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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역사를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의 세단계로 분류
하라리의 사피엔스①… 잘 짜깁기된 거대담론
2023. 05. 28 by 박차영 기자

 

유발 하라리의 저서 사피엔스’(Sapiens)을 읽으면 흥미진진하다. 두터운 책은 인류의 전 과정을 생물학적, 역사적으로 해석하며 거대담론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인류역사를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의 세단계로 나누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20여만년전에 탄생했을 때만 해도 다른 동물에 비해 우월적인 지위는 아니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사피엔스는 7만년전에 인지혁명을 거치면서 협동을 하게 되어 다른 동물보다 우위에 서게 되었고, 12천년전에 농업혁명을 이루면서 약진을 하게 된다. 1500년대 과학혁명을 통해 인류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를 열었고, 동식물과 지구환경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유발 하라리가 펼치는 인류의 굵직한 히스토리를 읽다보면 감동을 느낀다. 아하, 그랬구나, 하며 무릎을 친다. 덕분에 이 책은 65개국에 변역되어 출간되고, 2,300만부 이상 팔려 글로벌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출판사 김영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 책은 국내에서도 20231월 기준으로 200쇄 인쇄에 115만부 판매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감탄은 일반독자에게서나 나오는 것에 불과하다. 세계적인 고고학자나 미래학자들이 보기엔 이 책은 짜깁기를 잘한 책에 불과하며, 유발 하라리가 자신의 생각을 전제로 여러 팩트를 조합한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책은 하라리가 이스라엘 대학에서 강의하던 내용을 정리해 2011년에 히브리어로 출간해, 2014년에 영문으로 출간되어 폭발적 인기를 었었다. 이스라엘에서 이 책이 출간되던해, 하라리의 나이는 35세였다. 사계의 노장들이 볼 때엔 이 책엔 새로운 사실은 없고, 일부는 확인되지 않는 내용을 기정사실화했다고 비난한다. 따라서 책은 대단히 논란을 불러일으킨 책이다.

이 책의 전반부 내용을 정리한다.

책 표지 /출판사
책 표지 /출판사

 

1. 인지혁명

호모 사피엔스는 허구를 창조하고, 이를 통해 연대의식을 형성했다. 원숭이에게 천국의 바나나를 얘기하면 코웃음칠 터이지만 인간의 조상들은 에덴동산의 과일이라는 허구애 의해 결속력을 강화했다.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선사시대의 사피엔스는 주변환경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동물이었다. 맹수에 비해 힘이 약했고 먹이사슬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중간쯤 되었다. 사피엔스는 식물을 채취해 먹이감으로 삼았으며, 대형 포식자들의 사냥감이 되었다.

하지만 사피엔스가 먹이사슬의 꼭대기로 올라간 것은 집단적 결속력이고, 그 결속력의 원동력은 허구에 대한 공유였다. 사피엔스는 허구 덕분에 집단적으로 상상할수 있게 되었다. 성경의 창세기, 호주 원주민의 드림타임(dream time)과 같은 공동의 신화를 창조해 냈고, 그 신화들 덕분에 사피엔스는 많은 숫자가 모여 유연하게 협력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인간이 무리를 지어 협력하는 임계치는 150명이라는 연구가 있다. 사피엔스는 이 숫자를 넘는 수십만명의 도시, 수억명의 국가를 제국을 형성할수 있었다. 그 원동력은 바로 허구의 등장에 있었다고 유발 하라리는 지적했다.

서로 다른 인간이 공동의 신화에 뿌리를 두고 집단적 상황 속에서 공동체 의식을 형성했다. 현대의 국가, 중세의 교회, 고대도시, 원시 부족 모두 집단적 신화라는 허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교회는 종교적 신화를 토대로 사람을 모았다. 서로 모르는 사람이라도 카톨릭 신자라는 이유로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다. 국가도 공동의 신화를 기반으로 한다. 서로 만난 적이 없는 사람도 같은 국민이란 이유로 동질감을 얻는다.

사피엔스는 허구를 통해 대집단을 형성했고 그 힘을 바탕으로 맹수를 제압하고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 또 사피엔스와 다른 네안데르타르인 등을 제압할수 있었다.

허구는 픽션이다. 그 픽션은 생각하는 힘, 즉 인지 혁명에서 나왔다. 사피엔스는 인지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동물과 달리 현실이 아닌 허구를 창조했고, 그 허구를 바탕으로 대집단을 형성하고 주변환경을 제압하게 된 것이다.

 

2. 농업혁명

사피엔스는 대략 12,000년전부터 동물과 식물의 삶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농업과 목축업이 시작된 것이다. 인류가 농업을 시작한 것은 BC 9500~8500년경 터키 남동부, 서부 이란, 에게해 동부지방에서였다. 밀을 재배하고 염소를 가축화한 것은 BC 9000년경이었고, 완두콩과 렌즈콩은 BC 8000년경, 올리브나무는 BC 5000, 포도는 BC 3500, 밀은 BC 4000년경에 재배하기 시작했다. 낙타와 캐슈넛과 같은 동식물은 더 나중에 길러졌다.

농업은 한 지점에서 시작해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간 게 아니라, 세계 여러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생겨났다. 중동에서 밀과 완두콩을 재배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중미 사람들은 옥수수와 콩을 작물화했다.

중동과 중국, 중미에서 농업이 일어났지만, 호주, 알래스카, 남아프리카에서는 농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곳의 식물과 동물이 작물화 또는 가축화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이 잡거내 채취한 수천종의 동식물 가운데 농업과 목축업에 활용한 후보는 몇 되지 않았다.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수 있는 식량의 총량은 확대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분의 식량이 더 나은 식사와 여유시간을 제공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지배자들을 낳았다. 농부는 수렵채집인보다 더 많이 일했으며, 더 열악한 식사를 해야 했다. 농업혁명이 인류를 발전시켰다는 일부 고고학자들의 해석은 사기에 불과하다.

인류가 밀과 쌀, 감자를 지배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 식물이 오히려 호모 사피엔스를 길들였다. 밀은 1만년 전에 수많은 잡초 중 하나였고, 중동의 일부 지역에서만 자라던 풀이었다. 그런데 몇천년이 지나면서, 농업화가 진행되면서 밀은 지구역사상 가장 성공한 식물이 되었다. 밀을 키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밀은 많은 노동력을 요구했고, 바위와 자갈이 없는 밭에서 잘 자랐다. 농부는 해충과 토끼등을 밀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했다. 밀 밭에 물을 끌어다 댔다. 인간이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다. 밀이 인간을 길들였댜.

밀 경작은 단위 면적당 식량생산을 크게 늘렸고, 이에 사피엔스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이스라엘의 여리고 인근의 인구가 수렵채집 시기에 고작 100명이던 것이 BC 8000경엔 1,000명으로 팽창했다. 인구가 증가할수록 인류는 더 열악하나 환경에서 살게 되었다.

농업이 시작되면서 정착촌이 생겨났다. 레반트 지역엔 BC 12500~9500년 경에 나투프 문화가 번성했다. 그들은 곡물을 저장했고, 수확을 위해 돌 낫과 사발 등을 발명했다. 정착촌은 식량을 저장하기 위해 창고가 생겼고, 도둑과 적을 방어하기 위해 성벽을 쌓고 보초를 세웠다. 사람들은 과거 좋았던 시절로 돌아갈수 없었다. 인구는 이미 늘어나 있었다.

 

유발 하라리 /위키피디아
유발 하라리 /위키피디아

 

사람들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허구를 생산했고, 그 허구는 종교로 발전했다. 사원이 생겨났다. 사람들은 집을 지어 그 안에 살게 되었다. 내집에 대한 집착이 생겨났다.

수렵채집 시대에 사피엔스는 그날그날 먹고살기에 급급했다. 미래는 없었다. 농경사회가 되면서 파종과 수확의 시기를 알게 되고, 내일을 생각하고 미래가 중요해 졌다.

지배계급이 생겨났다. 지배계급은 농부가 생산한 잉여식량으로 먹고 살면서 농부에겐 겨우 연명할 것만 남겨 주었다. 엘리트들이 빼앗은 잉여식량은 정치, 전쟁, 예술, 철학의 원동력이 되었다. 왕궁, 성채, 기념물, 사원들이 세워졌다. 잉여생산은 지배계급을 먹여살렸다. 그들은 왕, 정부관료, 병사, 사제, 예술가, 사색가들을 구성했다.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이들 엘리트의 이야기다. 농부가 땅을 갈고 물을 대는 동안에 소수 지배자들이 역사를 움직여 온 것이다.

공동체가 만들어낸 상상의 질서는 언제나 붕괴의 위험을 안고 있다. 그것은 신화에 기반하고, 신화는 사람들의 신분질서에 의해 유지되었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폭력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군대, 경찰, 법원, 감옥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강제하는 수단이다. 질서는 폭력만으로 유지되기 힘들다. 진정으로 신화를 믿는 신도가 있어야 한다. 군대와 경찰의 지휘관은 신화의 신봉자여야 한다. 신이든, 명예든, 조국이든, 돈이든, 뭔가 진심으로 신봉하는 자들이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이 된다. 사회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상상의 질서를 신봉하는 사람들이다.

인간 집단이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데이터의 양도 많아졌다. 인간의 두뇌로는 그 많은 정보를 암기하기 어려워졌다. 문제를 처음 극복한 것은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살던 고대 수메르인이었다. 수메르인들은 쓰기라는 데이터 처리시스템을 개발했다. 쓰기는 기호를 통해 정보를 저장하는 방법이다. 수메르인들은 점토판에 두 종류의 기호를 새겼다. 그 하나는 숫자였다. 그들은 10, 60, 600, 3600, 36,000을 나타내는 기호를 만들어 냈다. 6진법과 10진법의 혼합이다. 수메르인의 6진법은 하루 24시간, 360°의 분할 형태로 오늘날까지 활용되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 문자를 가질 필요성을 느꼈다. 수메르인들은 오늘날 쐐기문자라고 불리는 문자를 발명했다. BC 2500년이 되면서 왕이 포고령을 내릴 때, 사제들이 신탁을 기록할 때, 시민들이 편지를 쓸 때 문자를 사용했다. 비슷한 시기에 이집트인들도 상형문자를 사용했고, 중국에서는 BC 1200년경에, 중미에서는 BC 1000~500년 경에 문자가 발달했다.

문자체계의 발달과 함께 세금체계와 관료제도가 쌍둥이처럼 연결되어 자리잡아 나갔다. 인간사회가 대규모의 조직망을 구축한 것은 상상의 질서를 창조하고, 문자체계를 고안해 냈기 때문이다.

농업혁명 이후 인간사회는 오랫동안 남성 우위의 가부장적 사회를 유지해 왔다. 그 배경은 여러 가지로 분석되지만, 어느 하나도 뚜렷한 근거가 없다. 하지만 거의 모든 문화가 여성보다 남성이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첫째 주장은 남자가 여자보다 더 힘이 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견해는 남자보다 강한 여자가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 둘째 주장은 남성의 공격성이 여성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전쟁이 남자의 특권이었던 것이 이 때문이다. 전쟁에서 남자가 군대를 통제했기 때문에 남자가 사회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세 번째 견해는 여성은 임신을 하고 아이를 가져야 하므로 의존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코끼리나 보노보의 사회에서는 모권 중심의 사회가 나타난다. 이 주장도 근거가 없다. 유발 하라리는 가부장제가 생물학적 사실보다 근거가 없는 신화들에 기반을 둔 것이라면, 이 제도가 이토록 보편적이고 안정적으로 유지된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다. (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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