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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망의 위기에서 소니를 건져낸 히라이 가즈오, 뼈를 깍는 구조조정 회고하다
소니 회생의 비결…“과거의 영광을 잊어라”
2022. 09. 30 by 박차영 기자

 

1990년대에 소니 임원회의에 삼성전자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고 한다. 누군가가 삼성전자를 입에 올리면 어디 감히 소니 회의에 그런 회사 얘기가 나오느냐는 식의 핀잔이 돌아오고, 싸늘한 분위기에 휩싸였다고 한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1970년대에 소니의 간부가 우리나라를 찾아오면 우리 기업인들은 거의 90도로 허리를 굽히고 깎듯하게 모셨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남아 있다.

소니는 패전후인 1946년에 창업, 일본 재건의 상징인 기업이었다. 소니의 워크맨이 없었더라면 미국의 팝송이 전세계로 파급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도도하고 잘 나가던 소니가 20세기 끝무렵인 1997년을 정점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21세기 들어서는 와해 직전으로 흔들렸다.

이런 소니를 부활시킨 경영자가 히라이 가즈오(平井一夫). 그는 2012년에 사장에 올라 2018년까지 6년간 소니의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다. 그의 구조조정은 성공했다. 마침내 소니가 부활했다. 그는 20184월 회장이 되면서 CEO에서 물러났고, 이듬해엔 회장 자리도 내놓았다. 그는 20217월 일본에서 자신이 단행한 구조조정 과정을 정리해 회고록을 냈다. 국내에서는 20226월에 소니 턴어라운드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부제로 기업 존망 위기에서 창사 이후 최대 실적으로가 달려 있다.

책 표지 /출판사
책 표지 /출판사

 

히라이는 1960년 도쿄에서 태어나 대학졸업후 198424세의 나이에 음악엔터테인먼트 회사인 CBS소니에 입사한 이후 2019년 회장직을 마지막으로 물러나기까지 35년간 소니에서만 일한 소니맨이다.

그는 회고록에서 세 번 구조조정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첫 번째가 35살이던 1995년에 캘리포니아 게임기 회사인 SCEA(Sony Computer Entertainment America)의 사장대리를 맡아 경영진을 개편한 일이다. 이 회사는 도쿄에 본사를 둔 SCE의 미국 현지법인이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이때 히라이가 한 일은 경영손실을 메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도쿄 본사와 미국본사의 경영진 대립에서 도쿄본사의 대리인으로 미국인 경영진을 쫓아내는 일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구조조정이라기보다 경영권 분쟁에 참여한 것이다.

 

두 번째 구조조정은 2006년 소니의 비디오게임 계열사인 SCE(Sony Computer Entertainment)의 본사 사장이 되어 손실을 내는 게임기 제품 플레이스테이션3(PlayStation 3)의 원가를 줄인 일이다. 플레이스테이션3의 문제는 SCE의 사장이자 엔지니어인 구타라기 켄의 과욕이었다. 플레이스테이션 12는 날개 돋친 듯 팔려 비디오게임기가 소니그룹의 주종목으로 성장하는데 기여했다. 구타라기 사장은 욕심을 부려 시리즈3을 게임기의 차원을 넘어 가정용 슈퍼컴으로 만들고자 했다.

게임도 하고 컴퓨터도 하는 개념의 기기는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 플레이스테이션3에는 IBM·도시바·소니가 공동개발한 Cell 칩이 탑재되고 당시로는 최첨단인 블루레이도 장착되었다. 최첨단, 최신을 추구하다보니 플레이스테이션3의 가격은 대당 62,790엔에 이르렀는데 당시 경쟁사의 게임기 가격은 25,000엔이었다. 200611월 발매되기도 전에 SCE측은 플레이스테이션 가격을 49,000 엔대로 떨어뜨렸다. 그래도 다른 제품보다 2만엔이상 비쌌다.

소니의 주력으로 성장하던 게임회사는 플레이스테이션3의 출시 직후에 사장을 교체했다. 구타라기가 회장으로 물러나고 히라이가 사장이 되었다. 플레이스테이션2는 팔면팔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였고, 히라이는 전임사장이 저질러 놓은 고가제품의 단가를 낮추는데 주력했다. 그는 플레이스테이션3의 모든 부문에서 단가인하에 들어가 2010년에 마침내 대당 가격을 29,980엔으로 낮추었다. 가격을 40% 떨어뜨렸고, 기기의 무게도 1.8kg 줄여 3.2kg로 제품을 내놓은 것이다. 이때에야 겨우 역마진을 해소했다고 털어 놓았다.

 

앞서 두 번의 구조조정에 성공함으로써 히라이는 소니그룹 내에서 인정을 받았고, 2009년엔 소니그룹을 총괄하는 4명의 책임부사장(EVP, Executive Vice President) 가운데 한사람이 되었다. 그가 소니 본사의 경영을 맡게 된 것은 20124월이다.

우리나라에선 소니의 경영위기를 삼성과 LG의 도약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기업의 약진이 소니 몰락의 하나의 요인이긴 해도 근본적 원인은 아니다. 소니 위기의 본질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히라이는 이렇게 설명했다.

소니를 뿌리째 흔드는 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불어 닥쳤다. 애플이 2001년 출시한 음악플레이어 아이팟’(iPot)이다. 애플은 콘텐츠를 전달하는 플랫폼으로 변신한 후 2007년에 아이폰을 발매하면서 지금의 형태로 진화해 왔다. …… 소니는 왜 아이팟을 만들어 내지 못하느냐는 취지의 비판을 자주 받았다. 당시 소니 CEO였던 이데이 노부유키씨가 일찍부터 인터넷은 비즈니스계에 떨어진 운석이라며 디지털 시대의 도래를 반복해 주창하던 것을 기억한다. …… 이데이씨는 새로운 이노베이션의 도래를 예경해고 있었지만, 애플의 대두를 방치한 것에 분하기 그지 없는 일이라고 해상했다. 하드와 소프트 양쪽 모두에서 일거에 혁신적인 서비스를 내놓은 잡스씨가 대단한 거였다.“ (p112~113)

 

히라이 가즈오 /위키피디아
히라이 가즈오 /위키피디아

 

그는 2012년 소니의 경영을 맡았을 때 162,700명의 사원들에게 자신감을 잃은 듯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연결최종손손익은 4년 연속 적자였다. 적자액은 조금씩 부풀어 2011년엔 4,550억엔을 기록했고, 전자 부분의 부진이 최대의 원인이었다. 그때까지 텔레비전 사업은 8년 적자였다.

그는 자신이 소니본사의 사장겸 CEO가 된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전자부문이 아니라 음악과 비디오게임 등 곁가지 계열사에서 일해온 소니의 비주류였다. 그는 히라이는 전자를 알지 못하는 에서 온 인간이기 때문에 냉정한 판단을 내릴수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고 토로했다.(p218) 전자 출신이 구조조정을 맡으면 이리저리 생각할 게 많아 과감한 개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201241일 사장 겸 CEO에 오르자마자 그는 1만명의 인원삭감을 공포했다. 평생직장을 보장하던 일본기업에서 16만명 가운데 1만명을 잘라내는 것은 가히 혁명이라 할만한 일이다.

그는 우선 가장 알짜라고 생각되는 자산을 매각했다. 그는 소니의 상징이라고 할만한 뉴욕 맨해튼 매디슨 애비뉴 550번지에 있던 소니아메리카 본사 빌딩을 팔았다. 소니를 미국기업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던 이 건물의 매각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는 고집스럽게 매각을 주장, 11억 달러에 팔았다.

한국의 삼성전자와 LG전자, 중국기업에 밀리던 TV부문에서는 판매목표를 포기하고 질적으로 전환했다. 그가 취임하던 때 전임자가 세운 연간 4,000만대 판매목표를 2,000만대로 낮추고 대신에 질적으로 우수한 TV 생산으로 방향으로 전환했다.

그는 장래성이 없는 PC사업은 매각했다. 비디오와 오디오를 겸한 VAIO(Video Audio Integrated Operation)은 소니의 상징이자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PC 시장의 성장세는 둔화되었고 주요 부품인 OS와 반도체를 외부에서 조달했기 때문에 TV와 마찬가지로 더 이상 차별화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PC사업 매각과 TV사업 축소로 5,000명의 인원을 추가로 감축했다.

 

뉴욕 맨해튼 매디슨가에 있던 옛 소니아메리카 빌딩 /위키피디아
뉴욕 맨해튼 매디슨가에 있던 옛 소니아메리카 빌딩 /위키피디아

 

그는 VAIO를 매각한 후 소니 오비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VAIO는 선배들의 노력의 결정체나 다름 없었고, 그 사업은 다른 회사에 넘어가서도 잘 나갔다. 그는 전자를 모르는 사람이 와서 전자를 망친다는 비난을 한몸에 받았다. 일부 오비는 그의 면전에 사장 실격이란 낙인까지 찍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이제 소니는 과거의 노스탤지아와 결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을 만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거절했다고 소개했다. ”옛날이 좋았다라든지 전자를 경시하는 경영은 괘씸하다는 비난 섞인 충고는 무시했다.

 

그는 사장을 연임하면서 6년째가 되던 해에 그만둘 것을 결심했다. 그땐 추락하던 소니가 턴어라운드했기 때문이다. 2017년 결산에서 소니는 7,348억엔의 영업이익을 냈다. 1997년 소니가 꺾어지기 시작한 이후 20년만이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사장 자리를 내려 놓았다.

 

일본판 제목은 소니 재생 - 변혁을 성공시킨 이단의 리더십‘(ソニー再生 変革げた 異端のリーダーシップ)이다. 그는 소니 턴어라운드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자신감을 잃은 사원들의 가슴 깊은 곳에 숨겨진 열정의 마그마를 터뜨리고, 팀으로서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일본인 다운 해석이다. 물질보다 정신을 강조하는 일본적 사고의 파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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