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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해외자금 조달 중단되자, 종금사 위기…한은, 보유외환 풀면서 환율 급등
[IMF의 기억③] 종금사에서 시작된 시한폭탄
2019. 07. 09 by 김현민 기자

 

해외에서 돈줄이 끊어지자, 저리의 해외자금을 빌려 금리 높은 곳에 투자해 금리차이로 돈을 벌던 종합금융회사들이 어려워졌다. 종금사들은 러시아, 라틴아메리카, 동남아에 사둔 채권을 헐값에 매각했다.

종금사들은 이들 국가의 금융위기를 가중시켰다. 종금사들은 당시 러시아 국채 40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중 20억 달러를 한꺼분에 매각했다. 러시아 금융위기의 서막은 한국 종금사들이 일으켰다는 것이 러시아인들의 인식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한국 종금사들은 35억 달러의 국채 중 15%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중 상당부분을 이 시기에 매각했다. 라틴아메리카의 브래디 본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종금사들이 투매한 해외자산 중 러시아와 라틴아메리카 채권은 헐값이지만 그나마 매각됐다. 문제는 동남아 채권이었다.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에서 채권을 내놓으니 살 사람이 없었다. 동남아 채권은 물리고, 선진국 은행들은 자금공급선을 끊었다.

외국 은행들이 일시에 대출을 중단하고, 빌려준 돈을 회수하자, 한국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달러 수요가 폭증했다. 은행은 외국에서 빌린 돈을 기업에 대출해 주었고, 기업은 그 돈으로 설비에 투자했는데, 갑자기 설비를 팔아 현찰로 바꿔 빚을 갚을 수 없었다. 그나마 외국 은행과 오랫동안 거래해온 시중은행들은 근근히 달러를 굴릴 수 있었으나, 해외 채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다.

국제 거래에 둔화되면서 신용이 낮은 종금사는 문을 닫을 길 외에 도리가 없었다. 199710월말 현재 종금사들의 대외부채는 모두 200억 달러에 이르렀고, 이중 65%129억 달러는 단기 외채였다. 1)

 

정부가 시중은행으로 하여금 종금사에 달러 공급을 하라고 지시했으나, 시중은행은 자기 살기 바쁜데 어떻게 남을 도울 여력이 없었다. 정부는 한국은행에 비상시를 위해 쌓아놓은 외환보유액을 풀기 시작했다.

 

한국의 환란은 깨지기 쉬운 국제 금융관행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환란 이전의 한국 외환 정책이 보수적이라는 사실은 국제적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바트화 폭락이후 10월말까지 원화 절하율은 4.5%에 불과했다. 태국 바트는 같은 기간 36%, 말레이시아 링기트가 25% 폭락한 것에 비하면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외환 투기자들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국내에 직접 투자한 외국기업에 한해 주식등 원화 자산을 보유하도록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다. 외국인 투자한도를 23%로 제한했고, 채권 시장은 외국인에게 거의 개방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핫머니가 유입되는 것을 철저히 막았다.

 

자료: 한국은행
자료: 한국은행

 

한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했다는 보는 곧바로 국제 금융계에 알려졌다. 다음은 월스트리트 저널지의 보도를 시간차로 살펴보자.

 

1027, “한국은행은 외환보유액 30억 달러를 사용했다. 원화는 비교적 안정적이며, 내년(98)초에 1달러당 950원으로 떨어질 것이다.”

113, “한국은행은 304억 달러의 외환보유액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외환 전문가들은 하루에도 수억 달러를 쓰면서 원화를 방어하고 있다고 말한다.”

115, “한국은행은 최고 200억 달러의 보유 외환을 풀었다는 소문이 있다. 한국은행은 시중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외환마저 끌어들이고 있지만, 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외환 딜러들 사이에는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이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는 루머가 나오고 있다.”

 

11월초가 되면서 1년 앞을 내다보고 거래되는 국제선물환 시장에서 원화는 31% 절하된 상태에서 거래됐다.

당시 정부가 금리를 대폭 인상, 한국에 단기 자금을 빌려준 국제 은행들에게 높은 이윤을 보장하고, 환율변동폭(밴드)을 일찌감치 풀어버리는 극약처방을 했더라면, 원화 환율이 골드만 삭스가 분석한 것처럼 1,200~1,300원 대에서 시장 가격을 형성하며 안정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아르헨티나, 홍콩, 필리핀, 심지어 자본주의의 문턱에 막 넘어선 러시아도 그런 일을 했다. 그러나 정권말기에 임박하면서 한국의 정부 관리들은 환란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기 급급했고, 외환 보유액에 바닥이 드러나서야 밴드를 풀었고, IMF의 요구로 금리를 인상했다. 결국은 원화 환율은 2,000대까지 곤두박질쳤고, 한국 경제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1117일 원화 환율은 1달러당 1,008.6원으로 1,000원의 마지노선이 무너졌다. 한국은행은 더 이상 원화 방어를 않겠다고 발표했다. 국제 시장에서는 한은 발표가 나오자 한국이 곧 무너질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돼 달러는 더 빠른 속도로 한국 땅을 빠져나갔다.

한국은행은 외환보유액을 끝까지 공개하지 않았다. 미국 재무부 관리들은 그 녀석들(these guys)이 아직까지 부정하고 있다며 비속어를 써가며 불쾌해 했다. 2)

로런스 서머스(Lawrence Summers) 미국 재무부 부장관은 11월 한국을 방문해 보유외환의 실상을 정확히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지의 보도에 따르면 서머스 부장관이 돌아간 뒤인 1127일 빌 클린턴 대통령은 한국 외환위기의 심각성을 전해 듣고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이 외국인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선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1) WSJ, 971128, Korean Merchant Bank Woes May Spread

2) NYT, 971118, South Korea ends its attempts to defend its curr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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