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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경제가 안으로 곪아 터지는데, 정부와 경제주체는 위기 인식하지 못해
1997 IMF 외환위기의 회고…안이한 정부
2019. 07. 05 by 이인호 기자

 

21세기를 몇 년 앞둔 1997, 세계 11위의 경제력을 자랑하던 한국 경제가 미증유의 경제위기를 맞았다. 고도성장이 가져온 환상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국민들 중에는 외환위기가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온 것처럼 느끼는 사람이 많았다. 멕시코 위기가 우리나라에 재현할 것이라는 우려는 있었지만, 설마 우리가 그런 위기를 당할 것이라고 상상하기조치 싫었던 것은 사실이다.

미국의 석학 존 케네드 갈브레이드는 일찍이 1929년 대공황에 비견하는 공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는 그 공황이 아시아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단정하지 않았지만, 세기말을 앞두고 그의 선견지명이 적중했다.

대공황 당시에도 음모론이 있었다. 유럽의 유태인들이 미국의 성장을 시기해서 금을 사재기했다는 설이 있었다. 음모자를 색출하는 작업도 있었다. 그러나 갈브레이드는 대공황의 원인이 미국 경제력의 허영에 기인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당시 미국 경제는 광기에 가까웠고, 미국인들은 그들의 모국인 유럽보다 부자가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시아에도 허영과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엔고 덕분에 아시아는 90년대 들어 연간 10%대의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의 빌딩을 짓겠다고 경쟁을 했고, 한국에서는 반도체, 자동차, 유화, 조선, 전자 산업등 주력 산업에서 치열한 설비경쟁이 벌어졌다.

 

우리 경제에 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한 시기는 1996년 상반기부터였다.

우리 경제의 근간이 되는 수출구조가 심각하게 무너져 내렸고, 반도체는 물론 거의 모든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정부의 근거 빈약한 지나친 낙관론이 우리 사회에 풍미했고, OECD 가입을 계기로 마치 선진국이 된양 들떠 있었다.

1997년 세계금융시장에서 우리경제에 대한 회의가 폭 넓게 일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정부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우리 나라는 일찍이 경제위기가 있었던 중남미와 다르고, 멕시코와 다르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는 논리를 폈다. 신흥시장 경제에 대한 이해와 정보가 미약했음은 물론 세계화에 따라 우리 경제가 근접해서 이해해야 할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다. 일부 전문가를 제외하고 무디스나 S&P와 같은 신용등급회사의 이름도 몰랐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미국 조지타운대 한국 IMF위기 분석 리포트 표지 /조지타운대
미국 조지타운대 한국 IMF위기 분석 리포트 표지 /조지타운대

 

아시아 위기는 정부와 기업인, 금융인들이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사이에 터져 나왔다. 그들은 10년전 라틴아메리카의 외채 위기, 가깝게는 2년전의 멕시코 위기가 태평양 건너 이질적인 민족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알고 있었다. 태국 위기가 터지자 아시아 지도자들은 자신의 국가가 태국과 다르다는 점을 설명하기에 급급했다. 그들은 태국인들보다는 더 교육을 받았고, 규제가 잘 돼 있고, 펀더멘털이 든든하다고 주장했다.

동남아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한국의 정책 당국자들은 한국은 다르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은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의 경제리더들은 국제 금융시장의 움직임에 둔감했다. 국제 시장의 거센 파도가 코앞에 닥쳤는데도 정치권은 대선을 앞두고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경제 구조조정을 애써 피하려고 했다.

외환 위기는 한국인들로 하여금 국제 자본시장에 대한 눈을 뜨게 했다. 외국에서 돈을 빌어쓸줄은 알고, 선진국 기업을 인수하면서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한양 자부했지만, 정작 국제시장의 급격한 변화를 깨닫지 못한 것이 한국 경제주체들의 실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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