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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과 결혼해 태자 낳았지만, 사랑하는 이화랑과 재혼한 여성
화랑세기속 인물들③…사랑 찾아 떠난 숙명공주
2019. 07. 15 by 김현민 기자

 

위작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에 숙명공주(叔明公主)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숙명공주의 어머니는 신라 24대 진흥왕의 어머니이기도 한 지소(只召)태후다. 숙명과 진흥왕은 어머니는 같고, 아버지가 다른 형제다.

지소태후는 법흥왕의 동생인 입종(立宗) 갈문왕과 결혼해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진흥왕이다. 입종이 죽은후 지소태후는 영실공(英失公)이라는 귀족과 결혼해 황화공주를 낳았다. 영실과 헤어진후 지소태후는 김씨 귀족으로 당대의 대장군이었던 이사부(異斯夫)와 결혼해 숙명공주와 세종(世宗)을 낳는다. 따라서 숙명은 진흥왕에게 이부(異父) 누이인 셈이다.

 

신라시대는 철저히 골품제도에 의해 운영된 계급사회였다. 성골은 성골끼리 결혼해 성골 자녀를 낳아 왕위를 이어나갔다.

진흥왕은 사도(思道)황후라는 본부인이 있었다. 진흥왕과 사도부인 사이에 동륜(銅輪)이라는 왕자가 태어났다.

그런데 진흥왕의 어머니 지소태후는 아들 진흥왕에게 숙명과 결혼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성골끼리 결혼해 성골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진흥왕은 숙명이 어머니가 같은(同母) 누이이므로 사랑할수 없다고 거부했지만, 어머니와 새 아버지(繼父) 이사부의 위엄에 눌려 마지못해 숙명과 잠자리를 했고 숙명을 황후로 봉했다.

숙명은 진흥왕과 결혼해 아들 정숙(貞肅)을 낳는다. 숙명은 이사부와 지소태후의 권력을 등에 업고 아들 정숙을 태자로 옹립하는데 성공했다. 이에 진흥왕 본부인인 사도황후가 시기질투심에 빠져 숙명을 견제하게 되었다.

숙명이 진흥왕과의 사이에서 아들까지 낳았다는 얘기는 <삼국사기>에 없는 내용이다.

 

숙명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진흥왕도 숙명의 콧대를 꺾지 못했다고 한다. <화랑세기>4세 풍월주 이화랑(二花郞) 조에서 숙명의 태도를 자세히 설명한다.

지소태후가 매우 사랑했다. 황화, 숙명, 송화공주가 모두 공(이화랑)을 따라 배웠다. (이화랑)은 이에 숙명궁주와 정을 통했다.

그 때 태후는 (숙명이) 진흥제의 총애를 홀로 받게 하고자, 모든 일을 숙명공주에게 받들게 했는데, 왕은 어머니가 같은 누이’(胞妹)라고 하여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다. 공주 또한 그러했다. 공주의 아버지는 곧 태종공(이사부)인데, 그때 상상(上相, 재상)으로서 나라를 위한 가장 중요한 신하였다. 그래서 왕은 공주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숙명)공주는 총애를 믿고 스스로 방탕했다. 태자를 낳고 황후로 봉해지자 더욱 꺼림이 없었다. 왕은 평소에 사도(思道)황후를 사랑하여 그 아들 동륜을 태자로 삼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KBS 드라마 ‘화랑’에 숙명공주 역 /KBS 캡쳐
KBS 드라마 ‘화랑’에 숙명공주 역 /KBS 캡쳐

 

그런데 숙명은 부모의 권유에 진흥왕과 결혼했지만, 마음은 4대 풍월주인 이화랑(二花郞)에게 가 있었다.

숙명에게 위기가 닥쳐왔다. 바람을 핀 것이다. 숙명은 오빠이지 남편인 진흥왕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진흥을 떠나 이화랑에게 접근한다.

<화랑세기>는 이렇게 전한다.

숙명은 공(이화랑)과 더불어 정을 통함이 더욱 심해졌고, 여러번 왕에게 들켰다. 왕이 (숙명황후)를 폐하려 하자, (지소)태후가 울면서 간하여 이룰수 없었다. 왕이 숙명을 사랑하지 않았는데, 숙명은 스스로 임신했다. 이에 공(이화랑)과 더불어 도망쳤다. 군신들이 태자가 왕의 아들이 아니라고 의심을 했다. 이에 (사도황후의 아들인) 동륜을 태자로 삼았다.”

 

바람 핀 사실이 들통나자 숙명은 이화랑과 함께 도망쳤고, 이로 인해 숙명이 진흥왕에게서 낳은 정숙은 혈통을 의심받아 태자에서 폐출되고 숙명도 폐비가 되었다. 사도황후는 이를 계기로 아들 동륜을 태자로 옹립할 수 있게 되었다. 사도왕후는 차라리 숙명과 이화랑이 결혼하도록 권유하면서 남편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도록 했다.

사도황후의 아들 동륜이 아버지의 총애를 받으면서도 태자 자리에 오르는데 시간이 걸렸던 것도 숙명 때문이었다. 아니, 진흥왕은 최고권력자 상상(上相)의 자리에 올라 있는 이사부의 영향력을 밀어내고 사도황후의 아들 동륜을 후계자로 내세우기 어려웠을 것이다.

숙명이 이화랑과 바람을 피우자, 신료들이 숙명이 낳은 태자의 아버지를 의심하게 되었고, 이사부도 외손주의 태자자리를 더 이상 주장할수 없었다.

이에 진흥왕이 본처 사도부인에게서 낳은 동륜이 태자가 되는데, 동륜은 결국 왕위에 오르지 못한다. <삼국사기>는 진흥왕 33(572)왕태자 동륜이 죽었다다고 적었다. 1)

이에 대해 <화랑세기>에는 태자 동륜이 개에게 물려죽어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고 서술했다. 진흥왕의 대를 이은 진지왕(眞智王)은 사도부인의 둘째 아들이다.

 

숙명은 결국 남편인 진흥왕의 허락을 받아 이화랑과 결혼한다. 숙명의 연적인 사도의 권유가 있었다고는 하나, 집안의 평화를 원하는 어머니 지소의 입김으로 진흥왕이 숙명의 외도를 승낙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숙명은 이화랑과 재혼해 원광(圓光)과 보리를 낳았다. 원광은 신라 불교를 반석에 올린 사람이며, 이사부는 원광에게 외할아버지가 된다. 보리는 12세 풍월주가 됐다.

숙명은 어머니 지소태후와 비슷한 길을 걷는다. 지소는 입종갈문왕과 진흥왕을 낳은후 사별하고 영실을 거쳐 최고 권력자 이사부와 결혼했다. 숙명도 진흥왕과 결혼해 아들을 낳았지만, 사랑을 찾아 당대 사내 중의 사내 이화랑과 다시 결혼한다.

숙명은 말년에 남편 이화랑을 따라 영흥사(永興寺)로 들어가 불도에 힘쓰며 살았다고 한다.

2016~2017년에 방영된 KBS 드라마 화랑에서 배우 서예지가 숙명공주 역할을 맡았다.

 

숙명의 남동생은 세종이다. 세종은 이사부의 아들이기도 하거니와, 지소태후를 중심으로 볼 때 왕가의 혈통이었다. <화랑세기>는 정비(正妃)가 아닌 후궁 소생이거나 정비가 정식 남편이 왕 아닌 다른 남자와 낳은 왕자에 대해 전군(殿君)’이라는 표현을 썼다. 따라서 세종은 전군으로 왕자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다.

 


1)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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