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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고금리→기업도산 확대→실업자양산→경기후퇴의 악순환…美 경제학자들 비판으로 후퇴
[외환위기 그후④] 고금리의 역풍
2019. 07. 30 by 김현민 기자

 

IMF의 처방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경제학자들이 먼저 문제를 제기했다. 하버드대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 교수, MIT의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교수, 마틴 펠드스타인(Martin Feldstein) 교수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학자들은 자신의 이론 틀에서 IMF 처방을 비판했기 때문에 일치된 견해를 갖지 못했다.

제프리 삭스는 오랫동안 IMF 비판자였다. 그는 IMF 처방 고금리와 재정 긴축 조치에 문제를 제기했다.

아시아 국가들에 재정 긴축을 요구하는 것은 경기 후퇴와 정치적 불안정을 유발할 뿐이다. 한국은 재벌이 과중한 부채를 안고 있고, 은행들이 기업에 많은 대출을 주었기 때문에 고금리를 적용하면 가장 심각하게 타격받을 것이다.”

폴 크루그먼은 환율 안정을 위해 고금리를 인정했지만, 재정긴축에 대해서는 반대했다. 크루그먼은 한국이 긴축 재정을 사용할 경우 수십만명의 실업자를 양산해 경기를 후퇴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마틴 펠드 스타인 교수는 한국의 고금리가 기업의 부채 상환부담을 가중시켜 연쇄부도를 발생시키고, 대량의 실업, 경기 후퇴를 유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자들이 IMF를 공격하기 시작하자, 세계은행(IBRD) 부총재인 조셉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IMF를 공격했다. 세계은행은 IMF의 자매기관이다. 그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초기에 경제 비서관으로 근무한 학자 출신이다. 스티글리츠의 반발은 내부 반란에 가까운 것으로 IMF가 심각한 곤경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스티글리츠는 아시아의 위기를 신용의 위기(confidence crisis)라고 규정하며, 제프리 삭스와 마찬가지로 아시아에 고금리와 긴축 재정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반박했다. “아시아 국가들이 심각한 침체에 빠지기를 아무도 원치 않는다. 그렇다면 위기의 원인을 주시해야지, 대처하기 어려운 주문을 해서는 안된다.”

스티글리츠는 IMF와 밀실에서 논쟁을 벌이지 않고 공개적으로 떠들어댔다. IMF 관리들은 두 기관 간에 원칙적 이견은 없다고 담담해 하면서도 세계은행과 거시 분석에 대한 면밀한 협의를 거쳐 의견 차이를 해소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사실 IMF1980년대 중남미 국가에 요구했던 것보다 강한 톤으로 고금리와 재정 긴축 정책을 아시아에 요구했다. 1980년대 남미국가들은 엄청난 재정 적자와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IMF는 긴축 재정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시아 국가, 특히 한국은 균형 예산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IMF는 긴축 재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아시아의 상황은 더욱 악화돼 나갔고, IMF 비판자들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 졌다.

뉴욕 월가에서도 IMF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모건 스탠리의 이머징마켓 담당인 바튼 빅스(Barton Biggs) 회장은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를 통해 “IMF는 아시아 경제를 악화시키는 쪽으로 가고 있는 프로그램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IMF와 그 뒤에 있는 미국 재무부는 고금리는 유쾌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존재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재정 긴축에 대해서는 다소 후퇴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데이비드 립튼(David Lipton) 미국 재무부 차관은 고금리는 자본 이탈을 막고 해외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필요하다면서 “IMF 프로그램이 수요를 감축시키는 재정 긴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재정 긴축에 대해 탄력적 입장으로 돌아선 것이다.

 

그래픽=김현민
그래픽=김현민

 

고금리 옹호론자들은 통화 방어의지를 보여 주기 위해 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스웨덴도 금리를 투기자들을 겁주기 위해 잠시나마 700%나 인상한 적이 있었다. 스탠리 피셔 IMF 부총재는 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해야 하지만 곧 내려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피셔는 아시아의 통화 하락은 IMF 때문에 발생한 게 아니다“IMF가 없었다면 아시아 상황은 더 악화됐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IMF 처방에 대한 국제적 논란과 동시에 국제 시장을 떠돌아 다니는 단기자본을 규제하자는 여론도 찬반 양론으로 나뉘었다.

단기 자본은 은행의 단기 대출, 핫머니, 단기 채권등을 모두 포함한다. 한국은 단기 자본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면서 환란을 겪었다. 단기자본을 규제하는 문제에 대해 IMF의 스탠리 피셔 부총재, 세계은행의 조셉 스티글리츠 부총재가 한 목소리를 냈다.

19982월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 포럼에서 피셔 부총재는 사견임을 전제로 단기자본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IMF는 국경을 넘나드는 단기자본의 급류를 인식하고 있다. 이를 제재하는 방안으로 칠레의 방식을 선택해볼 필요가 있다.”

 

칠레를 장악한 피노체트 장군은 1980년대말 시장 경제 원리를 도입하면서 동시에 철저한 자본통제(capital control)를 실시했다. 칠레의 자본통제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칠레에 들어오는 외국 자본은 1년동안 빠져 나가지 못 하도록 규제했다. 둘째 외국인들은 직접 투자금액의 30%를 이자 없이 칠레 은행에 예치하도록 의무화했다.

피셔 부총재는 이런 칠레의 자본 통제방식을 단기자본 억제책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피셔는 나아가 IMF의 자금을 얻어 쓰고 있는 나라가 자본 통제를 할 경우 이를 용인하겠다고 시사했다. “IMF(아시아 국가들이) 외국의 단기 자본 거래가 정상화될 때까지 임시적으로 자본 통제를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스티글리츠 총재도 맞장구쳤다. 그의 제안은 보다 구체적이었다. 스티글리츠는 단기 자본의 융통을 억제하기 위해 만기가 1년이 넘는 대출에 대해 세금을 깎아주는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아시아 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체계상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대적 조치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국제 투기자본의 대부로 알려진 미국 퀀텀 펀드의 조지 소로스(George Soros)도 단기 자본의 투기성을 비난했다는 점이다. 소로스는 세계 경제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국제시장의 자본 이동을 통제할 수단이 없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러나 미국 재무부는 단기 자본 규제에 떨떠름한 입장이다. 시장 자유를 외치는 대부분의 경제학자들도 자본 규제에 대해 찬성을 하지 않았다. 로렌스 서머스(Lawrence Summers)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단기자본 규제 문제는 신중히 다뤄야 문제라며 반대입장을 밝혔다. “(자본통제를 담당할) 적절한 국제 기구가 없고, 금융시스템이 불안전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자본을 통제할 경우 경제 구조조정을 저해하고 지연시킬 우려가 있다.”

 

IMF의 고금리, 재정 긴축정책을 강한 톤으로 비판했던 제프리 삭스 교수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반대했다. “국제 여신 구조는 매우 복잡해졌기 때문에 이를 억제해서 바라는 결과를 얻는다고 해도 비현실적인 오만을 확대시킬 가능성이 있다. 자본은 돌을 지나서 길을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인즉, 자본 통제를 하는 국가에는 국제 유동성 자금이 흘러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자금 왜곡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1998년 여름 칠레가 경상수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자본통제를 일부 완화하면서 확인됐다.

어쨌든 세계적인 석학과 IMF 및 세계은행, 미국 재무부 관리들이 아시아 위기를 처방하는 과정에서 IMF 자체의 문제와 국제 자본 흐름의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결론이 나지 않았고, IMF는 자신의 처방을 계속 강요했다. 미국도 IMF를 측면에서 지원했고, 때론 전면에서 이끌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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