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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추적
공상적 사회주의 건설했다는 설 전해져…윌리엄 키드등 전설적 해적의 거점
해적들의 낙원, 마다가스카르 생트 마리섬
2019. 06. 29 by 김현민 기자

 

아프리카 동남쪽 인도양에 한반도 넓이의 두배쯤 되는 마다가스카르(Madagascar)라는 섬나라가 있다. 이 섬의 동쪽에 생트 마리(St. Mary's Island)라는 작은 섬이 있다. 이 작은 섬이 17~18세기초에 해적들의 낙원이라 블리던 마다가스카르 해적의 본거지였다.

이 소굴은 수에즈운하가 뚫리기 전에 인도와 유럽을 연결하는 무역로에 가까이 위치해 있었다. 게다가 아랍과 인도상인들이 동아프리카와 교역하던 항로를 덥칠수 있기 유리한 곳이었다. 17세기엔 유럽인들이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긴 했지만, 인도와 아랍의 세계를 지배하지는 못했다. 인도는 무굴제국이 지배했고, 페르시아 상인들이 인도양을 누볐다. 해적들은 무굴제국과 이슬람 상선을 노렸다.

마다가스카르엔 현지 흑인왕국이 있었고, 유럽 열강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세인트 마리섬은 유럽의 법이 미치지 않는 무법지대였고, 마다가스카르 흑인왕국도 이 곳의 해적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좋은 항구가 있어 거센 풍랑을 피하기도 좋았다. 열대의 따듯함과 풍부한 물이 있었다. 게다가 원주민들이 해적들에게 우호적이었다.

한때 1,500명의 해적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 시기는 역사적으로 해적 황금기(golden age of piracy)여서 유럽의 질서에서 이탈한 자는 너나할 것 없이 해적이 되던 시절이었다. 부랑자, 실업자, 퇴역군인, 가정파탄자들이 인도양의 낙원으로 몰려왔다.

 

마다카스카르 생트 마리섬의 위치 /위키피디아
마다카스카르 생트 마리섬의 위치 /위키피디아

 

이 곳에는 리베르타티아(Libertatia) 또는 리베르탈리아(Libertalia)라는 유토피아가 건설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찰스 존슨 선장’(Captain Charles Johnson)이라는 익명의 저자가 쓴 영국 해적사’(A General History of the Pyrates)라는 책에 나온 얘기다.

믿거나 말거나, 찰스 존슨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상상의 리베르타티아를 건설했다는 미션 선장(그림) /위키피디아
상상의 리베르타티아를 건설했다는 미션 선장(그림) /위키피디아

 

마다가스카르에 리베르타티아가 수립된 것은 17세기 말이다. 이 곳의 지도자는 제임스 미션(James Misson) 선장이다.

미션 선장은 토마스 스펜스(Thomas Spence)의 영향을 받아 마다가스카르에 상상적 유토피아를 건설하기로 했다. 해적들은 어떤 형태의 권력과 사회질서도 부정했다. 국왕제, 노예제, 자본주의등 당시 인간을 억누르던 제도를 파기했다. 그들은 직접민주주의를 선택했다.

리베르타티아는 모든 인간은 천부적 권리를 가지고 자유롭게 태어났다는 계몽주의 사상에 입각해 통치되었다. 모든 사람이 지구의 자원을 함께 나눌 권리가 있었다. 따라서 해적 활동을 해서 얻은 노획물은 모두에게 골고루 나눠졌다. 각 파벌은 대표들이 구성해 함께 모여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사안을 논의했다고 한다. 흑인 노예는 그들의 자유주의 사상에 위배되므로 해방시켰다. 일부는 해적질을 그만두고 토지를 얻어 농업을 하며 정착했다.

선장의 이름 미션(Misson)도 가명인 것 같다. 찰스 존슨에 따르면 미션 선장은 프랑스 프로방스에서 태어났는데, 프랑스 전함 빅토와르(Victoire)를 타고 로마를 들렀다가 로마 교황청의 부패를 보고 실망했다고 한다. 그는 항해를 하던 중에 선원들과 대화를 통해 자유의 세상을 만들어 보자고 설득했고, 그의 말에 감화를 받은 200명의 선원들이 선상 반란을 일으켜 미션을 선장으로 모시고 아프리카로 떠나기로 했다. 항해 도중에 네덜란드 노예 무역선을 나포해 노예들을 해방시켰다. 그들은 마다가사카르에 내려 리베르타티아를 선언하고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했다는 이야기다.

이 스토리에 대한 역사적 입증자료는 없다. 찰스 존슨의 저서에 나오는 내용이 전부다. 일부 역사가들은 찰스 존슨의 허구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반론을 펼친다.

 

마다가스카르 해적들의 무덤 /위키피디아
마다가스카르 해적들의 무덤 /위키피디아

 

하지만 마다가스카르의 생트 마리 섬은 해적들의 소굴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곳에는 지구상에 유일하게 해적들의 무덤이 있다. 그들이 정착해서 살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생트 마리섬은 세계 유명 해적들의 근거지였다. 1691년에 영국 해적 아담 볼드리지(Adam Baldridge)가 이 섬을 장악했고, 1719년 네덜란드 해적 존 프로(John Pro)가 차지했다.

이 섬에는 전설적인 해적들이 다녀갔다. 영국 해적으로는 윌리엄 키드(William Kidd)와 로버트 컬리포드(Culliford), 핸리 에브리(Henry Every), 에이브러험 사뮤엘(Abraham Samuel), 토머스 튜(Thomas Tew) 등이 있고, 프랑스 해적으로는 올리비에 레바쇠르(Olivier Levasseur)가 기록되어 있다.

이 섬에 정착한 프랑스인과 영국인 해적들은 현지 여성들과 혼인을 했고, 18세기 초반에는 영국 해적과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자가 이 일대의 왕이 되기도 했다. 왕국은 마다가스카르 동부 연안의 여러 도시들을 지배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18세기 들어 마다가스카르 해적들은 쇠타한다. 영국 해군과 동인도회사가 인도양을 장악하면서 무역로 보호를 위해 해적 퇴치에 나섰기 때문이다. 1711년에 마다가스카르 해적은 100명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마다가스카르의 해적 두목 토머스 튜가 사용한 인장 /위키피디아
마다가스카르의 해적 두목 토머스 튜가 사용한 인장 /위키피디아

 

마다가스카르의 해적소굴은 1706년부터 1718년까지 11년간 카리브해 바하마에 수립되었던 해적공화국(Republic of Pirates)의 모델이 되었다. 바하마 해적의 두령이었던 토머스 배로(Thomas Barrow)는 스스로 프로비던스 총독이 되어 그곳에 2의 마다가스카르를 세우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1의 마다가스카르도, 2의 마다가스카르도 결국 영국 해군에 의해 진압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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