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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 시대
①만주 누르하치 ②일본 도쿠가와 ③유럽 동인도회사…새 변수로
17세기, 조선 밖에서 부는 변혁의 돌풍
2019. 06. 30 by 김현민 기자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는 1600년을 전후로 한반도 주변에서는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조선의 북쪽 여진에서는 누르하치가 건주야진을 먹어들어갔고, 바다 건너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막부가 무너지고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선다. 또 멀리 영국에서는 동인도회사가 설립되고, 네덜란드도 곧이어 동인도회사를 만들어 아시아를 놓고 패권 대결을 벌일 채비를 한다.

한반도 외부에서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이는 가운데 조선의 지배계급은 왜란의 상처를 치유하기보다는 기득권 유지에 급급했다.

 

만주 호륜 4부 위치 /김현민
만주 호륜 4부 위치 /김현민

 

요동의 공백, 누르하치 부상

한반도에서 벌어진 7년 전쟁으로 명나라와 조선, 일본이 기력을 잃고 있는 가운데 만주에는 권력 공백이 생겼다.

압록강과 두만강 북쪽을 차지해고 있던 건주여진의 누르하치는 그동안 강화해온 역량을 활용해 해서여진 4부족을 하나씩 먹어들어갔다. 통합하 나가기 시적했다. 이 점차 강화되고 확대되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扈倫4의 통합과정에 주목하였다.

누르하치는 1583년부터 건주여진을 통합한데 이어 장백산 3부와 와이객부(瓦爾喀部) 일보를 정복했다. 이어 여진 부락 사이의 얽히고설킨 연합과 갈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1598년부터 해서여진에 대한 통합을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1599년 하다(哈達)을 시작으로 1607년 후이파(輝發), 1614년 우라(烏拉), 1619년 예허(葉赫)를 차례로 통합했다. 누르하치는 건주여진과 해서여진을 차례로 정복하며 이를 기반으로 1616년 후금을 건국한다.

해서여진은 누르하치의 건주여진과 명 사이의 요동 쟁탈 과정에서 전략적 요충지였다. 누르하치는 이 곳을 장악하면서 대명(對明) 무역권을 장악하고, 이를 통한 중개무역으로 막대한 이익을 올려 경제적 기반을 다졌다. 또 해서여진과 주변 여진 부락의 인구까지 흡수하면서 군사적 역량을 확대시켰다. 이는 이후 누르하치가 명나라와 요동을 두고 벌인 사르후 전투에서 승리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게 된다.

 

세키가하라 전투도 /위키피디아
세키가하라 전투도 /위키피디아

 

세키가하라 전투, 에도 막부 수립

세기가 바뀐 16001021(음력 915)이다.

일본 혼슈(本州) 중앙(지금의 기후현 후와군) 세키가하라() 벌판에서 역사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이른바 세키가하라 전투().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가 이끄는 동군 10만명과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가 이끄는 서군 8만명이 결전을 치렀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2년전(1598) 사망하고 일본 열도의 패권을 다투는 전투였다. 이 전투에 관해서는 많은 스토리가 알려져 있다. 결론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이 승리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내통하고 있던 고바야카와 히데아키(小早川秀秋)와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가 배반하는 바람에 서군의 주력이 괴멸했다.

이 전투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파죽지세로 서군 영지를 점령하고 일본 열도의 실권을 장악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603년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 즉 쇼군의 지위에 올라 에도 막부 정권을 세웠다.

일본의 소설가 시바 료타로는 소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규모나 영향력에서 워털루 전투(1815)에 못지 않았다고 비유했다. 이 전투 이후 패권을 장악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에도(江戸)로 천도했다. 지금의 도쿄(東京). 이에 따라 일본 고대와 중세의 중심이었던 오사카 중심의 관서(關西) 시대가 마감하고 당시 변방으로 취급받던 도쿄 중심의 관동(關東) 시대가 온 것이다. 아울러 일본은 기나긴 전쟁의 시대를 마감하고 300여년간 평화의 시대를 맞게 된다.

 

런던 동인도회사 본부 /위키피디아
런던 동인도회사 본부 /위키피디아

 

영국 제국주의 첨병 동인도회사 설립

16001231, 영국 동인도회사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으로부터 특허장을 받았다.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에 거점을 두고 향료 무역에 나서자 영국인들이 경쟁심을 느껴, 인도를 중심으로 아시아 진출을 위해 만든 주식회사다.

영국 동인도회사 소속 선박 4척이 런던을 떠난 것은 16012월이었고, 이 선단은 이듬해인 16029월 영국에 무사히 도착했다.

영국이 동인도회사를 만들자, 네덜란드도 곧이어 1602년 동인도회사를 설립했다. 두 나라의 동인도 회사는 아시아를 인도, 인도네시아, 인도차이나로 자기들 마음대로 선을 그어 무역에 나섰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뒤쳐져 있던 영국과 네덜란드가 본격적으로 아시아에 뛰어든 것이다. 두 나라는 서로 경쟁하면서도 아시아를 선점한 포르투갈, 스페인과 영역 싸움을 벌이며 아시아에서 유럽의 패권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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