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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부패하고 위선적인 주인공을 추락시킨 건 새로운 심판자인 담임선생
지금도 생생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2022. 11. 25 by 박차영 기자

 

엄석대의 독재가 가능했던 것은 급우들이 그의 폭력을 두려워 복종했고, 담임선생님이 그의 비위를 눈감아주고 두둔했기 때문이다. 학년을 올라가 담임선생이 바뀌자 상황은 달라졌다. 새로 부임한 6학년 담임선생은 예리한 눈으로 엄석대의 부정을 밝혀내고 벌을 주었고,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학생들이 일제히 독재자에 반기를 들게 된다.

1987년에 발표된 이문열의 중편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4·19 혁명 직전인 1959년 시골 어느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이문열은 철저하게 우화적인 구도를 기지고 이 소설을 썼다고 했다. 엄석대의 행태는 정당성과 정통성이 없는 권력이고, 분단장급 상위그룹은 지식인 출신 관료 내지 행정기술자들이다. 첫 번째 담임선생은 독재자를 두둔하는 1970년대 미국의 외교정책이며, 두 번째 담임선생이 아이들의 의식을 일깨워주는 방법은 폭력 그 자체다.

선생이 학생에게 종아리가 시퍼렇게 물들도록 매를 때리는 풍습은 1980년대에도 있었다. 교권이란 미명 하에, 사랑의 매질이라는 포장으로 선생에 의한 학교 폭력은 불가침의 영역이었다. 이런 폭력에 의해 엄석대의 독재와 위선이 보호되었고, 또다른 선생의 폭력에 의해 무너진 것이다.

이 소설이 출간한 해엔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군부세력이 민주화 요구를 받아들여 대통령 직선을 실시한 때다.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시골의 작은 학교를 무대로 한 픽션은 많은 젊은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덕분에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200만부를 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문열을 우리나라의 대표적 소설가로 만들어주었다.

지금은 선생의 학교폭력은 뉴스가 되는 시절이다. 아무리 시골학교라도 엄석대와 같은 학생이 존재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사회에 일그러진 영웅은 여전히 곳곳에 독버섯처럼 똬리를 틀고 자라고 있다. 30여년전 베스트셀러가 여전히 우리의 공감을 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표지 /민음사
책표지 /민음사

 

봇물처럼 이어지는 석대의 비행은 끝없이 이어졌다. 장삿집 애들은 매주 얼마씩 돈을 바치게 하고 농사짓는 집 아이들에게 과일이나 곡식을, 대장간 아이에게는 엿으로 바꿀 철물을 가져오게 하는 따위의 경제적인 수탈도 있었다. 돈 백환을 받고 분단장을 시켜준 일이며, 환경 정리를 한다고 비품 구입비를 거두어 일부를 빼돌린 게 밝혀지고 ”: (p73, 민음사 개정증보판)

엄석대의 비행은 그의 폭력과 강압, 급장이란 권력에 근거한다. 그 보다 중요한 것은 5학년 담임 최 선생이 엄석대에 무한한 신뢰를 보냈고, 담임과 석대의 묵인 아래 아이들은 석대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하고 충성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학급에 서울에서 잘 나가는 초등학교에 다니다가 아버지를 따라온 소설 속 화자 한병태가 전학해 온다. “는 전학 첫날 엄석대와 불편한 관계로 만난다. ''는 엄석대의 물당번을 거절하고, 그의 세력에 반항적이고 저항적인 도전을 시도한다. 나는 그의 비행, 폭력, 위압을 선생님께 낱낱이 일렀지만 오히려 선생님은 못들은 척 했다. 그후 한병태는 엄석대의 경계 대상이 되고 친구들의 골림과 놀림을 당했으며 극심한 소외감과 외로음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날, 유리창 청소를 계기로 한병태는 엄석대에 굴복하게 된다. 현실과 타협한 것이다.

너무도 허망하게 끝난 싸움이고 또한 그만큼 어이 없이 시작된 굴종이었지만, 그 굴종의 열매는 달았다. 오래고 끈질긴 반항 끝에 이루어진 굴종의 열매라 특히 더 달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그의 질서 안으로 편입된 게 확인되면서 석대의 은혜는 폭포처럼 쏟아졌다. ”(p53)

 

이 독재와 위선이 종식되는 것은 정의에 불타는 급우들의 열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6학년이 되어 바뀐 새 담임선생님 때문이었다. 6학년 김선생은 담임을 맡자 바로 엄석대를 수상하게 바라보았고, 부정시험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해결방법도 폭력적이다. 김선생은 엄석대를 개 패듯 패서 자백을 얻어내고 침묵의 동조자들에게 그동안의 미필적 침묵을 매로 다스렸다. 그렇게 해서 학급의 자율과 민주적 절차는 소생하게 되었다. 엄석대는 학교를 떠나게 된다.

이문열은 여기서 소설을 끝내어도 되는데, 결말을 별도로 만들었다. 글을 쓴 시점인 40대 후반의 작가는 주인공이 되어 엄석대를 소환한다. 소설 책에는 30년 가까이 지난후 학원강사를 하던 중 피서차 가족과 함께 강릉에 갔는데 수갑에 채워져 경찰에 연행되는 엄석대를 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문열은 세 개의 결말을 준비했다고 한다. 또다른 결말은 엄석대가 나중에 크게 성공해 강릉 피서지에서 한병태 가족을 후하게 대접한다는 것이다. 또 화려하게 성공했는지, 아니면 비참하게 몰락했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결말도 준비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문열은 권선징악의 결말을 선택했다. 그는 어둠과 악의 승리라는 결말에 식상하고, “악당은 수갑을 차라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고 2005년애 쓴 작가 후기에서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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