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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한국 관료와 충돌, ‘정체성의 위기’ 거론…강경식에 대해 서운한 추억
[1997 국가부도①] 캉드시, 한국에 오다
2019. 07. 17 by 김현민 기자

 

1997년말, 한국 경제가 휘청거리자 미국은 한국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미국의 주된 관심은 애당초부터 한국을 도와주자는 게 아니었다. 미국은 한국경제가 붕괴되면, 그 여파가 일본, 중국에 미치고, 그렇게 되면 7년째 지속되고 있는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에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을 걱정했다.

199511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미국은 한국 경제동향에 바짝 긴장했다. 이 무렵 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장관은 미쓰주카 히로시 일본 대장상에게 사신(private letter)을 보내 한국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한 일본의 협조를 구했다. 1)

미국 재무부는 한국 원화 급락이 일본 엔화 하락을 부채질하고, 엔화 하락은 미국의 무역 적자를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공공연히 밝혔다. 미국 관리들은 아시아에 대형 기차탈선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을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취리히 보험의 데이비드 헤일(David Hale)씨 같은 투자분석가는 엔화가 추가 하락하면 19961,920억 달러였던 미국 무역적자가 1999년엔 2,500~3,000억 달러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으로선 무역적자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일본은행들이 1990년대 이후 버블 경제가 꺼지면서 막대한 부실 여신에 시달리고 있고, 한국경제마저 무너지면 일본도 안전지대가 아니다는 것이 미국의 시각이었다.

따라서 구체적인 전문을 확인할 수 없지만, 미국 언론을 통해 유출된 내용을 정리하면 미국 재무부는 일본과 공동으로 한국 지원 패키지를 추진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의 관측통들은 한국 경제 위기에서 미국 재무부가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진단하고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취리히 보험의 헤일씨는 미국이 아마 한국 지원 패키지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며 그 이유는 한국이 일본 정부가 중심역할을 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36년간의 식민지 통치를 받았기 때문에 일본의 경제적 지배를 싫어했다. 물론 미국의 지배도 싫어할 것이지만, 벼랑 끝에 설 때에는 미국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미국인들은 간파했다.

미국 재무부는 한국을 내려다보며 곧 무너질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을 때 한국 정부와 관변 경제학자들은 태연했다. 솔직히 말하면 무식했다.

당시 뉴욕타임스의 보도다.  2)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파국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 무너지면 전세계에 파급될 것이다. 한국 경제는 태국의 2.5배나 크고, 외국 은행에서 빌린 돈도 태국보다 많다. 한국은 37,000명의 미군이 주둔할 만큼 안보상의 문제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 은행들이 한국을 더욱 불안해하고 있다. 외국 은행들의 불안이 연쇄적으로 확산되면서 한국은 붕괴 직전에 있고, 그렇게되면 일본도 불안하다.”

 

강경식 부총리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3)

한국은 한국이고, 태국은 태국이다. 한국 경제는 태국이나 다른 동남아 국가보다 훨씬 건강하다.”

한국 정부는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좋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 이유로 첫째, 태국과 달리 한국의 부동산 거품은 진정돼 있고, 둘째 태국등 동남아 국가들이 고정환율제를 취하다가 무너졌지만 한국은 변동환율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1996년에 원화를 8% 절하했고, 1997년에도 15%나 절하했지 않느냐는 것이다.

루빈 장관의 사신이 일본에 도착할 무렵인 1112일 자존심 강한 한국 재정경제원은 외부의 지원이 필요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거품은 부동산에 있질 않고, 금융기관과 재벌기업들의 막대한 해외채무에 있었다. 금융기관의 해외 부채도 대부분 재벌에게 돌아간 것이므로 결국 재벌의 해외채무에 버블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변동환율제의 명목으로 채택하고 있는 하루 2.25%의 금리변동폭(밴드)도 급속히 빠져나가는 외국 자본의 엑소더스 앞에서는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미셸 캉드시 IMF 총재(1987~2000 재임) /유튜브 캡쳐
미셸 캉드시 IMF 총재(1987~2000 재임) /유튜브 캡쳐

 

국제 외환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원화 방어를 위해 200억 달러의 보유외환을 풀었고, 100억 달러밖에 남지 않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1116일 미셸 캉드시(Michel Camdessus) IMF 총재와 허버트 나이스(Hubert Neiss) 아시아 태평양 담당국장이 비밀리에 한국을 방문했다. 그들이 한국을 방문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국제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해 원화가 폭락하고, 외화 자금 회수속도가 빨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국제 투기자들에겐 IMF 간부들의 동정과 언행이 중요한 투기 정보가 된다.

그들은 서울 교외의 조용한 호텔을 방을 구했다.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호텔에 한국 사람 이름으로 적어놓고 식사도 방에서 시켜 먹었다.

강경식 부총리와 이경식 한은 총재가 이들을 만나러 왔다. 캉드시와 나이스의 메시지는 간단했다. “한국 금융상태가 붕괴되고 있다. IMF가 개입해야 할 때다.”

캉드시 총재는 월스트리트 저널에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4)

그들은 우리의 제안에 당신 미쳤소, 한국 경제는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경제 위기가 진행되는 사이에 정체성의 위기(identity crisis)에 빠져있었다.”

정체성의 위기란 자기의 실체에 의심을 가진다는 뜻의 심리학적 용어다. 한국 관리들이 오랫동안 경제 위기에 빠져 있다보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강경식 당시 부총리는 월스트리트 저널지에 해명기사를 통해 캉드시의 해명이 와전됐다고 밝혔다. 5)

캉드시는 IMF 지원을 사전 협의하기 위해 한국정부가 초청으로 온 것이다. 한국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초청)하도록 했다. 그날 회의는 처음부터 잘 진행됐다. 나와 캉드시 사이에 의견대립은 없었다. 캉드시 총재는 나에게 정체성의 위기를 언급했는데, 그것은 나와의 만남에서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내 후임인 임창렬 부총리가 취임 직후 기자회견에서 나와 캉드시 사이의 합의를 부정했을 때 다분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어느 정부라도 IMF 패키지를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멕시코나 다른 동남아시아의 경우를 볼 때 IMF는 금융위기에 처해 있는 나라에 단순히 부족한 돈을 지원해주는 것이 아니다. IMF는 돈을 빌려주는 대신에 금리를 올려라, 경제 성장은 둔화시켜라, 기업이 근로자를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들어라, 정부 예산을 줄여라는등 이것저것 간섭을 한다. 정부의 거시 경제 운영은 IMF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캉드시는 한국이 주제도 모르고 IMF 처방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고 불쾌한 회고를 간직했지만, 강경식씨는 월스트리트 저널 반박문에서 이미 그때 원칙적인 합의(understanding)가 이뤄졌다고 기억했다. 6)

어쨌든 IMF 관리들은 처음에 한국의 이질적인 문화로 심한 충돌을 빚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곧 한국 관리들은 IMF에 협조적이 됐고, 협상에 응해왔다는 것이다.

 


1) NYT, 971116. Rubin warns Japan it must bolster limp economy

2) NYT, 971110. Troubled economy stirs fear in South Korea

3) 상동

4) WSJ, 9832, Bitter Medicine

5) WSJ, 98327. What did not happened at IMF-Korea meeting

6) NYT, 971118, South Korea ends its attempts to defend its curr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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