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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평론가 글로서먼, 저서에서 “구조적·문화적 제약으로 아베 정부에서 정점 지나”
일본의 정점이 지나갔다는 피크재팬론
2023. 04. 02 by 박차영 기자

 

일본은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 나라로 표현된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수천년 동안에 일본은 우리에게 파트너였고 동시에 침략자였다. 지정학적으로 일본열도는 한반도를 활처럼 막아 세워 대륙의 중국과 함께 때론 동맹이고 때론 위협의 대상이었다.

세계사에서 볼 때 일본은 19세기 제국주의 시기에 독립을 유지한 두 개의 아시아 국가 중 하나였고, 2차 패전국 가운데 불사조처럼 일어나 기적을 보인 나라이기도 하다. 그런 일본이 1990년대초 동서냉전의 종식과 함께 기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일본의 잃어버린 1020년으로 연장되더니, 30년이 되었다.

책표지 /네이버책
책표지 /네이버책

 

브래드 글로서먼(Brad Glosserman)의 저서 피크 재팬’(Peak Japan)은 무기력해진 일본이 다시 일어설수 있을 것인지를 진단했다. 글로서먼은 일본경제의 거품이 붕괴하기 시작한 1991년에 일본에 건너가 27년간 살다시피한 미국의 언론인이자, 연구원이다. 201941일 그가 이 책을 쓸 때엔 코로나 팬데믹도 없었고, 아베 신조가 살아있을 때였다. 일본은 두 번째 치르는 도쿄 올림픽의 꿈에 젖어 있었다. 그 시점에 글로서먼은 아베 정부의 시기에 일본 국력이 최정점에 달하고, 구조적·태도적 제약이 결합해 일본이 현재와 미래의 도전에 적응할 능력이 한계에 달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본이 정점(peak)을 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후 4년이 지난 지금, 세계적인 전염병이 닥쳐왔고 그로 인해 도쿄올림픽은 1년 연기되고 무관중으로 진행되었다. 아베 총리는 20209월 퇴임하면서 9년을 재임한 최장수 총리의 영광을 안았으나, 20227월 피격되었다. 새로운 사실이 글로서먼의 일본정점론을 더 강화시켜준다. 글로서먼은 한국어 번역판(2020) 서문에 “(이 책이) 발간되고 난 이후에 일어난 사건들을 보면 희망을 갖기에 근거가 너무 빈약하다고 했다.

저자는 일본이 21세기 초에 직면한 네가지 쇼크를 진단했다. 네가지 쇼크는 2008년 미국 경제위기의 여파로 인한 리먼 쇼크, 2009년 장기집권하던 자민당 정권이 붕괴하고 민주당이 집권한 이후의 정치쇼크, 2010년 일본의 외교적 딜레마를 보여준 센카쿠 쇼크, 2011년 안전불감증과 위기대응능력의 한계를 드러낸 동일본대지진 쇼크로 구분했다. 이런 네가지 쇼크를 거친 이후 2012년 아베 신조의 제2차 집권이 시작된다.

 

리먼 쇼크는 일본경제의 정체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을 강건너 불구경 하듯이 바라보던 일본은 다른 나라들보다 더 큰 피해를 보았다. 엔화가치가 급등하며 수출이 크게 위축되었고, GDP 성장률이 급락했다. 2009년 일본경제는 6.3% 역성장했는데 이는 OECD 국가 중 최악이었다. 위기발생지였던 미국은 2년만에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는데, 일본 경제는 3년이 지나도록 원상태로 회복하지 못했다. 그 원인은 구조개혁의 지연에 있다고 글로서먼은 보았다. 일본은 경제에 구조개혁을 추구하지 않았다. 외부의 충격에 취약한데도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 체력을 보강하길 꺼려 했다. 정치와 사회, 문화에 내재해 있는 위험회피주의, 공동체주의가 개혁을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일본 버블 이후 니케이지수 추이 /위키피디아
일본 버블 이후 니케이지수 추이 /위키피디아

 

20097월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함으로써 1955년 이래 54년째 이어온 자민당 독주를 무너뜨렸다. 하지만 민주당은 무능했고, 국민들의 열망을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민주당은 경험과 수권 능력의 부족을 여실히 드러냈다. 동일본대지진 대응에 실패했고, 중국과의 센카쿠 분쟁에서 무기력했다. 민주당은 오히려 자민당보다 더 심한 파벌싸움을 보임으로써 국민들을 좌절시켰고, 그후 아베 정권 출범과 자민당 독주를 공고하게 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민주당 집권 시절에 자민당 정권에서 숨겨져 있던 관료주의 실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민주당 각료들은 전문성이 없었고, 관료들은 민주당 내각에서 소외되었다. 관료들은 민주당 정권에 호응하지 않았다. 관료들은 내심으로 우리들은 지도자가 필요 없다. 일본 정치는 구식이고 막후영향력은 관료들이 주도한다. 국회는 관료의 역할을 승인하는 정치적 장치일 뿐이다.”고 생각했다. 이른바 재포크라시(Japocracy)라는 전형적인 일본 관료시스템 앞에 민주당은 무기력했다. 민주당 정권은 재포크라시를 끊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따라가기 급급했다.

결국엔 가라오케 민주주의에 속박되었다. 가사를 다 외지 못해도, 리듬을 잘 맞추지 못해도 가라오케의 반주에 맞추어 애창곡 한소절을 뽐낼수 있는 정치구조를 관료들이 만들어 냈다. 민주당은 일본을 개혁하기보다는 기다리면 기회가 올 것이라고 미적거리다가 자민당에게 권력을 돌려주고 몰락하게 되었다.

 

민주당 정권은 미국 중심의 외교를 벗어나 일본 독자의 외교를 보이려고 했다. 그동안 자민당 정권은 요시다독트린을 충실히 이행해 왔다. 이는 전후 요시다 시게루 총리가 전쟁 포기를 선언하면서 경제 부흥에 주력하기로 한 전략이었다. 외교에도 안미경중(安美經中), 즉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란 개념을 적용했다. 이 모든 것이 중국과의 센카쿠 분쟁으로 헝클어졌다. 아시아의 리더이자 맏형이라고 자부하던 일본은 중국의 강력한 견제를 받게 되었고, 미국에 목소리를 내겠다던 민주당 정권은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계획을 철회해야 했다. 일본이 더 이상 아시아의 리더가 아니라는 현실 인식은 아베 정권의 평화헌법 개정 시도로 나타나게 된다.

 

2011년 3월 11일 대지진 후 쓰나미로 잠긴 일본 동북지역 해안 /위키피디아
2011년 3월 11일 대지진 후 쓰나미로 잠긴 일본 동북지역 해안 /위키피디아

 

2011311일 동일본대지진은 삼중재난이었다. 규모 9.3의 지진이 충격을 주었고, 그후 쓰나미가 태평양 연안을 덮쳐 2만명 이상의 인명을 앗아갔다. 쓰나미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를 휩쓸어 최악의 원전 사고가 일어났다.

동일본대지진은 천재지변을 넘어 인재였다. 과거 일본을 성공하게 해 주었던 요인들이 이날의 실패를 초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사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도쿄전력은 정부와 소통하기를 등한시했으며, “책임지기를 꺼리는태도를 보였다. 보고서는 도쿄전력의 정신상태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원자력 규제당국은 원자력 업계와 떨어져 독자적으로 행동할수 있을 정도로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 규제기관이 규제 대상에 포획되어 버렸다. 조사보고서는 규제기관의 독립성을 엉터리라고 비난했다. 조사위원회는 후쿠시마 재난의 근본적 원인은 우리의 반사적인 순종, 권위에 대해 질문하기를 망설이는 태도, 기존 프로그램에 집착하는 헌신, 집단주의, 그리고 편협성 등 일본 문화의 뿌리에 깊은 인습에 그 뿌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관료들은 그들의 최우선 임무인 공공의 안전보호보다 조직의 이익을 앞세웠다고도 했다.

겐시라쿠무라라(原子力村)라는 이익 집단에 대한 비난도 고조되었다. 정부와 전력회사, 원자력 전공 전문가 등으로 이뤄진 원전마피아들은 경제성장에 맞추어 원전 확장에 열을 올렸고, 안전은 게을리했다. 이들의 최우선 목표는 서방세계를 따라잡고 추월하기 위해 원자력에너지를 증진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일본경제의 성장신화는 아무도 이들을 꾸짖지 않았다. 이들의 무사안일이 후쿠시마 사태를 빚었다는 것이다. 사회학자 요시미 순야는 원전사고가 인재로 전후 경제성장이 만들어낸 생황의 산물이라고 했다. 동일본대지진은 이런 선택이 현명했는지에 일본인들이 의구심을 표명했고,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의 강한 불신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네가지 쇼크를 거치면서 민주당 정권은 3년의 집권을 마치고 아베 신조가 이끄는 자민당이 201212월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 보무당당하게 다시 집권을 하게 되었다. 아베 정권은 아베노믹스라 불리는 성장정책을 추구했다. 아베노믹스의 세가지 축(화살)통화확장 정책을 통해 디플레이션을 종식시키고, 재정확장 정책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구조개혁을 단행한다는 것이었다. 아베노믹스는 외관상 가시적인 성과를 보였다. 돈을 풀어 성장률을 높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세가지 화살 가운데 가장 어려운 구조개혁에는 미온적이었다.

 

저자 글로서만은 2차 아베정권 6년차이던 2018년에 이 책을 썼다. 저자는 아베 총리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옥죄고 있는 구조적인 한계로 일어서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자는 아베의 네 번째 화살로 2020 도쿄올림픽을 꼽았다. 그 올림픽도 예상했던 효과를 내지 못했다.

이 책의 영문판 부제는 위대한 자부심의 종식”(The End of Great Ambitions)이다. 글로서만은 일본인들의 꿈이 오그라들었다고 했다.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대기업이나 정부에서 근무하는데 만족한다. 소확행(小確幸), 즉 일상에서 느낄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가능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에 그들은 만족하고 있다.

글로서만은 책을 쓰는 시점(2018)일본이 정점을 찍은 시점이라고 했다. 아베 정부는 전통적인 강대국주의자가 마지막으로 애를 쓰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아베가 물러난후에도 스가 요시히데, 기시다 후미오의 두 내각이 들어섰다. 일본이 어떻게 변화할지를 지켜보는데 글로서만의 진단은 상당히 유용한 것 같다. 아울러 글로서만의 진단 가운데 우리나라에 대입해도 옳은 대목이 상당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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