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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포진은 강원도의 右營, 울릉도 수토의 중심지…울릉항로의 기초
울릉도 수토사의 뱃길①…동해의 파수꾼
2022. 10. 29 by 이효웅 해양전문가

 

이 글은 1027일 강원대 삼척캠퍼스 열린 삼척동해왕 이사부 독도축제 2022 학술대회에서 이효웅 해양탐험가(주1)가 발표한 내용입니다. 이효웅씨는 울릉도 수토사의 뱃길, 해류병을 활용한 울릉 항로 탐색이라는 주제로 발표했습니다. 그의 글을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국문초록]

조선시대 삼척포진은 강원도와 울릉도·독도 바다를 지키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1694년 삼척 영장 장한상은 울릉도 수토와 정세를 살피기 위하여 삼척에서 울릉도를 항해하였다. 장한상과 군관 최세철의 항해 중 삼척 항로 두 곳에서 수종(水宗)과 서풍 등의 문제점이 나타났다. 이후 수토사(주2)들은 점점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항해하다가 어느 시기가 되어 월성 항로가 정식 항로로 되었다. 연구자는 1) 조선시대 울릉도 수토사와 어민들의 울릉도·독도 항해기록을 조사·검토하여 삼척 항로와 월송 항로의 문제점을 알아보고, 2) 수종의 원인이 무엇인지 해류병 실험을 통하여 알아보고자 울릉도 수토사의 뱃길을 직접 항해하여 보았고, 3) 아울러 해류병 실험을 통해 울릉도 수토사의 삼척 항로와 월송 항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삼척 항로는 서풍과 수종지역 두 곳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둘째, 삼척-울릉 항로 80100km 지역 두 곳에서 해류가 역류되는 곳을 해류병 실험으로 확인하였다.

셋째, 항해와 실험을 통해 확인한 결과, 수종은 김인우해산 등에서 소용돌이 해류 에서 발생하였다.

넷째, 초여름의 동한난류는 삼척 장호의 해저 만곡지형부터 북한한류를 만나 안개를 만들고 외양으로 이동한다.

다섯째, 월송 항로는 남서풍과 동한난류를 이용한 순풍 항해를 하였다. 그러나 귀항할 때 는 울릉도에서 동풍을 받아 육지에 모여 남하하였기 때문에 귀항이 더 힘들었다.

여섯째, 수토 말기에는 나침반 항해를 하면서 더 빠르고 안전한 항해를 하였다.

일곱째, 조선시대 울릉도 수토 62회 일람표월송 만호 121명 일람표를 만들 어 울릉도 수토를 체계적으로 알 수 있게 하였다.

여덟째, 조선 어민들이 다녀온 요도·삼봉도·우청도는 독도라고 추정된다.

본 연구를 통해 확인된 울릉 항로에서 나타나는 수종의 정확한 원인과, 장호 해저의 만곡지형에 따른 해류의 변화를 계절별로 면밀히 조사할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독도 표류 항로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

키워드; 울릉도 수토, 장한상, 월성 만호, 삼봉도, 요도, 우청도, 독도, 해류병, 수종

 

10월 27일 강원대 삼척캠퍼스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이효웅 해양탐험가(왼쪽에서 두 번째)가 발표하고 있다. /이효웅 제공
10월 27일 강원대 삼척캠퍼스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이효웅 해양탐험가(왼쪽에서 두 번째)가 발표하고 있다. /이효웅 제공

 

. 머리말

 

삼척포진(주3)은 강원도 우영(右營)이 있었던 곳으로 울릉도 수토(주4)의 중심지였다. 울릉도를 수토하는 뱃길의 역사는 울릉 항로의 기초가 된다. 조선시대의 울릉 항로는 함경도 어민들의 항로와 강원도 수토사들의 항로 그리고 경상도 어민들의 항로로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강원도 수토사들의 항로는 삼척 항로와 월송 항로로 나눌 수 있다.

고려 말부터 연안의 어민들은 세금과 군역 등을 피해 울릉도로 숨어들었다. 조선 태종 때부터 안무사 김인우(金麟雨)(주5)는 울릉도에 여러 차례 가서 주민들을 쇄출(刷出)(주6)하였다. 특히 세종(13971450) 때는 함경도 어민들도 울릉도에 다니면서 삼봉도(三峰島)와 요도(蓼島)의 전설이 생겼다. 성종(14571495) 때는 요도탐사대를 만들어 양양 앞 바다의 요도 찾기에 나섰으나 실패하였고, 이후 울릉도를 금령(禁令)의 구역으로 만들고 섬을 비워 두었다.

임진왜란(15921598) 이후인 17세기 초에는 일본 어민들이 울릉도·독도를 넘나들기 시작하면서 어복(魚鰒)과 향죽(香竹), 강치 등을 남획하여 갔다.(주7) 그리고 17세기 말에는 우리 어민들도 울릉도·독도를 드나들면서 1692년에는 울릉도를 서로 자기의 영역이라 주장하였다.(주8) 그러다 1693년에는 일본 어민들이 울릉도에서 안용복과 박어둔을 납치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1694년에 조선에서 장한상 삼척 첨사(재임기간 1694.71696.4)를 울릉도 수토사로 임명하여 울릉도를 대대적으로 수토하게 되었다. 이후 삼척 영장과 월송 만호가 200여 년 동안 정기적으로 교대하여 울릉도를 수토하였다.

삼척항로는 서풍이 불어야만 울릉도로 항해할 수 있기 때문에 수토 초기에는 삼척포 진영에서 출항하여 거리가 가까운 남쪽의 장오리진(오늘날의 장호항)이나 죽변진으로 이동하여 서풍을 기다렸다. 동해안에서 서풍이 많은 계절은 가을철 북서풍인데, 이는 시기적으로 늦어서 항해와 수토에 어려움이 있다. 태백산맥의 동쪽에 위치한 영동 지방은 양간지풍(襄杆之風)이라 하는 봄철 건조한 강풍이 가끔 분다.(주9) 그러므로 서풍이 불 때까지 일주일이든 보름이든 기다려야했다. 그래서 강원도 제일 남쪽인 평해 구산포(구산진)에서 남서풍과 해류를 이용한 항해를 하게 되었다.

동해의 해류는 북쪽에서 내려오는 연해주한류와 북한한류가 있고 남쪽에서 올라오는 동한난류와 대마난류 외해지류가 있다. 동한난류는 동해안에서 북한한류를 만나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울릉 항로에서 조경 수역(주10)을 이룬다. 그리고 동쪽으로 흐르는 해류는 울릉도 주변에서 소용돌이 해류를 만들어 수종(水宗)(주11)을 일으키면서 해난사고의 주요 원인이 된다. 삼척 영장 장한상과 군관 최세철의 항해에서 삼척 항로 두 곳에서 수종이 나타났는데, 귀항할 때는 수종이 없었다.

연구자는 본 논문에서 조선시대 울릉도 수토사와 어민들의 울릉도·독도 항해기록을 조사·검토하여 삼척 항로와 월송 항로의 문제점을 알아보고, 울릉 항로의 특성과 울릉 항로에 생기는 수종의 원인이 무엇인지 해류병 실험을 통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로 계속)

 


주1) 삼척항 지진해일 안전타워 명예교육홍보관장, cosmos4645@naver.com

주2) 수토사는 조선시대 울릉도와 독도 등을 조사하는 관리를 뜻하며, 삼척 영장과 월송 만호가 교대로 수토사()가 되었다.

주3) 삼척포진 수군첨절제사는 조선시대 삼척포에 배치한 수군 지휘관으로 영장이라고도 한다. 삼척포진은 안인포(강릉), 고성포, 울진포, 월송포 등 4개의 만호영과 울릉도를 관장하였다.

주4)무엇을 알아내거나 찾기 위하여 조사하거나 엿봄.

주5) 안무사(安撫使)로 우산무릉등처(于山武陵等妻) 태종16(1416), 태종17(1417), 세종7(1425) 세 차례 파견되었다.

주6) 샅샅이 뒤져서 찾아냄.

주7) 쿠보이노리오 저, 이장우 역, 지도해설 독도의 진실, 일본학자가 조사한 독도는 한국 땅, 부산민족학교 독도학당, 2017, 9395.

주8) 오오니시 토시테루 저, 권정 역, 안용복과 원록각서, 한국학술정보, 2011, 28

주9) 「봄철 영동지역 국지 하강풍 메커니즘과 지형 효과에 대한 연구, 김정훈, 2006. Atmosphere, 16(2), 67.

주10) 조경 수역은 서로 성질이 다른 해류가 만나는 수역으로 동해에는 울릉도를 중심으로 북한한류와 동한난류가 만나는 수역을 가리키며 계절과 수온에 따라 수역이 변한다.

주11) 수종(수지)은 해저에 해산, 협곡 등이 있는 곳에서 서로 다른 해류가 부딪치거나 역류가 생기면서 물마루가 높아지는 현상으로 기압이 낮아져서 안개와 파도를 만든다. 동해상으로 저기압이 지날 때는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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