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아틀라스뉴스
뒤로가기
외환위기
한국 자동차회사는 인수대상, 반도체 산업에 자금지원 규제…해외투자기업 매각
[외환위기 그후⑧] 타깃이 된 자동차·반도체산업
2019. 08. 03 by 김현민 기자

 

외환위기 직후 외국기업들이 노린 주요 타깃은 자동차와 반도체 산업이었다.

기아 자동차가 자금난에 시달리자, 미국의 빅스리는 일찍부터 한국 자동차회사를 기웃거렸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한국 자동차 회사를 인수함으로써 한국 정부의 보호장벽을 뚫을 수 있고, 값싼 부품으로 자동차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199712월말 미국 최대 자동차회사인 제너럴 모터스(GM)의 존 스미스(John Smith)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 자동차 회사 중에 현대와 대우만 살아남고, 삼성과 기아는 무너지거나 매각될 것이다. GM은 한국의 자동차 부품회사를 인수하기 위해 한국에 조사팀을 보냈다.”

포드자동차의 알렉산더 트로트만(Alexander Trotman) 회장은 한국 정부가 기아 자동차 인수를 요청해오면 당장에 항공기 티킷을 사서 한국에 가겠다며 기아 인수에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했다.

월가의 브로커회사인 리만 브러더스의 자동차 전문가 조셉 필리피씨는 한국 자동차 산업을 놓고 일생에 한번 볼 수 있는 지구상 대염가세일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자동차 업계가 한국 자동차 회사를 인수하려는 또다른 목적은 한국의 자동차 생산과잉을 저지하려는 것이었다. 필리피씨는 “GM과 포드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한국의 자동차 공장을 사서 과다한 생산시설을 줄이겠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한국 자동차 산업을 아시아 시장의 거점으로 활용하려고 했다. GM은 다음 세기에 아시아 태평양 시장에서 10%의 시장 점유율을 확보한다는 전략을 가지고, 한국 시장을 적극 공략했다. 포드는 일본 마쓰다 자동차의 최대 주주로 지분 33%를 보유, 이미 일본에 진출했고, 기아 자동차에 9.5%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었다. 마쓰다의 기아 지분 7.5%를 합치면 포드는 기아에 1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자동차 선적 /현대자동차 홈페이지
자동차 선적 /현대자동차 홈페이지

 

한국 반도체 산업도 미국의 경쟁 상대였다. 미국의 최대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 테크놀러지(Micron Technology)사는 IMF 구제금융이 한국 반도체 산업에 사용되어서는 안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IMF의 한국 구제가 결정된 직후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대변인 발표를 통해 “IMF 자금이 한국 반도체 산업으로 흘러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보장을 미국 의원들이 약속했다고 말했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이전부터 시간만 나면 한국 반도체 메이커들이 불공정 거래를 해왔다고 주장해 왔다. 2)

미국이 바닥에 주저 않은 한국 경제를 지원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견제를 강화했다. 마치 10년전 일본 반도체 산업이 미국의 실리컨 밸리를 강타했을 때 일본 반도체에 대한 견제를 보는 듯했다. 미국의 한국 반도체 규제는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미국 연준(Fed)는 한국의 상업은행 뉴욕지점에 대해 삼성전자의 최근 경영 상태가 좋지 않으므로, 삼성전자에 대한 대출 평가를 기준이하(sub-standard)로 분류, 크레딧 라인(대출한도)을 줄이라고 요구했다. 당시 삼성전자의 주거래 은행은 한국의 산업은행이었다. 이에 상업은행 뉴욕 지점은 삼성전자 미국 현지법인에 대출한 것이 없으니 크레딧 라인을 줄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상업은행 뉴욕지점이 Fed의 요구를 받아들여 삼성전자를 기준 이하로 분류하면, 다른 국내은행 뉴욕지점은 물론 미국 은행들도 삼성전자에 대한 크레딧 라인을 축소할 우려가 있었다.

뉴욕 금융가에서는 미국이 금융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을 지원하되, 자국 산업에 대해 경쟁력을 갖고 있는 한국 반도체 산업을 죽이려고 한다는 루머가 나돌았다.

이같은 루머를 뒷받침하는 또다른 움직임은 1998318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 반도체 협회(SIA)의 결의였다. SIAIMF의 아시아 금융위기 지원을 지지하지만, 해당국 정부가 IMF 협정을 준수해야 하며, 이에 대한 감시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SIA 결의문은 한국을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한국을 관심 대상임은 분명히 했다.

SIA는 결의문에서 아시아 반도체 업체의 투자, 생산, 수출은 시장 경쟁력을 토대로 해야 하며, 정부의 보조금이나 불공정 상행위의 도움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못박았다. 보조금을 받는 수출, 정부 주도의 수출목표 설정 등은 아시아 경제를 더욱 왜곡시킬 것이며, 시장 경쟁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정부의 보조금을 받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시각에서는 정부와 금융, 대기업의 유착관계에서 이뤄지는 아시아식 금융 구조 자체를 보조금의 성격으로 간주했다. 정부가 반도체 산업을 육성함으로써 과잉 생산이 이뤄지고 있고, 세계 시장의 가격 인하경쟁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이다.

또 미국 의회는 IMF 지원법안을 1년이나 끌어오다가 199810월 이를 통과시키면서 “IMF 자금이 한국의 반도체, 자동차, 철강, 섬유산업등을 지원하는 결과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특별 조건을 달았다. 미 의회의 이런 행동은 한국의 금융위기를 계기로 통상압박을 가하려는 미국 기업들의 의사가 반영한 것이다.

비즈니스위크지는 삼성의 위기라는 제목에서 삼성전자는 60억 달러에 이르는 달러 외채에 시달리고 있으며 삼성전자가 1994~95년 반도체 가격이 좋았을 때 그 수익을 자동차산업등 문제 있는 프로젝트에 투입했음을 지적했다. 3)

 

IMF 금융지원이 결정된 후 시작된 뉴욕 외채협상은 한국 금융권의 단기외채를 만기연장해주는 것으로 결론났다. 금융기관의 단기외채는 정부의 지급보증으로 만기를 1~3년 연장해, 한숨을 돌렸지만, 기업의 외채부담은 여전했다. 협상 후 미국의 중소은행들은 한국계 현지법인 또는 지상사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자금 회수에 나선데 이어 오랜 거래관계를 유지해오던 대형은행들도 이에 가세했다.

미국 은행들은 199712월 이후 한국 기업의 해외법인에 대한 크레딧 라인(대출한도)30~50%나 줄였고, 더 이상 대출을 늘리거나 만기를 연장해주지 않은 채 국제금리인 LIBOR(런던 은행간 금리)에 대해 6~8%의 높은 가산금리를 요구했다. 6% 미만의 국제금리 수준으로 돈을 빌리던 한국 기업으로선 두배나 높은 금리를 물어야 했다. 뉴욕에 본부를 둔 한 한국계 현지법인이 미국 은행에 대출 연장을 신청하면, 외국 은행과의 일체의 거래내역, 만기 등을 열거한 자료를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기도 했다.

미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 현지법인의 자금부장들은 IMF에 긴급자금을 받고 난 이후부터 미국 은행들의 대출형태가 현격하게 달라졌음을 피부로 느낀다고 토로했다. 당시 현지 법인 자금부장들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 은행들은 한국에 한번 데었기 때문에 한국의 신용등급이 향상되더라도 대출규모를 어차피 줄일 것이다. 문제는 줄이는 속도다.”

외채협상으로 은행의 단기 채무는 거의 롤오버됐지만, 미국 은행들이 한국에 대한 전체 대출규모를 축소하는 바람에 기업에 대한 대출을 줄이는 쪽으로 힘이 쏠리고 있다.”

외국은행들은 한국 기업에 대한 대출금을 줄이는 방안으로 한국계은행의 보증을 받는 은행차입 방식으로 바꾸라고 하는데, 한국의 은행들이 이를 거부하고 있다.”

미국 은행들이 과거엔 용도를 묻지 않고 돈을 빌려주었지만, 지난해 말부터는 그 돈을 어디에 쓰는지 확인한 후 일부 롤오버(rollover)를 해준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무역회사 현지법인들이 미국 은행들로부터 수출신용장(LC) 개설을 받지 못해 겪는 애로사항이었다. 한국 국가나 기업이 모두 정크 본드 상태의 신용등급을 받았기 때문에 미국은행들이 LC 개설을 거절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여기에다 DA(수출어음만으로 선적 서류를 내주는 일종의 외상거래)마저도 일정해 주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한국이 외채를 갚는 유일한 길이 수출을 많이 하는 것인데, 미국은행은 물론 한국계 은행마저 수출 신용을 해주지 않았다. 어느 상사의 경우 서울본사와 현지 법인 사이에 달러 현금 챙기기 경쟁을 벌이는 경우도 발생했다고 한다.

외환 위기는 미국에서의 한국기업 철수로 이어졌다. 원화 가치 하락으로 현지 법인 유지비용이 높아진데다 외화 부채를 갚기 위해서 외화 사용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은행들이 현지에서 한국 현지법인에 대해 대출을 기피하는 것이 더더욱 철수 바람을 확대했다.

쌍용시멘트는 현지공장이었던 리버사이드 시멘트를 미국 회사에 매각했고,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와 새크라멘토에 있던 매리어트 호텔 두곳을 미국 호텔에 팔아야 했다. 한라그룹도 로스앤젤레스의 호텔을 매각했다. LG전자가 매입한 제니스(Zenith) 전자는 적자에 허덕이다 마침내 미국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환율의 마력은 국가간 경제적 위상을 뒤바꿔 놓는다. 고평가된 달러를 무기로 한국 재벌들은 세계화(globalization)를 부르짖고 미국에 전자회사를 사고, 영국에 공장을 건설했다. 선진국의 환상은 원화 고평가에 있었다. 그러나 원화가 절하되면서 해외 공장들은 철수할 수밖에 없었고, 국내 공장들은 미국에 팔려나갔다.

 


1) NYT, 98121Market Place

2) WSJ, 97128US companies are cautious on Korean bailout

3) BW, 98323The crisis at Samsung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