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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기아자동차 부실로 한국경제 치명적…삼미, 진로, 우성건설등 줄줄이 도산위기
[IMF 위기의 경고④] 부실의 재벌 과잉설비투자
2019. 07. 13 by 김현민 기자

 

1997년 한보에 이어 삼미, 진로, 우성건설등 재벌 기업이 줄줄이 쓰러지자 급기야 한국에서 멕시코 페소화 폭락과 같은 외환 위기의 가능성이 제기됐다. 한국 경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상태에 놓여 있었다.

대기업의 연쇄 부도가 터지던 10975월 비즈니스 위크는 한국에 멕시코 위기의 가능성을 예고했다. 1)

재벌기업의 해외 부채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재벌 기업과 은행들이 국내 또는 해외 법인을 통해 빌려온 외채(96년말)1,046억 달러로 (2년 사이에) 78.4%나 늘어났다. 이는 GDP22%에 해당하는 것으로, 절반 이상이 만기 1년 미만의 단기 외채다. 만일 해외 채권은행들의 사정이 심상치 않을 경우 한국 재벌 기업들은 심각한 부채 상환 압력을 받을 것이다. 현재 원화의 점진적인 절하는 대외부채의 상환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막대한 외채를 갚으려면 수출을 늘리는 길밖에 없다. 그런데 1997년 상반기 수출 실적도 둔화됐다. 일본 엔화가 미국 달러화에 비해 급격히 절하되는 바람에 국제 경쟁력이 상실됐고, 반도체 가격이 폭락하는 바람에 수출도 정체됐다. 19951006,100만 달러였던 무역수지 적자폭은 1996년에 2062,400만 달러로 두배 이상 늘어났고, 외환위기 직전인 19979월까지 무역적자 누계는 1038,500억 달러에 이르렀다.

기아자동차의 몰락은 한보 사태보다 한국경제에 더 치명적이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한국 경제를 해부하기 시작했다. 72일 태국 바트화가 폭락, 아시아 위기가 발발했으나, 이때가지만 해도 국제 시장에서 바트화 붕괴의 도미노가 한국으로까지 옮겨 붙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기아 사태는 한국 재벌의 욕심과 한국 금융시스템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삼성 그룹의 자동차 사업 진출을 비롯, 한국 자동차 업계의 과잉 설비에 대한 국제적 비판이 노골적으로 제기됐다. 당시의 몇가지 미국 언론 보도를 꺼내보자.

경제전문 잡지 포천지의 분석이다.

혹자는 이를 그림의 떡이라고 비유하곤 한다. 최소한 130억 달러짜리 도박이다. 그것은 바로 선박(ship)에서 반도체칩(chip)에 이르기까지 사업 다각화를 추진한 삼성 그룹이 세계적으로 공급과잉 상태인 자동차 산업에 얼마를 투자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2)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렇게 평가했다.

“(한국 자동차산업) 과잉 설비는 한국내에서도 희생자를 만들고 있다. 기아자동차가 채권 은행들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았고, 기아는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동차를 헐값에 처분하고 있다. 그런데도 삼성과 경쟁회사들은 세계적인 설비 과잉상태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한국의 5개 자동차 메이커들은 5년 내에 지금보다 60% 늘어난 연간 600만대의 생산능력을 보유하려고 덤벼들고 있다. 내수시장의 규모가 지난해 120만대에 불과점을 감안하면 한국 자동차 설비확장은 한국인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3)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 /기아자동차 홈페이지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 /기아자동차 홈페이지

 

재벌 기업들의 자동차 증설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자, 미국과 일본의 견제도 심했다.

미국자동차공업협회(AAMA)의 앤드류 카드(Andrew Card) 회장은 한국의 증설 경쟁에 대해 전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오쿠다 히로시 사장은 한국 자동차 산업은 너무 빠르게 성장하고, 너무 많이 투자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4)

미국과 일본의 경쟁사들은 자동차 생산 공장이 더 건설되면 국제적인 가격하락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미국의 컨설팅 업체인 쿠퍼스 앤드 라이브랜드(Coopers & Lybrand)의 분석에 의하면 전세계 자동차 생산 능력은 연간 7,000만 대로 수요를 32% 초과하고 있으며, 2002년에는 생산 능력이 7,900만 대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한국 재벌들은 이런 경고에 조금도 들은 척 하지 않았다. 기아는 부패한 수하르토 대통령의 아들과 손잡고 인도네시아 국민차 생산에 참여했고, 대우는 50억 달러를 투자, 우즈베키스탄과 인도, 폴란드에 해외공장을 건설했다. 현대도 인도, 터키, 인도네시아에 현지공장 건설 계획을 밀어부쳤다.

결국 한국 자동차업체들 간의 치열한 생존 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기아가 무너지고, 쌍용자동차가 49%의 지분을 해외에 매각하겠다고 나오는 비극이 발생했다. 그런데 자동차 업계의 과열 경쟁은 경쟁력이 약한 회사의 몰락에 그쳐야 하는데도 불구, 돈을 빌려준 은행들이 죽어나갔다.

 

정부는 은행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합병 및 인수(M&A)를 활성화하는등 개혁 입법을 추진했다. 건실 은행이 부실 은행을 인수케 함으로써 은행 파산에 따른 사회 경제적 위험을 최소화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갈수록 늘어나는 부실 여신을 국고로 어떻게 처리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선 아무런 방도를 찾지 못했다. 한국은행법 개정을 둘러싸고 재경원과 한은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뿐, 외국인 투자자들의 눈에는 은행의 부실덩어리를 해결하려는 진정한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8월초 미국의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이렇게 정리했다. 5)

한국 정부가 은행의 부실 여신을 해결하는데 개입한다면 그 금액은 1,0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다. 이는 97년도 GDP2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미국 행정부는 80년대에 저축대부조합(S&L)의 부실을 정리하는데 1,300억 달러를 소모했다. 이는 90년도 미국 GDP2.4%에 해당한다.”

 

한보, 삼미, 기아등 대기업의 연쇄 도산으로 은행의 부실이 풍선처럼 부풀어 갔다. 그 결과 8개 주요 시중은행의 부실 여신 규모는 30% 이상 늘어나 8월 현재 129,000억원(144억 달러)에 이르렀다. 6)

미국의 S&P8월초 한국의 국가 신인도를 안정적(stable)에서 부정적(negative)로 전환하고,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제일은행등 5개 은행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했다.

비즈니스 위크의 분석을 보자. 7)

한국 관리들은 이제 기업 위기의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금융 부분의 붕괴 가능성이다. 한국의 은행들은 12월말까지 180억 달러에 이르는 무용지물의 채권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이 숫자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재벌들의 연쇄 파산은 주요 시중은행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있다. 올해만 시중은행들이 전체 여신의 10%에 해당하는 246억 달러를 5대 재벌에게 퍼부었다. 막대한 채권이 회수되지 않는다면 한국 은행들은 자본금이 완전 잠식당하게 될 것이다. 위기는 기업과 금융부문의 극적인 구조조정을 통해서 달성될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이 너무 나쁘고, 변화에 대한 저항이 너무 강하다. 현재 제시된 개혁은 충분하지 않다.”

 

태국에서 발원한 아시아 위기의 태풍은 점차 북상, 10월초 중국의 관문인 홍콩을 강타했다. 침몰직전의 한국호는 남쪽에서 불어오는 금융위기의 태풍을 비껴나갈 도리가 없었다. 미국과 일본 은행들은 한국의 은행 부실을 눈여겨 보다가 마침내 한국에 대한 대출을 전면 중단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아시아 금융위기는 대만에도 닥쳤으나, 대만은 외환보유고가 든든하고 금융 시스템이 보수적이었기 때문에 비껴갔다. 필리핀도 IMF 관리를 받으면서 건실한 금융 질서를 강화하고 있었기에 견뎌 냈다. 세계 11대 경제 대국이라고 자부하던 한국은 안에서 곪아터지는 바람에 외풍에 여지 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1) 비즈니스위크, 199755A Mexico-like morass in South Korea

2) Fortune, 1997512Behind Samsung's high-stakes push into cars

3) WSJ, 1997825A world-wide glut doesn't sway Samsung from auto business

4) 상동

5) WSJ, 1997815Korea's bank take a turn for the worse

6) 상동

7) 비즈니스위크, 199784Quaking in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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