 그냥 놀고 있는 거, 어떤 사람들은 100만 에이커나 되는 땅을 갖고 있는데, 수십만 명이나 되는 훌륭한 농부들은 굶주리고 있잖아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전부 힘을 합쳐서 소리를 지른다면, 그때 사람들이 소리쳤던 것처럼 한다면. 후퍼 농장에서는 그런 사람이 몇 명밖에 안됐지만.” (2371p)

 

아들 톰 조드가 어머니에게 대답한다.

케이시가 말한 것처럼 사람은 자기만의 영혼을 갖고 있지 않고, 다만 크나큰 영혼의 한 조각을 갖고 있을 뿐인지도 몰라요. …… 저는 어둠 속에서 어디나 있는 존재가 되니까, 저는 사방에 있을 거예요. 어머니가 어디를 보시든, 배고픈 사람들이 먹을 걸 달라고 싸움을 벌이는 곳마다 제가 잇을 거얘요. 경찰이 사람을 때리는 곳마다 제가 있을 거예요. 케이시의 말이 옳다면, 사람들이 화가 나서 고함을 질러댈 때도 제가 있을 테고, 배고픈 아이들이 저녁 식사를 앞에 두고 웃음을 터트릴 때도 제가 있을 거예요.” (2372p)

 

스타인벡은 주인공 조드를 사회운동가로 만듦으로써 카타르시스를 찾았다. 톰 조드가 실현하려는 방법은 노동조합을 통한 저항이었다.

스타인벡은 대공황시절에 좌파 작가, 언론인, 노동조합 인사들과 교류를 가졌다. 그는 분노의 포도를 출간하기 직전인 1935년에 공산주의 계열의 문학가 조직인 미국작가동맹(League of American Writers)에 가입했다. 미국작가동맹은 미국공산당(Communist Party USA)이 소설가, 작가, 시인, 언론인, 비평가 등으로 조직한 외곽단체였다.

스타인벡은 당시 급진적 작가인 링컨 스테펜스(Lincoln Steffens)와 그의 부인 엘라 윈터(Ella Winter)의 지도를 받았다. 스타인벡은 공산당원 프랜시스 휘테이커(Francis Whitaker)를 통해 농민조합 조직원들과 접촉하기도 했다. 그는 1939년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했을 때 핀란드 공산정부를 지지하는 운동에 서명하기도 했다.

 

대공황은 미국 자본주의 체제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1917년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해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가 형성되었고, 그 영향으로 19198 미국에 공산당이 조직되었다.

대공황기에 농민들도 대중투쟁에 나섰다. 전미농민연맹(NFU: National Farmers Union)1932년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집회를 열어 농민 파업을 결의했다. NFU의 밀로 레노(Milo Reno) 회장은 농산물 가격이 내려가는 것을 막고 보상받기 위해 농민들이 생산한 가축과 농산물, 특히 우류를 시장에 내놓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민단체는 은행에 담보로 잡힌 토지의 유질처분을 저지하는 운동도 벌였다. 은행들은 농민들에 대출하고 저당 잡은 농지를 매각했고, 농민들은 토지에서 떠나가야 했다. 농민단체의 이 운동으로 일부의 유질처분이 유예되기도 했다. 곧이어 1933년에 아이와와주에서 유질처분유예법이 통과되고, 미네소타 등지로 확산되었다.

 

미국 서부지방에 닥친 모래바람(1936년 사우스 다코타) /위키피디아
미국 서부지방에 닥친 모래바람(1936년 사우스 다코타) /위키피디아

 

분노의 포도는 대공황기 토지를 박탈당한 농민의 실태를 정확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평원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dust bowl) 때문에 농사를 망친 소작인 조드 일가는 은행과 지주에게 땅을 빼앗기고 고향 오클라호마를 떠난다. 한 장의 구인광고에 모든 희망을 걸고 조드 일가는 구약성서 출애굽기처럼 66번 국도를 따라 '축복받은 땅' 캘리포니아에 들어선다.

캘리포니아는 젖과 꿀이 넘쳐흐르는 곳이 아니었다. 기대와 달리 일거리도 적고 지주의 착취가 극심해 조드 일가는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아들 톰 조드는 사회 의식에 눈을 뜨고 사회운동에 나서게 된다. 조드 일가의 어머니는 정신적 지주로서 사회 구조의 모순 속에서 굴하지 않는 생명의 몸부림으로 그려진다.

 

이 책은 1939년 출간과 동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첫해애 43만부나 팔렸고. 스타인벡은 이 작품으로 퓰리처상, 노벨 문학상(1962)을 받게 되었다.

이 소설은 상도 많이 받았지만, 동시에 엄청난 반발도 수반했다. 주인공들의 출산인 오클라호마주에선 오클라호마 출신을 오키라고 비난했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도서관에서 금서로 지정되었다. 이 책의 또다른 배경인 캘리포니아에서도 현지의 실정이 왜곡되었다는 비난이 제기되었다. 출판과 동시에 캔자스주, 미주리, 캘리포니아에서는 판매가 금지되었다. 일리노이주에선 이 책이 불태워졌고,뉴욕주 버팔로 공공도서관에서는 반입이 금지되었다.

1953년 아일랜드가 이 책의 판매를 금지했고, 1973년 터키에서도 판매김지를 당했다. 자국을 모독했다는 이유였다. 1980년대, 1990년대에도 미국의 일부 보수적인 학교, 교회 등에서 이 책을 금지도서로 지정했다.

 

아이는 아프고, 차는 고장났고…1937년 트럭으로 미주리를 떠나는 이주민들 /위키피디아
아이는 아프고, 차는 고장났고…1937년 트럭으로 미주리를 떠나는 이주민들 /위키피디아

 

책의 제목은 스타인벡의 부인 캐롤이 제안했다고 한다.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라는 구절은 25장에 숨어 있다.

사람들이 강에 버려진 감자를 건지려고 그믈을 가지고 오면 경비들이 그들을 막는다. 사람들이 버려진 오렌지를 주우려고 덜컹거리는 자동차를 몰고 오지만, 오렌지에는 이미 등유가 뿌려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만히 서서 물에 떠내려 가는 감자를 바라본다. 도랑 속에서 죽임을 당해 생선회에 가려지는 돼지들의 비명에 귀를 기울인다. 산처럼 쌓인 오렌지가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지켜본다. 사람들의 눈 속에 패배감이 있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져 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간다. 수확기를 향해 점점 익어간다.” (2, 2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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