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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이야기
영국이 물러날 때 동펀잡과 서펀잡으로 분리…국경에 양국의 국기하강식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갈라진 펀잡
2023. 02. 23 by 박차영 기자

 

인도와 파키스탄의 경계에 있는 도시 카수르(Kasur)에는 매일 오후 6시에 국기하강식이 열린다. 같은 시각, 두 나라의 군인들이 엄격한 제례의식을 갖춰 자국 국기를 내린다. 관광객들이 환호를 하고, 양국 국민은 자국 군인을 응원한다. 19478월 인도와 파키스탄은 분리되었지만, 1970년부터 이 행사를 통해 두 나라가 역사와 문화에서 하나였으며 경쟁과 화합을 다짐하고 있다.

카수르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이기도 하고, 둘로 나눠진 펀잡의 경계이기도 하다. 영국 지배 시절에 펀잡은 하나의 주였다.

펀잡은 인더스강과 5개 지류(젤룸·체나브·라비·베아스·수틀레지)가 흐른다는 의미(5)에서 나온 말로 예로부터 곡창지대였다. 기후는 고온·건조하고 연평균강수량은 500mm 이하이지만 관개용수를 이용해 고대부터 비옥한 농경지대를 형성해왔다. 면화와 곡물의 주산지이며, “인도·파키스탄의 빵 바구니”(breadbasket of both India and Pakistan)라고 지칭되었다.

이 비옥한 토지는 문명의 중심지를 형성하기도 하고, 강대국의 약탈대상이 되기도 했다. 고대 인더스 문명은 펀잡을 중심으로 꽃을 피웠고, 아리아족,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 위그르족의 쿠샨 왕조, 몽골족의 무굴제국도 펀잡을 점령했다.

 

파키스탄과 인도 국경의 국기하강식 /위키피디아
파키스탄과 인도 국경의 국기하강식 /위키피디아

 

영국도 시크 왕국을 제압하면서 펀잡을 통치했다. 영국 지배 말기인 1941년 서펀잡에는 무슬림이, 동펀잡에는 힌두교도가 주류를 이루었다. 영국이 물러가기 직전에 힌두와 무슬림 지도자들은 서로 분리·독립하기로 약속을 하고 펀잡주를 어떻게 할지를 논의했다. 결론은 펀잡주를 나누자는 것이었다. 양측이 어디를 경계선으로 하느냐에 서로 팽팽하게 맞섰다. 결국 영국인 시릴 래드클리프에 의해 펀접자의 경계가 그어졌다. 그렇게 해서 서펀잡은 파키스탄, 동펀잡은 인도의 영토가 되었다.

서펀잡이 동펀잡보다 대체로 4배 정도 크다. 인구에서 서펀잡이 11,001만명(2017), 동펀잡이 2,774만명(2011)이고, 면적에서 서펀잡이 20.5, 동펀잡이 5.

 

두 개의 펀잡주 /위키피디아
두 개의 펀잡주 /위키피디아

 

펀잡이 갈라질 때 서쪽에 살던 힌두교도와 시크교도가 동펀잡으로 이동하고, 동쪽에 살던 무슬림이 서펀잡으로 이동했다. 당시 650만명의 무슬림이 짐을 싸 서쪽으로 이주했고, 힌두와 시크교도를 합쳐 470만명이 동쪽으로 이동했다.

영국이 물러난후 파키스탄 영토가 된 서펀잡엔 이슬람교도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동펀잡은 시크교도와 힌두교도가 뒤섞여 살게 되었다.

시크교(Sikhism)15세기 펀잡지역에서 교조 나나크(Guru Nanak)에 의해 창시되었는데, 힌두교의 신애(信愛, 바크티) 신앙과 이슬람교의 신비사상이 융합해 탄생한 종교다. 무슬림 왕조인 무굴제국은 아우랑제브 황제 시절에 시크교에 대해 적대정책을 취한 이후 탄압을 받았다. 1801년 란지트 싱은 시크 왕국을 선포했으나, 1849년 영국에 의해 멸망했다.

시크교도들은 힌두교도와 사이가 좋지 않으나, 무슬림과는 적대적이어서 인도-파키스탄으로 분리될 때에 인도를 선택했다. 하지만 인도 펀잡에서 시크교 과격파들은 독립을 요구하는 칼리스탄(Khalistan) 운동을 펼쳤다.

 

시크교도와 암리차르의 황금사원 /위키피디아
시크교도와 암리차르의 황금사원 /위키피디아

 

1984년 시크 분리주의자들이 암리차르의 황금사원을 점거하고 독립을 요구했다. 당시 인도 총리는 자와할랄 네루의 맏딸 인디라 간디였다. 간디 총리는 시크 분리주의자들의 과격시위를 진압하라고 명령했다.

인도군은 황금사원에 은신하는 무장 분리주의 세력을 급습했다. 양측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500여명이 사망하고, 사원은 심하게 훼손되었다. 황금 사원 습격 후 수천 명의 시크교도들이 체포되었다.

그해 1031일 간디 총리는 시크교도인 경호원 3명이 쏜 총에 맞아 암살되었다. 그후 시크 급진파는 인도에서도 탄압을 받았고, 최근에 테러가 진정되고는 있지만, 재발할 가능성은 여전하다.

시크교도는 머리에 터번을 두른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인도의 코브라 뱀을 다루는 의상은 시크교도의 풍속에 근거한 것이다. 인도인 가운데 싱(Singh)이란 성씨는 대체로 시크교도로 보면 된다. 인도인 시크교도의 60%가 펀잡주에 살고 있다.

 


<참고한 자료>

Wikipedia, Punjab

Wikipedia, Sik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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