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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송악산 해안엔 일제의 동굴진지
제주 탐사④…370년전 하멜이 도착한 곳
2022. 10. 16 by 이효웅 해양전문가

 

산방산 송악산 주변 /네이버 지도
산방산 송악산 주변 /네이버 지도

 

16538월 중순, 대만을 떠나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무역선 스페르베르(Sperwer)호가 태풍을 만나 표류했다. 한 선원이 육지가 보인다고 외쳤는데, 그곳은 제주도 산방산 아래 용머리 해안이었다. 816일 헨드릭 하멜(Hendrik Hamel)을 포함해 36명의 선원이 대정현 차귀진 아래 대야수 해안에 표착했다. 승무원 64명중 28명은 표류 중에 익사했다.

이때부터 네덜란드인들의 길고긴 조선 생활이 시작된다. 하멜 일행은 한양으로 호송되어 효종 임금을 알현한 후에 2년간 왕실 친위대를 근무했으며, 그보다 앞서 표착한 네덜란드인 벨테브레이(Weltevree, 朴燕)를 만나기도 했다. 그들은 다시 전라도로 이송되었고, 166694일 하멜 등 8명이 야음을 틈타 탈출에 성공했다.

하멜은 나가사키에서 귀국선을 기다리던 중에 13년간의 표류기를 썼는데, 그 책이 유명한 하멜표류기. 하멜표류기는 유럽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렸고, 코레아라는 나라에 대한 서양인들의 관심을 촉발시켰다.

제주도는 하멜 표류 350주년을 맞아 2003816일 서귀포시 안덕면에 하멜상선전시관을 준공했다. 제주 바닷가에서 부서진 스페르베르호를 재현했는데, 전장 36.6m, 7.8m, 갑판높이 11m, 돛대높이 32m 크기이며, 3층 갑판의 범선이다.

 

하멜상선전시관 /촬영=이효웅
하멜상선전시관 /촬영=이효웅

 

하멜 일행이 표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용머리해안은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바닷가에 있다. 용이 바다로 들어가는 형상을 하고 있는데, 산방산과 어울려 멋진 풍경을 형성하고 있다. 옛날에 중국 진시황제가 이곳에서 황제가 날 것이란 이야기를 듣고는 사람을 보내서 칼로 곳곳을 갈라놓았고 그때 칼 맞은 바위에서 피가 흘렀고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용머리 해변 /촬영=이효웅
용머리 해변 /촬영=이효웅
용머리 해변 /촬영=이효웅
용머리 해변 /촬영=이효웅

 

용머리해안에서 쳐다보면 산방산(山房山)이 우뚝 솟아 있다. 종처럼 생긴 화산(鐘狀火山)이며, 해발고도는 395m. 남서쪽 기슭, 해발고도 200m 지점에 산방굴(山房窟)이라는 자연 석굴이 있다. 그 안에 불상을 안치했기 때문에 이 굴을 산방굴사(山房窟寺)라고도 한다. 굴 내부 천장 암벽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산방산의 암벽을 지키는 여신 산방덕(山房德)’이 흘리는 사랑의 눈물이라는 전설이 있다.

산의 남쪽 해안에는 성산포층(城山浦層)이 노출되어 있고 심한 해식(海蝕)으로 단애(斷崖)가 형성된 암석해안을 이룬다. 한라산, 성산일출봉과 함께 제주의 3대 산으로 불린다.

구름이 주위를 감싸 안으면 비가 내린다는 신비스런 분위기의 영산으로 옥황상제가 한라산의 봉우리를 뽑아 던져 만들었다는 전설 등이 전해진다. 경치가 좋다고 하여 2011년 문화재청이 명승으로 지정했다.

 

산방산 /촬영=이효웅
산방산 /촬영=이효웅

 

형제섬은 산방산 바로 앞에서 내려다보이는 무인도로, 사계리 포구에서 남쪽으로 1,5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크고 작은 섬이 마치 형제처럼 마주하며 떠 있다. 길고 큰 섬을 본섬, 작은 섬은 옷섬이라 부른다. ​​본섬에는 작은 모래사장이 있으며 옷섬에 있는 주상절리층은 일품이다. 바다에 잠겨있다가 썰물 때면 모습을 드러내는 새끼섬과 암초들이 있어서 보는 방향에 따라 섬의 갯수가 3~8개로 보이고, 그 모양도 수시로 변한다.

 

형제섬 /촬영=이효웅
형제섬 /촬영=이효웅

 

송악산(松岳山)은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위치한 오름이다. 산방산과 이웃해 있으며 이중 분화구로 이루어져 있다. 꼭대기에 2중 분화구가 있는데, 1분화구는 지름 약 500m, 둘레 약 1,7km이고 제2분화구는 제1분화구 안에 있는 화구로서 둘레 약 400m, 깊이 69m로 거의 수직으로 경사져 있다. 정상에서는 가파도와 마라도, 형제섬의 경치를 조망할 수 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이 중국 침략의 발판으로 삼았던 곳이어서 당시 건설한 비행장, 고사포대와 포진지, 비행기 격납고 잔해 등이 흩어져 있고 해안가의 절벽 아래에는 해안참호 등이 남아 있다. 동굴과 출입구는 지네의 몸통 및 발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으며 폭은 1~2m 정도로 협소하고 확인된 입구는 22개다.

태평양전쟁 말기, 수세에 몰린 일본이 제주도를 저항기지로 삼아 구축한 일본군의 비행장 경비체계와 미군의 상륙전에 대비한 구체적 방어준비 현장을 살펴볼 수 있는 역사적 장소다.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송악산 해변의 일제 동굴진지 /촬영=이효웅
송악산 해변의 일제 동굴진지 /촬영=이효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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