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A
동유럽에 옛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몰도바(Moldova)라는 나라의 동쪽에 드네스트르강(River Dniester)이 흐른다. 이 강의 동쪽에 트란스니스트리아(Transnistria)라는 길쭉한 나라가 몰도바에서 독립을 선언해 러시아의 군사적 보호를 받고 있다.
독립한 시기도 비슷한다. 몰도바는 1991년 8월 25일에 옛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고, 드네스트르강 동쪽의 러시아인들은 곧이어 11월 5일 트란스니스트리아 몰도바 공화국(PMR)의 성립을 선언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드네스트르강 건너편’이란 뜻인데, 이 나라의 공식명칭은 ‘트란스니스트리아 몰도바 공화국’이다. 국기에 옛 소련을 상징하는 ‘낫과 망치’가 그려져 있고, 블라디미르 레닌의 동상도 있다. 옛 소련시절의 향수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나라다.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면적은 4,163㎢로, 전라북도 면적의 절반쯤 되고, 인구는 2018년 기준 47만명 정도이다. 수도는 티라스폴(Tiraspol)이다. 몰도바는 면적 3만3,846㎢(트란스니스트리아 포함)로 대한민국의 3분의1 정도이며 인구 335만명이다.
이 나라가 몰도바로부터 딴 살림을 차린 것은 몰도바와 인종이 다르기 때문이다. 몰도바인은 이웃 루마니아와 같은 인종이고, 루마니어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에 비해 트란스니스트리아에는 몰도바인(루마니아인)이 32%에 불과하고, 러시아인 30%, 우크라이나인 28.8%로 러시아계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러시아어가 공용어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1861년 왈라키아 공국과 몰다비아 공국이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에서 벗어나 합병해 루마니아 왕국을 수립해 하나의 나라를 이루었다. 그때 루마니아 왕국과 러시아제국의 경계가 드네스트르강이었다. 하지만 2차 대전 이후 독일에 붙었던 루마니아를 약화시키기 위해 소련은 몰도바를 떼내어 공화국 지위를 주어 소비에트연방에 편입시켰다. 그때 드네스트르강 동쪽 땅(트란스니스트리아)을 몰도바에 붙여 주었다.
1980년대말부터 소련에 각 민족이 독립을 요구할 때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러시아계가 몰도바에서 분리독립하기로 결심했고, 러시아가 뒷배를 보아주었다. 러시아는 몰도바가 언젠가 루마니아와 합병할 것이라고 보고,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분리주의자를 부추겨 일단 독립시킨 것이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독립 후에 비몰도바인이 몰도바어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했고, 수도 티라스폴과 벤데르에서 몰도바의 국기를 내거는 것을 거부했다. 그들은 소련 각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로 몰도바인보다 경제적으로 성공했다. 분리 이전에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몰도바 GDP의 40%, 전력의 90%을 공급하는 중요한 곳이었다.
전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1992년 3월부터 몰도바의 선제공격으로 트란스니스트리아와 전쟁을 치렀다. 이 전쟁은 그해 7월, 1,500여명의 사망자를 내고 러시아의 중재로 끝났다. 이후 몰도바는 트란스니스트리아에 광범위한 자치권을 부여하겠다는 제안을 했지만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이를 거부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를 국가로 인정하는 나라는 같은 처지에 있는 미승인국 압하지야, 남오세티아, 아르차흐 공화국 뿐이다. 러시아마저 인정하지 않는다. 러시아는 몰도바와의 관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러시아는 다만 평화유지군이라는 이름으로 양측 국경에 군대를 보내고 있지만, 사실상 트란스니스트리아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트란스니스트리아 인구의 대다수인 30만~40만명이 아직도 몰도바 여권을 가지고 있다. 트란스니스트리아 정부가 발행하는 여권을 인정하는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도 트란스니스트리아 사람들에게 약 8만개의 여권을 발행해 러시아화를 유도하고 잇다.
트란스니스트리아와 몰도바 사이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국경 문제가 있다. 드네스트르 강 동쪽에 있는 두바사리(Dubăsari) 구역의 9개 마을은 트란스니스트리아 전쟁 때 주민들이 몰도바에 합세하면서 몰도바의 통제 하로 들어와 있다. 역으로 드네스트르 강 서쪽의 벤데르와 바르니차(Varniţa), 코판카(Copanca)와 더불 등의 마을들은 트란스니스트라아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영토 분쟁으로 2005년, 2006년, 2007년에 몰도바와 트란스니스트리아 군이 대치했으나 사상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