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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협상 중에, 메이저 은행에 매일 전화 걸어 “한국을 도와주라” 압박
[1997 국가부도⑩] 루빈의 외채협상 개입
2019. 07. 26 by 김현민 기자

 

19981월 뉴욕에서 열린 한국외채협상에서 JP 모건이 제시한 안건은 한국의 경제위기를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는 음모였다. 이 음모는 시티은행과 체이스맨해튼은행와 같은 상업은행과 골드만 삭스와 살로만 스미스바니 등의 경쟁 투자은행에 의해 좌절됐다.

이후 한국 외채협상의 주도권은 JP 모건에서 시티은행으로 넘어갔다.

한국도 미국 은행간 갈등을 이용, 독자안을 만들어나갔다. 한국 정부는 JP 모건의 경쟁 투자은행인 골드만 삭스와 살로먼 스미스바니사를 자문회사로 위촉했다. 이들 두 투자회사는 한국 정부의 외채 협상을 측면 지원했다.

골드만 삭스는 미국 금융가에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을 배출한 회사다. 루빈이 재무장관을 맡은 후 골드만 삭스와 공식적 관계는 없지만, 월가의 다른 은행들이 골드만 삭스의 주도권을 은근히 시기하고 있었다. 살로만 스미스 바니는 미국 최대 금융그룹인 트래블러스 그룹의 투자회사였다. 골드만 삭스사에서는 로버트 호매츠(Robert Hormats) 부회장, 살로먼 브러더스에서는 제프리 샤퍼(Jeffrey Shafer) 부회장이 한국을 드나들며, 경제 개혁과 외채협상에 많은 것을 지도했다. 여기에다 뉴욕 연준 총재를 지낸 제럴드 코리건(E Gerald Corrigan)씨가 한국 정부의 고문역을 무료로 맡았다.

 

한국과 채권 은행단의 본격적인 외채협상은 1998121일 시티은행 본사에서 시작됐다. 한국 정부는 1998년중 만기가 돌아오는 금융기관의 단기외채(당시 250억 달러로 추산)의 만기를 1~3년간 연장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협상에 앞서 유럽계 은행, 특히 독일 은행들이 이런 주장을 했고, 한국은 이 점에 포커스를 맞추었던 것 같다. 정덕구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보는 정부가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해 독자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협상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됐다. 채권은행단은 한국측 제안을 선선이 받아들였다.

주도권을 잡으려고 치열하게 싸우던 채권은행들이 왜 한국에 유리한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을까. 이 의문의 해답은 간단하다. 협상의 배후에 미국 재무부가 미국은행을 강력하게 콘트롤했기 때문이다.

 

백악관에서 이미 만기를 연장해주기로 한만큼 한국측 제안은 쉽게 받아들여졌다. 한국을 도와준다는 대원칙이 백악관에서 결정됐기 때문에 협상은 금리를 어떻게 하느냐, 어느 금융상품을 범위에 포함시키느냐 하는 사소한 문제만 남았기 때문이었다.

크리스마스 전날 월가 은행들의 팔을 틀어(arm-twisting) 한국 단기외채의 만기를 연장시켰던 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장관은 외채협상에서도 또다시 은행장들의 팔을 비틀었다. 욕심을 내지 말고 한국을 도와주라는 것이었다. 당시 외채협상에 참여했던 한국측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협상이 진행되고 있을 때 루빈 장관이 매일 저녁 4시가 되면 은행장들을 전화로 불러 컨퍼런스 콜(conference call)을 열었습니다. 시티, 체이스맨해튼, JP 모건은행의 회장들이 루빈의 지시를 받다시피 했지요. 월가 은행들도 루빈 말이라면 꼼짝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협상은 속전속결로 진행돼 양측은 29일 한국의 단기외채 만기를 1~3년 연장하되, 1년 만기의 경우 국제금리(LIBOR)에 대해 2.25%, 2년 만기는 2.5%, 3년 만기는 2.75%의 가산금리를 얹어주기로 합의했다.

1998313일 외채 만기연장 신청을 최종 마감한 결과 31개국 123개사 채권은행들이 총 2137,400만 달러의 단기외채중 중장기로 전환시켜주겠다고 통보해 만기연장율이 94.8%에 달했다.

 

채권은행들로서도 가산금리 1% 미만으로 빌려준 돈의 이자를 더 얹어 받았고, 떼먹힐 돈을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엄청난 이익을 보았다.

한국으로선 뉴욕 외채협상을 계기로 외환 위기의 급한 불을 끄고 국제 사회에 대외신용도를 높이는 계기를 마련했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를 남겨 놓았다.

금융기관의 단기외채만 만기가 연장됐을 뿐 신규자금(뉴머니)이 한국에 유입된 것은 한푼도 없고, 400억 달러에 이르는 재벌기업들의 단기외채도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었다.

협상을 마친 후 정덕구 당시 차관보는 재벌 기업의 단기 외채는 정부가 지급보증하지 않을 것이며, 이는 재벌 스스로가 알아서 해결할 문제라고 못 박았다. 월가 은행들은 이번에 롤오버(rollover, 만기연장)해준 자금이 한국 재벌에 흘러들어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기업의 단기외채는 3월말에 대부분 만기가 돌아올 예정이었다. 당시 국제 시장의 한국 프리미엄을 감안할 때 한국 기업들은 5~6%의 높은 가산금리를 물고 만기를 연장해야 했다. 그나마 신용도가 약한 기업들은 외국은행들로부터 만기 연장도 못받고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렸다.

 

1998년 2월 타임 매거진 커버스토리. 앨런 그린스펀 Fed 의장, 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 로런스 서머스 재무차관, 세명이 세계경제를 살렸다는 내용이다. /타임지
1998년 2월 타임 매거진 커버스토리. 앨런 그린스펀 Fed 의장, 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 로런스 서머스 재무차관, 세명이 세계경제를 살렸다는 내용이다. /타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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