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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원화가치 하락, 주가하락으로 기업 가치 폭락…전세계 벌쳐캐피털, 입질
[외환위기 그후⑦] 팔려 가는 한국 기업
2019. 08. 02 by 김현민 기자

 

경제의 현장은 밀림과 같다. 경쟁에서 밀려 쓰러지면 먹힐 수밖에 없다. 한국에는 금융위기라는 대형 산불이 났다. 수천개의 기업이 퍽퍽 쓰러졌고, 재벌기업들도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주가는 폭락하고, 달러 값은 비싸졌으니, 미국의 투기자본들에겐 한국 기업이 거져 먹기나 다름없다.

미국은 독수리(vulture)를 상징으로 삼고 있다. 벌쳐 캐피털(vulture capital)이라는 월가의 투기자본가들이 아시아 상공을 빙빙 돌며 먹이감을 찾아 다녔다. 먹이감은 널려 있었다. 특히 한국과 같이 산업시설이 뛰어나고 기술력이 우수한 나라에는 토실토실한 먹이감이 잘 구워져 먹기 좋은 상태로 월가의 독수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199712월 미국이 한국 구제 결정을 한국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자 한국 경제는 회생 기미를 보였다. 그러자 미국과 유럽 자본들은 한국 산업 쇼핑관광(industrial shopping tour)에 나서 서울의 호텔을 메웠다.

그해 1227일 뉴욕타임스는 한국 기업들이 외국 바이어가 먹기에 알맞게 익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1)

국제적인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자존심이 깎인 한국은 이번에 또다시 국민적 자존심 상하는 일을 당하고 있다. 그것은 미국을 비롯, 외국 자본에 의해 (한국) 기업이 인수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식시장과 통화가 수직 낙하했기 때문에 한국 기업들은 외국 기업의 잠재적 매매 대상이 되고 있다. IMF도 외국인에 대해 시장 개방을 하라고 한국에 압력을 넣고 있다.”

이미 외국 기업들은 IMF 이전부터 한국 기업들을 먹어 들어갔다. 극심한 자금난에 빠진 재벌 기업들은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조차 자금 조달을 할 수 없었고, 계열사를 매각해서 빚을 갚아야 했다. 한라그룹은 한라제지의 지분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보워터(Bowater)사에게 매각하기로 하고 협상을 벌였다. 한화 그룹은 정유부문을 네덜란드의 로열 더치/(Royal Dutch/Shell) 그룹에 매각하고, 화학 부문의 지분 25%를 합작사였던 독일 바스프(BASP)사에게 넘겨주는 방안을 협의했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바닥이 언제인지 모를 일이었다. 기업 사냥꾼들에겐 주가가 바닥일 때 사는 것이 상식이다. 먼저 자산을 매각한 한국 회사는 그나마 이익이었다. 두산그룹은 IMF 직전인 11월에 음료생산 공장을 코카콜라에 45,000만 달러에 매각했지만, 한달후 시장 가치가 29,000만 달러로 떨어졌다. 프록터 앤 갬블(P&G)은 쌍용제지를 6,900만 달러에 샀는데 조금만 더 기다렸으면 더 싼 가격에 살수 있었다는 게 미국 시장분석가들의 평이었다.

미국 재무부가 한국을 지원키로 결정하자 월가의 벌쳐 캐피털은 한국의 대형 산불이 꺼질 것으로 믿었다. 한국 상공엔 먹을 것을 찾는 미국산 독수리가 하늘 높이 날아다녔다. 주가가 1년 전에 비해 절반 가까이(42%) 떨어지고, 환율이 두배로 올랐으니, 달러로 무장한 미국 자본에겐 한국 기업 값이 3분의1~4분의1로 줄었다. 벌쳐 캐피털들은 파이어세일(firesale)이라며 한국을 비롯, 아시아 기업들을 먹으려고 덤벼들었다. 파이어세일이란 집이 불타고 남은 가재도구를 헐값에 파는 것을 말한다. 불난 집에도 쓸만한 것이 많다. 화마를 당한 가정은 가재도구를 헐값에라도 당장에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장만해야 한다. 한국의 정황은 그러했다. 기업들은 하루하루 만기가 다가오는 빚을 막으려고 공장과 부동산을 팔아제꼈다.

블룸버그 뉴스는 1226일 현재 대한항공의 주가총액이 24,190억 달러로 보잉 747 두 대분의 값에 불과하고, 한국 제일의 기업인 삼성전자를 사는 값이 10월초 67억 달러에서 23억 달러로 폭락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중소 뮤튜얼펀드도 20여억 달러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대기업이라고 해도, 월가 중소자본에 의해 먹힐 판이다. 그들은 김치국부터 마시고 군침을 흘렸다.

 

그리폰 벌쳐(Griffon vulture) /위키피디아
그리폰 벌쳐(Griffon vulture) /위키피디아

 

한국 재벌 기업들의 주가 총액이 이렇게 초라해진 것은 단순히 원화 절하와 주가 하락에 원인이 있는 게 아니다. 재벌 오너들이 증자를 꺼린 것도 중요한 이유다. 재벌들은 증자를 해서 자본금을 늘리려는 생각보다는 증자를 하면 오너 가족의 지분이 줄어들어 경영권이 빼앗긴다는 생각을 했다. 기업은 자기의 것이라는 한국 재벌들의 못된 생각이 결국 기업을 헐값으로 전락시켰던 것이다. 증자를 통해 주식시장에서 자본을 확보하기보다는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이 편했고, 그러다 보니 한국 기업들은 빚더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주식시장을 해외에 개방하면 가장 타격을 입는 것이 재벌기업이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1229일자에서 한국의 653개 상장기업 가운데 87개 사만이 부도 위험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상태에 있다며 이렇게 썼다.

거대한 공룡과 같은 한국의 재벌들이 이제 과도한 빚더미에 짓눌려 죽어가고 있다. 이들이 살아남는 길은 지나치게 확장한 사업을 얼마나 빨리 외국인 투자가들에게 팔아 넘기느냐에 달려있다. 한국 기업들은 올들어서만 50% 절하된 원화가치와 주가 폭락으로 헐값으로 팔리게 됐다. 한국 증시의 시가 총액이 663,500억 원으로 세계 70위 기업인 네덜란드의 ING그룹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 경제는 휘청거렸지만,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두터운 소비 시장을 갖고 있고, 중국과 인접한 동북아시아 수출 기지로서의 입지조건이 있어 외국인 투자자들에겐 매력이 있는 투자처였다. 게다가 우수한 사회간접자본과 우수한 노동력을 갖고 있는 나라였다.

김대중 대통령 후보는 12월초 “26개 시중은행, 27개 증권사, 12개 보험회사, 21개 종금사등 상장 금융회사 전부의 자산을 합쳐도 55,000(37억 달러)에 불과하다웬만한 외국 투자자가 한국 금융기관을 전부 살수 있게 됐다며 우려했다. 그는 야당 대통령 후보로 IMF 이행조건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대통령 당선 직후 외국인 투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2)

 

미국을 비롯, 선진국 자본들에겐 아시아가 커다란 쇼핑센터였다. 그들은 널려 있는 물건을 고르고 값을 후려쳤다. 외국 투자자들은 한국 기업에 완전한 무장해제를 요구했다. 핑계도 많았다. 외국인에 대한 반감이 크다느니, 노조가 세다느니, 정부의 규제가 심하다느니, 부채가 많다느니 하며 이것저것 흠을 잡았다. 다우코닝사가 한국에 2억 달러를 투자하려다가 말레이시아로 투자지를 옮기면서 한국의 관료주의를 들었다. 투자할 곳이 많은데 한국정부의 시시콜콜한 간섭을 받으면서 투자하기 싫다는 것이다.

정부는 외국 돈을 끌어들여야 하는 절대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법을 통과시켜야 했다. 한국 정부는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7%로 제한했던 외국인 투자한도를 50%로 확대했고, 이나마 철폐하겠다고 약속했다. 채권시장과 부동산시장도 완전 개방했다. 한국 정부는 IMF우호적 M&A를 인정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외국인 투자자들의 불만이 거세자 적대적 M&A마저 받아들였다. 재벌들의 로비 단체인 전경련은 오히려 외국 기업에 더 많은 혜택을 줘 국내 기업을 역차별하고 있다고 반발했으나, 재벌들은 당장 자기 집의 불을 끄기에 급급했다. 유일한 자금난 해결 방법이 외국인 투자유치기 때문이다.

월가의 자본은 우선 한국 시장의 교두보를 마련하는데 주력했다. 월가의 투자은행들은 IMF 이전에도 한국에 진출하고 있었다. 메릴린치 증권은 서울 지점에서 기업 인수 및 합병, 증권거래업을 하고 있었다. 메릴린치는 금융위기 이후 한국 정부가 외국 투자기관에 대한 규제를 해제하자 한국에 증권회사를 세울 기회로 생각했다. 3)

모건 스탠리 딘위터, 크레딧 스위스 퍼스트보스턴(CSFB), ING 베어링스등 세계적인 투자회사들은 한국 경제 구조조정과 채권 발매, 인수 및 합병에 자문 역할을 자처했다. 씨티은행과 체이스맨해튼 은행은 해외 매각이 결정된 제일은행 인수를 탐색하고 있다는 루머가 끊이지 않았다.

한국 시중은행에 가장 먼저 투자한 은행은 독일 코메르츠방크(Commerzbank)였다. 코메르츠방크는 3월 외환은행에 25,000만 달러를 투자함으로써 29.79%의 지분을 차지했다. 코메르츠방크는 이미 외환은행의 주식 3% 정도를 가졌기 때문에 전체 지분은 32.39%로 최대주주인 한국은행 지분 33.6%에 비해 1% 약간 모자라는 대주주로 등장했다. 한국 증시에서 일반주 1%만 더 매집해도 코메르츠방크는 한국 최대 시중은행은 경영권을 완전 장악할수 있게 됐다.

 

<한국기업의 주가총액 변화>

(단위:백만 달러)

시점

회사

97/10/1

97/12/26

데이콤

1,342.8

777.6

대우중공업

2,764.5

1,140.2

한라공조

290.8

89.0

현대전자

2,000.0

829.9

기아자동차

526.0

286.7

대한항공

678.4

241.9

LG 전자

1,669.4

721.9

LG반도체

2,503.2

744.0

만도기계

166.5

26.6

포항제철

5,675.3

2,864.6

삼성전자

6,751.8

2,369.6

SK텔레콤

1,107.2

249.5

유 공

1,360.4

631.9

(자료:블룸버그)


1) NYT, 971227Korean companies are looking ripe to foreign buyers

2) 상동

3) WSJ, 98210Wall Street is scavenging in Asia-Pacif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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