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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해외투자가들, 한국 정부 발표 불신…상시적으로 해외투자설명회 열었어야
[1997 신용강등③] 국가IR이란 개념도 몰랐다
2019. 07. 16 by 김현민 기자

 

1997년말에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이 갑자기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무더기로 떨어뜨리고, 해외투자자들이 한국에서 대탈주극을 벌일 때, 한국 정부나 금융기관들은 국가 IR’이란 개념조차 몰랐다.

국가 IR(Sovereign Investor Relations)이란, 정부가 해외투자가들을 불러놓고 거시경제를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국제시장을 상대로 국가IR에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1994년 흑인 지도자 넬슨 만델라가 선거에서 이긴 직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자본이 대거 빠져나가 버렸다. 그러자 만델라 정부는 과거 백인 정부와 새 정부의 재무장관, 상공장관, 중앙은행 총재등이 함께 뉴욕등 미국 5개 도시를 돌며 투자설명회를 가졌다. 그들은 현재 처해 있는 경제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호소했다.

그 결과 월가의 투자자들이 새로 탄생한 아프리카 흑인 정권을 지지했고, 외국 투자자들이 몰려들었다.

 

뉴욕 월가는 미국 증권시장만의 역할을 하는 게 아니다. 세계 각국의 정보가 이곳으로 집약되고, 여기서 걸러진 정보와 투자방향이 세계 자본의 이동을 결정한다. 뉴욕 금융시장에서 잘못 평가되면 그 나라에 유입된 외국인 자본이 대거 빠져나가 금융공황에 빠지게 되고, 그곳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 외국인들이 돈 보따리를 들고 들어온다. 따라서 세계의 각국 정부 지도자들은 늘 월가를 찾아 자국 정부의 정책을 홍보하고, 펀드매니저들의 관심사항을 정확하게 대답하려고 애를 쓴다.

1995년 멕시코 페소화가 폭락하고, 그 여파가 중남미로 번져나가자, 아르헨티나의 도밍고 카발로 재무장관은 즉시 뉴욕으로 날아왔다. 그는 월가 투자자들을 만나서 멕시코 위기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들었고, 아르헨티나는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그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었다. 그 결과, 아르헨티나는 멕시코 사태로 인한 테킬라 효과를 비켜갈 수 있었고, 오늘날까지 무난히 경제를 운영하는 나라로 손꼽히고 있다.

 

한국이 IMF 경제위기를 겪기 이전에 다른 신흥경제국가들은 국가 IR행사를 자주 열어 왔다. 한국보다 해외시장의 동향에 먼저 눈을 뜬 것이다.

각국의 정부 지도자들은 세계 금융중심지를 돌면서 그 나라의 경제상황, 계획, 투자방향을 설명하고, 외국인 투자가를 유치하게 된다. 기업이 주식을 시장에 공개하거나 필요한 자금을 자본시장에서 직접 조달하려고 할 때 사용하는 IR의 개념을 국가 단위로 확대한 개념이다.

국가 IR은 한국이 외환위기를 격기 2년전 멕시코 페소 위기와 그후 동남아 통화 위기를 겪으면서 그 중요성을 더해갔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 정부는 해외시장에 가서 IR을 해야겠다고 생각않았고, 그 개념조차 몰랐다.

월가를 중심으로 한 세계 금융시장의 투자자들은 자신의 주장을 하지 않는다. 다만 투자환경을 판단할 뿐이다. 멕시코와 동남아에서 그들은 국가를 위태롭게 하기 위해 돈을 회수한 것은 아니다. 단지 그 나라에 투자했다간 손해를 볼 것 같으니 돈을 빼냈던 것이다.

 

미국의 기업들은 수시로 투자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월가에 제공한다. 디트로이트에 있는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빅스리와 캘리포니아 실리콘 밸리에 있는 인텔이 뉴욕 맨해튼에 큰 사무실을 두고 수시로 월가를 들락거리는 것은 끊임없이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그들의 움직임을 체크하기 위한 것이다.

아시아 금융위기를 신흥국 정부들은 선진국 기업들이 하는 것처럼 월가에 정확한 거시경제 정보를 제공하고, 투자자들을 설득할 필요성을 깨달게 되었다. 세계 금융시장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가, 그렇지 않는가 여부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달라진다는 것을 뒤늦게 인식했다. 앞서 예로든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나, 아르헨티나의 경우는 성공한 케이스였다.

 

그러나 멕시코와 태국은 실패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1995년 멕시코 사태가 난후 월가 분석가들의 반응은 간단했다. 멕시코 정부가 정확하게 재정통계, 외환수급 상황을 발표했더라면 투자자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 패닉(공황) 현상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1997년 여름 태국 바트화 폭락 때도 똑같은 평가가 나왔다.

위기를 한번 겪은 멕시코는 그후 국가 IR을 잘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월가의 투자자들을 위해 경제관련 정보를 즉시 최신의 것으로 수정할뿐 아니라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와 외환보유액에 관한 내용도 매주 발표했다. 한번 혼이 났기 때문에 과거를 거울삼아 국가 IR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이다.

 

2017년 1월 1월 11일 뉴욕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한국경제설명회(IR)에서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투자자와 이코노미스트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2017년 1월 1월 11일 뉴욕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한국경제설명회(IR)에서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투자자와 이코노미스트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문제는 한국이었다. 199711월 블룸버그 등 미국의 언론들이 한국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도하자, 한국 정부는 외국언론이 한국을 비방 왜곡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외국언론들이 한국 외환보유액에 대해 강한 의심을 품어도 월가에 와서 설명하는 정부나 은행 관계자가 거의 없었다. 굳이 있었다면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후 한국은행 총재가 뉴욕에 다녀갔을 뿐이다.

IMF 이전의 한국 경제 관료들은 국제시장은 물론 국가 IR이라는 개념을 거의 모르다시피 했다.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직후인 1123일 이경식 한은 총재가 뉴욕과 워싱턴을 방문했다.

그때 이 총재는 한국 경제 위기는 최악의 상태가 거의 끝났다고 말했다.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단기외채 만기가 임박해 한국이 곧 모라토리엄을 선언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젖어있는 와중에 국제시장에 처음 나온 한국 은행 총재의 발언은 극히 초보적이었다.

그는 한국이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금액이 200억 달러는 너무 적고, 600억 달러는 너무 많다고 말했다. 국제 시장에서는 600억 달러가 정설로 돌고 있는데, 그는 그나마 체면치레에 급급했던 것이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등 미국의 유력 언론이 한국 시장이 얼어붙었다, 한국 경제 위기고 보도할 때 한국 정부 관리들은 펀더멘털이 좋다며 대수롭게 넘겨버렸다. 그러나 미국의 투자자들은 미국언론을 믿지, 한국 정부의 발표를 믿지 않았다. 결국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각국의 자본이 한국 시장에서 빠져나가고 한국은행이 원화 방어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게덜릭 퍼거슨이라는 미국 컨설팅 업체의 로렌스 윌슨 부사장은 당시에 이렇게 충고했다.

한국 정부는 국가 홍보에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정부와 기업이 더 이상 정보를 감추는 시대는 지났다. 정보를 감추는 것은 나쁜 전략이다. 한국 정부도 기업들처럼 IR 프로그램에 접근해야 한다. 수시로 외국 자본가들에게 한국 경제에 대한 내용을 솔직하게 공개하고 이해를 구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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