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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송응창, 이여송, 심유경의 음모에 일본 고니시 유키나가 등이 가담
임진왜란④…평화협상이란 국제사기극
2022. 12. 06 by 김현민 기자

 

[에서 계속] 심유경(沈惟敬)1537년 저장성에서 태어나 상인으로 활동하던 평민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명나라 병부상서 석성(石星)이 일본어를 하는 사람을 뽑았는데 이때 응모자 가운데 심유경을 발탁해 유격장군(遊擊將軍)의 직함을 주어 조선에 파견했다.

심유경은 일찍부터 장사를 하면서 화술이 능란했고 협상과 타협의 능력이 탁월했다. 전쟁 발발 이듬해 전선이 수도권에서 교착되자 명과 일본은 서울 용산에서 첫 강화회담을 열었다. 2차 회담은 그해 5월 일본 나고야성에서 열렸다.

두 번의 회담에서 중국측에선 심유경이, 일본측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대표로 나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제시한 조건은 명나라 황녀를 일본 천황의 후궁을 삼을 것 명과 일본은 교역할 것 양국의 우호관계를 서약할 것 조선 8도 가운데 4도를 일본에 이양할 것 조선의 왕자와 신하를 볼모로 일본에 보낼 것 포로로 잡혀 있는 조선의 두 왕자를 석방한다 조선의 권신이 일본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할 것 등이었다. 중국측은 왜군이 조선에서 완전히 철수할 것 조선의 두 왕자를 송환할 것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번 전쟁을 공식적으로 사죄할 것을 요구했다.

서로의 요구사항 중에서 공통적인 것은 선조의 두 아들 임해군과 순화군을 석방하는 것 뿐이었다. 주선주둔군 총책임자인 경락 송응창(宋應昌)과 야전사량관 이여송(李如松)은 협상을 원했고, 고니시도 평양성을 뺏기고 행주에서 대패한 후 전의를 잃고 협상에 응했다.

송응창 /바이두백과
송응창 /바이두백과

 

협상이 진행되는 도중에 히데요시가 명 황제 신종(神宗)에게 국서를 보냈다. 히데요시의 국서를 그냥 전했다가는 중국 황제가 노발대발해 협상이 무산될 것은 불문가지였다. 심유경이 이 대목에서 희대의 사기극을 저지른다.

국서를 소지한 일본측 사절은 고니시 유키나가의 심복인 고니시 죠안(小西如安)였다. (그는 고니시 도부(小西飛)로 사료에 등장하기도 한다.) 심유경이 죠안과 함께 베이징까지 동행했다.

히데요시는 국서에서 중국에 조공을 바치려는데 조선이 방해했기 때문에 침공했다면서 천자의 뜻을 안 이상 싸움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누가 보아도 이 국서는 거짓말이든, 조작이든 히데요시의 본심이 아님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런데도 신종은 국서를 받고 크게 기뻐하며 히데요시를 일본 국왕으로 책봉하겠다고 했다. 나아가 중국 황제는 죠안에게 왜군이 조선 남부에 주둔하는 까닭을 물었고, 죠안은 즉각 철군하겠다고 대답했다.

 

일본측이 중국 황제에게 건넨 국서는 조선에도 전해졌다. 선조실록(27211)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 그 문서를 조선에선 왜노(倭奴)의 항표(降表), 즉 항복문서라고 했다. 선조는 죠안이 제출한 항복문서를 의심을 했다.

선조실록에 선조가 "이 글은 우리 나라 사람의 문법과 같은데 승지가 보기에는 어떠한가?"라고 물었다. 승지 정원은 “"이 문법과 체제는 분명 왜노가 지은 것은 아닌데 우리 나라 사람이 지은 것인지 중국 사람이 지은 것인지는 정확히 지적하기 어렵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조선은 송응창, 이여송, 심유경으로 연결되는 명나라 주화파와 고니시 유키나가와 죠안의 일본 강화파가 야합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유성룡의 징비록에는 심유경은 왜장 고니시 도부(죠안)와 함께 관백(히데요시)의 항복문서를 가지고 중국에 돌아갔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이 문서가 고니시 유키나가 등이 거짓으로 만든 가짜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심유경이 조선에 돌아왔을 때 진주성이 함락되었다. 심유경이나 송응창, 이여송은 일본이 거짓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강화를 밀어부친 것이다.

 

이여송 /위키백과
이여송 /위키백과

 

송응창의 직책은 병부우시랑(兵部右侍郎) 겸 경략비왜군무(經略備倭軍務)으로 정3품에 해당했다. 그는 조선 파병 명군의 최고 사령관으로, 조선에서 사실상 최고 실력자로 군림했다.

송응창은 일본군이 조선 남부에 머물러 있는 상태에서 전쟁을 마치려고 했다. 조선은 송응창의 음모를 간파했다. 선조는 주청사(奏請使)를 보내 황제에게 경락 휘하의 음모를 밝히려 했다. 하지만 송응창은 요동을 막아서 조선 사신의 베이징행을 저지했다.

거짓말은 또다른 거짓말을 낳는다. 사기의 전모가 점점 커져갔다. 송응창은 일본군이 조선 남부에 똬리를 틀고 있는데도 일본군이 완전 철군했다고 베이징 조정에 거짓보고를 했다.

선조가 남부의 왜군을 쫓아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주장이었다. 송응창은 조선의 임금을 무력화하기 위해 하삼도 경리안을 내놓았다. 조선을 둘로 나눠 충청, 전라, 경상도의 통치를 광해군에 맡기라는 것이었다. 하삼도의 일에 선조가 나서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도였다.

선조는 물러나겠다며 선위론을 밝히기도 했지만, 송응창의 요구가 집요했다. 그러자 선조는 유성룡을 15931027일에 영의정으로 복귀시켰다.

심유경 /바이두백과
심유경 /바이두백과

 

유성룡은 선조를 방어해야 했다. 송응창의 선조 물 먹이기는 자신의 사기행각을 덮기 위한 방책이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송응창이 감추고 있는 사실, 즉 왜군이 조선에 아직 버티고 있다는 비밀을 명 황제에 알려야 했다. 유성룡은 선조에게 경략(송응창)과 명나라 장수들이 모두 왜적이 이미 물러간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라면서 우리나라가 가만히 앉아서 모함받게 되었으니 매우 통탄스럽고 답답합니다"라고 했다. (선조 261129)

때마침 명나라는 칙사로 사헌(司憲)을 파견했다. 유성룡은 사헌에게 송응창과 이여송이 명 조정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일러 주었다. 사헌은 본국에 돌아가 왜적이 대부분 조선에 남아 있다고 보고했다. (선조실록 27221)

조선은 사헌의 보고만으로 명을 믿을수 없었다. 선조는 김수(金睟)를 사절단장으로 중국에 보내기로 했다. 유성룡은 사신이 요동을 지나면서 송응창의 부하들에게 몸수색을 당해 국서를 빼앗기기지 않을까 걱정했다.

유성룡은 선조에게 비밀리에 보고했다. “김수가 수색당할까 염려스럽습니다. 신은 이 점을 염려해 뒤떨어져 가는 역관에게 국서를 가지고 가게 해서 경략(송응창)이 모르게 하도록 지시를 내렸습니다. 은밀하게 하지 않으면 국서가 누설되지 않는다고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선조 261225)

김수의 국서전달 비밀작전은 성공했다. 칙사 사헌의 보고와 조선 사절단의 국서로 인해 중국에선 송응창과 이여송의 사기행위가 발각이 되었다. 진실이 밝혀지면서 송응창과 이여송은 본국으로 소환되어 탄핵을 당했다. 명나라는 송응창 후임으로 병부시랑 고양겸(顧養謙)을 경략으로 발령했다.

 

송응창은 소환 후에도 그동안의 공적을 인정받아 정2품 도찰원우도어사로 임명되었으나 낙향해 죽을 때까지 고향에서 지냈다. 이여송은 귀국한 뒤에 여러 벼슬을 역임하다가 1597년에는 요동총병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심유경은 히데요시를 명 황제의 책봉서를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히데요시는 명이 자신을 국왕으로 책봉한 사실에 격분했다. 강화협상은 실패로 돌아갔고, 일본은 1597년 다시 조선으로 출병해 정유재란을 일으켜다. 심유경은 감금되었다가 석방되었고 또다시 일본과 평화 교섭을 진행하였으나 실패했다. 그는 일본으로 망명을 기도했다가 경상남도 의령 부근에서 명나라 장수 양원(楊元)에게 붙잡혀 처형되었다. 국제적인 사기행각의 업보였다. [로 계속]

 


<참고한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이덕일, 유성룡 - 설득과 통합의 리더 유성룡, 2007,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징비록, 김흥식 옮김, 서해문고,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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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바이오 2022-12-10 13:32:46
대양시대와 산업화시대로 바뀌는 시절에 망해가는 청과 욱일승천하는 일본 사이의 국제사기극. 편안한 왕조시대가 저물어가면서 청나라와 조선이 국운이 뻣치는 일본을 보면서도 보지못했다는 사실. 역사는 지난 일의 기술이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아야하는지를 느끼게 함. 나라를 분열시키는데 혈안이 되어 정권을 잡은 운동권정권이 지면서 기업과 국민 개개인이 세계로 뛰어나가 살아남는 코리아열전. 살기 너무 바쁜데 너희들 정치싸움에 끼어들 시간없으니 그만 멈추라고 하는 국민들. 이게 안되어 저물어가는 일본과 일본인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