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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스탈린 민족정체에 의해 설립…시나고그 등 유대문화 많이 남아
극동러시아에 실패한 유태인 자치주
2019. 07. 27 by 이인호 기자

 

러시아 극동 지방에 유대인 자치주가 있다. 하지만 이 주에 유태인들의 인구가 전체의 1%에 불과하다. 이름과 달리 실패한 유태인 자치주다.

면적은 36,000, 경상남북도를 합친 정도이며, 중국 대만섬 크기에 해당한다. 그래도 이스라엘 면적(2770)에 비해 1.5배나 넓다. 인구는 2018년 현재 162,000여명이며, 자치주의 수도는 비로비잔(Birobidzhan)이다.

러시아의 이 유대인자치주는 19485월 중동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을 건국하기 14년전인 193457일에 수립되었다.

위치로 보면 한국과 거리가 가깝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뷱쪽, 아무르강에 접해 있는 곳에 있다.

 

유대인 자치주 영역 /위키피디아
유대인 자치주 영역 /위키피디아

 

이 자치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 의해 만들어 졌다. 스탈린은 시베리아 지역에 젖과 꿀이 흐르는 유대인의 땅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 곳은 젖과 꿀이 흐르지 않았다. 대체로 늪지대로 이루어져 있고, 혹독한 자연조건과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오랫동안 몽골족 또는 여진족의 땅이었다. 가장 힘없는 부족이 험지로 쫓겨나 살던 그 곳에 유대인의 나라를 만들어준다고 했으니, 그들은 속은 것이다.

전체 면적의 1/3을 차지하는 서부의 산악지형과 남동부의 저지대로 구분된다. 대륙성기후이며, 기온은 1월 평균 -24이고 7월 평균 +20. 시베리아의 혹한을 이겨내야 하는 곳이다.

이 곳은 19세기까지 청나라 영토였다가 1858년 아이훈 조약으로 러시아령이 되었다. 이 일대는 제정 러시아에 의해 개척되었으며 러시아 정예 기병집단인 코사크가 국경을 지키기 위해여 파견된 곳이기도 했다.

이 지역은 1640년대 포야르코프, 하바로프 등 러시아 극동 개척자들에 의해 개발되기 시작했다. 시베리아철도가 건설되면서 19세기 중엽 카자크인 건설노동자들이 이 지역으로 이민을 왔다. 철도가 깔린후 새로운 이주민들을 필요로 하게 되었는데, 19283월 소비에트 정권은 이 지역에 유대인 노동자 정착촌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유대인 자치주 위치 /위키피디아
유대인 자치주 위치 /위키피디아

 

이오시프 스탈린은 반유대주의자였다. 그는 시베리아 구석에 유대인들을 몰아넣으려고 했다. 그는 1934년에 그 곳을 유대인 자치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유대인 상징 메노라 /위키피디아
유대인 상징 메노라 /위키피디아

 

앞서 러시아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은 유대인 자치지역을 만들 새로운 터전을 찾았다. 그들은 우크라이나 또는 크림반도에 새로운 터전을 만들 것을 고려했지만, 해당 지역의 비유대인 토착민의 반감을 사는 것을 우려해 그들의 꿈은 무산되었다.

이후 스탈린이 시베리아에 자치주를 만들어 주겠다기에 이주하기 시작했다.

1928년에 첫 유대인 공동체가 이주했다. 스탈린은 이곳으로 이주할 유대인에게 지원을 했고, 심지어 유대인 마을 상공에서 삐라를 뿌려 유대인 자치주로 이주하라고 홍보도 했다. 주로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쪽의 유대인들이 왔으며 소련 밖에서도 이곳에 정착하는 유대인도 있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풍습을 마음껏 지킬 것이라는 기대에 찼다.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기를 기대했지만 막상 이주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혹독한 기후가 주된 이유였다.

그들이 혹한과 슾지의 땅에서 그들이 정착해 낼수 있었던 것은 이 지역에 거주하던 고려인 덕분이었다고 한다. 초기 유대인 이주자들은 고려인들에게서 척박한 기후와 농업 환경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배웠다. 지금도 러시아에서 가장 품질 좋은 벌꿀이 이 지역에서 나온다고 한다.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시베리아에 이주해온 유대인들은 갖은 고생을 다했지만, 러시아 유럽지역에 살던 유대인들과 달리 죽음은 면하는 행운을 얻었다. 살던 곳에 그대로 있었으면 15년 후에 불어닥친 독소전쟁에 휘말렸을 터였다. 하지만 이주민들은 독일군 점령지에서 고난을 피할수 있었다.

1961년 흐루쇼프는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 살던 유대인들을 이 곳으로 강제이주시켜, 이 지역에서 30만 명의 유대인 인구를 확보하려 하였으나, 실행하지 못했다.

구소련은 끝내 유대인 구역을 자치주로 승격시키지 않았다. 이 지역은 구 소련이 붕괴된 해인 1991년에야 하바로프주로부터 독립해 자치주로 승격됐다.

 

이주초기인 1939년 인구센서스에서 17,695명의 유대인(지역 인구의 16%)이 살고 있었다.

유대인자치주 기 /위키피디아
유대인자치주 기 /위키피디아

 

이 지역의 유대인 인구는 1948년에 3만명으로 인구의 25%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스탈린 사후에 이 인구는 감소하기 시작한다. 유대인 정통국가인 이스라엘의 건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유대인 자치주의 주민들이 뿌리를 찾아 이스라엘로 이주하였고 결국 이 지역의 유대인 인구는 급감한다.

이 지역에서 유대인들은 그들의 전통을 지키며 살아갔고 그들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들은 주로 아무르제트, 스비노비치 등에 거주했으며 그 전통의 흔적은 지역 이곳저곳에 남아있다. 각종 간판이 러시아어와 이디시어(동유럽 유대언어)로 병기되어 있고, 역 앞에 유대인들의 상징인 메노라가 있다. 유대인 회당인 시나고그도 존재한다.

1930년대에는 이디시어 신문인 비로비자너 슈테른이 만들어져 지금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1980년에는 이디시어 학교가 세워졌다. 또 이 지역에서는 유대인들의 전통문화에 대한 갖가지를 배울 수 있도록 주정부가 지원하고 있다.

아무르 강 너머로 중국 헤이룽장성이 이웃해 있기 때문에 중국인들의 왕래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주도인 비로비잔에서 중국어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2010년 기준으로 인구는 176558명이다. 2010년 인구조사에서 가장 큰 민족집단은 러시아인으로 92.7%(16185)이며, 그 다음으로 우크라이나인이 2.8%(4,871)를 차지한다. 유대인은 1%(1628)이다.

2012년 조사에 따르면 자치주 인구의 22.6%가 러시아 정교 신자이며, 6%가 러시아정교 외의 기타 정교 신자이다. 9%가 기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유대교 신자는 인구의 0.2%이다.

2016년 알렉산드르 레빈탈 유대인 자치주 지사는 '반유대주의 시달리는 유럽 유대인들을 수용할 준비'가 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디시어로는 이디셰 아브토노메 게근트라고도 하며 러시아어로는 예브레이스카야 아브토놈니 오블라스치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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