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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이야기
1659년 피레네 조약으로 프랑스령…조약 문구 해석으로 스페인에 반환
프랑스 영토 내에 스페인 마을 리비아
2022. 11. 23 by 박차영 기자

 

프랑스 영토 내에 리비아(Llivia)라는 자그마한 스페인 마을이 있다. 면적은 12.9으로 서울에서 가장 작은 중구나 금천구 정도다. 인구는 2018년 기준으로 1,428명이다. 해발고도 1,224m, 피네네 산맥 한 가운데 있는 산간마을이며, 스페인 국경에서 1.8km 떨어져 있는 월경지(越境地).

이 마을이 고립된 스페인 영토가 된 것은 3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페인은 30년 전쟁에 뛰어들어 프랑스와 영토전쟁을 벌였고, 지리한 전쟁 끝에 양국은 1659년 피레네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에 따라 양국은 피레네 산맥을 국경으로 삼았으며, 산맥 북쪽에 있는 루시용과 세르다냐 등의 스페인 영토는 프랑스령으로 넘어갔다. 리비아는 세르다냐에 속해 있었었기 때문에 프랑스 영토가 될 처지에 있었다.

그때 피레네 조약에 허점이 발견되었다. 조약 문구에 피레네 산맥 북쪽의 마을을 프랑스에게 양도한다고 규정되었는데, 마을이란 단어를 농촌마을을 의미하는 단어(village)가 사용되었다. 조약이 체결된 후 스페인측은 리비아는 농촌마을이 아니라, 도시(town)이기 때문에 내줄수 없다고 했다.

리바아는 고대 로마때부터 조성된 도시였다. 로마시대엔 율리아 리비카(Julia Lybica)라는 요새도시였고, 중세엔 세르다냐의 수도로 고미술품 교역의 중심도시였다.

프랑스측은 스페인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작은 마을 하나로 전쟁을 재개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양국은 이듬해인 1689년 리비아 조약을 체결해 그 마을만 스페인령으로 남는다고 명문화했다.

 

리비아 마을 /위키피디아
리비아 마을 /위키피디아

 

리비아는 스페인 카탈루냐 주에 속해 있다. 프랑스는 카탈루냐에서 리비아까지 길을 내주고, 자유통행을 허용했다. 그러다 보니 리비아는 17~18세기에 밀수꾼들의 소굴로 악명이 높았다.

1939년 스페인 내전이 끝날 무렵, 리비아를 독립국 또는 자치령으로 삼아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리비아의 위치 /위키피디아
리비아의 위치 /위키피디아

 

카탈루냐와 리비아 사이의 도로는 스페인 전용통로로 사용되었다 스페인에서는 그 도로를 N-154, 프랑스에선 D-68이란 도로번호를 붙였다. 1970년대에 프랑스가 이 도로를 가로지르는 2개의 도로를 개설하고, 정지신호(stop sign) 표지판을 세웠다. 1.8km 구간을 논스톱으로 달리던 리비아 주민들이 불만을 품고 표지판을 훼손시켰다. 이 문제는 양국의 외교문제로 번졌다.

양국은 이 갈등을 슬기롭게 해결했다. 하나의 교차로엔 스페인측이 고가도로를 놓았고, 다른 하나의 교차로는 프랑스측이 우회로를 만들어 폐쇄했다.

유럽연합(EU)가 구성되고 솅겐조약에 의해 1995년부터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이 개방되면서 리비아와 관통도로도 전유럽인에게 개방되었다. 지금 리비아의 병원에는 이웃 프랑스인들도 자유롭게 찾아오고 있다.

2017년 카탈루냐 독립투표 때 리비아 주민은 투표자 591표 중 561표가 독립을 지지했다. 하지만 주민투표는 스페인 당국에 의해 불법으로 규정되었고, 카탈루냐의 독립은 무산되었다.

 


<참고한 자료>

Wikipedia, Llívia

Wikipedia, War of the stop sig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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