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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진 교수 연구요약…1500-1750 소빙기에 유성 낙하, 소혹성 폭발, 해·달무리 집중
“조선시대 소빙기는 소혹성 폭발이 원인”
2019. 08. 11 by 이인호 기자

 

조선 왕조실록에 소혹성 폭발광경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151969일 경주부윤 김안로(金安老)가 보고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1)

경상도 경주부(慶州府)에 천변이 있었다. 초저녁에는 달빛이 매우 밝다가 서쪽에서 조금씩 구름이 생기며 구름 사이에서 번개 같은 빛이 비치는데, 번개가 아니라 불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공중에 가득히 화살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유성(流星)이 돌연 지나가는 것 같기고 하고 적사(赤蛇, 붉은 용)가 뛰노는 것 같기도 하고 불티가 흩날리는 것 같기도 하며, 더러는 당긴 활처럼 구부정하기도 하고 갈래진 채고(釵股, 구부정한 비녀)와도 같아, 오만 가지로 변하며 곧 나타났다 곧 없어졌다 하되, 서로 달리고 급히 쫓아가는 듯하고 번갈아 발동하고 교대하여 나오는 듯하여 연속 끊이지 않았다. 대체로 포()를 쏘는 모양 같았는데, 광채가 매우 번쩍번쩍 하여 깊은 방까지 비치었고, 서쪽에서부터 시작하여 점차 동북쪽으로 향하다 삼경(三更)이 되어서야 없어졌다.”

 

1594년 독일 뉘른버그 상공에 나타난 오로라 현상 /이태진, ‘소빙기’ 연구의 경험(2018년)
1594년 독일 뉘른버그 상공에 나타난 오로라 현상 /이태진, ‘소빙기’ 연구의 경험(2018년)

 

조선시대에도 소빙기가 있었다. 그러면 소빙기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러한 소혹성의 폭발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서울대 국사학과 이태진 교수가 이 문제에 도전해 1996년에 小氷期(1500-1750) 천변재이 연구와 朝鮮王朝實錄이란 논문을 역사학보에 제출했다. 이태진 교수가 조선왕조실록을 통한 연구를 통해 내린 결론은 혜성 출현의 증가, 이에 따른 유성의 다량 출현, 객성 및 소혹성등의 태양계에 진입 등 천체운행상의 특수한 조건이 조선시대 소빙기의 근본원인이라는 것이다.

 

이태진 교수는 대학원생들과 함께 조선왕조실록을 뒤져 우박, 서리, 때아닌 눈 등 이상기상 현상에 대한 기록과 홍수 등의 기록을 일지처럼 정리했다. 그는 서양 과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밝혀낸 태양 흑점설, 운석 충돌설 등을 습득하면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과 대조하며 결론을 도출하려고 했다.

이태진 교수는 세가지 항목을 전수조사했다.

하늘의 이상현상: 유성의 출현과 낙하, 태백성(금성)의 대낮 출현, 객성의 출현, 해의 이상(日變), 색깔 있는 천기(天氣)의 출현 해와 달의 무리

지상과 기상적 재변(災變): 지진, 뇌전(雷電), 태풍, 해일, 우박, 서리, 서리덩이, 때아닌 눈, 유색(有色)의 눈비, 짙은 안개, 난동 무빙(無氷)

재해: 수재, 한재, 충재, 전염병 등

이태진 교수의 조사팀은 조선개국 연도인 1392년부터 말기인 1863년까지를 50년 단위로 묶어 9기로 나누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천변재해의 추이 /이태진, 소빙기 천변재이 연구와 조선왕조실록(1996년)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천변재해의 추이 /이태진, 소빙기 천변재이 연구와 조선왕조실록(1996년)

 

이렇게 해서 분석한 결과 전체 이상기후는 1392~1863년 사이에 총 25,201건으로 집계되었고, 이중 82.5%2801건이 제3~7기 사이에 집중되었다. 이 기간은 1500~1750년 사이다. 이태진 교수는 이 분석을 통해 1500~1750년 기간을 소빙기 현상과 관련이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소빙기로 간주되는 1500~1750년 기간 중에 1568~1590년 사이에는 깊은 골짜기가 생겼는데, 이는 임진왜란으로 선조실록의 기록이 극도로 부실해진 결과로 인한 것이며, 이상기후 현상이 돈화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해석했다.

이를 토대로 보면 세종~성종대의 1~2, ·정조기의 후대에 이상기후 현상이 낮은데, 이는 사회의 안정이 자연현상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란 이태진 교수의 견해다.

 

이태진 교수의 연구중 주목할 만한 점은 소빙기의 원인이 유성의 출현, 운석의 낙하로 파악되었다는 사실이다.

그의 조사에서 3기에서 7기 사이에 유성과 운석의 기록이 2,704회로 가장 많았다.

유성(流星)은 별똥이라 불리는 것으로, 하루에도 10개 정도 출현하는데, 실록에 기록된 것은 아마도 규모가 상당한 것으로 파악된다. 실록에는 사발모양, 병모양, 큰 물동이 모양, 배 모양, 주먹 모양등으로 표현하고, 색깔도 희거나 붉다던가, 꼬리가 몇자나 된다고 표현했다. 시각적으로 현저한 것을 기록의 대상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유성의 출현은 당시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굉음과 빛을 발하면서 날아가는 유성(운석인 듯)”, “신기전(神機箭)과 같은 소리가 났다”, “출현시 하날 가운데와 사방에 번개불이 크게 일어나 우레를 치면서 비와 우박이 내렸다”, “약한 우레소리를 내면서 적광(赤光)이 땅을 한참 동안 비추었다”, “실내를 환히 비추고 잠시 하늘이 흔들리고 은은한 소리가 났다”, “색깔이 불 같고 소리는 천둥같았다라고 표현했다.

현대 천문학으로는, 작은 유성은 혜성에서 빠져 나온 것이 많고, 큰 유성은 소혹성이라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운석(隕石)으로 태양계 박의 혹성대(惑星帶)가 그 고향이라고 이태진 교수는 전문가들의 연구결과를 통해 설명했다.

 

조선왕조실록의 유성출현 빈도 /이태진, ‘소빙기’ 연구의 경험 (2018년)
조선왕조실록의 유성출현 빈도 /이태진, ‘소빙기’ 연구의 경험 (2018년)

 

이태진은 소혹성이 지구에 낙하해 폭발하는 현상과 같은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보인다고 했다. 그는 몇가지를 예시했다.

8~10시 사이에 나르는 별(飛星)이 나타났는데, 굽은 화살과 같았고 길이는 대략 1(3m)이 넘었는데, 점점 커져 기둥과 같이 되었다. 서쪽에서 일어나 동북 사이로 향하여 북쪽 오랭캐 땅에 떨어졌는데, 위아래가 온통 붉은 빛으로 멀고 가까운 지역을 환하게 비추었으며, 뒤이어 우레와 같은 소리가 나다가 잠시 뒤에 그쳤다. (160512, 함경도)

정오에 날이 맑게 개어 엷은 구름도 없는데 동편 하늘 끝에 포물선을 쏘는 듯한 큰 소리가 나서 하늘을 보니 짚단 같이 생긴 하늘의 불덩어리(天火)가 큰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지나간 곳은 하늘 문이 활짝 열려 폭포와 같은 형상이었다. (1603824, 평안도 선천군)

동쪽 서쪽 하늘가에 붉은 색이 있었고, 1시경에는 서남방, 서남서 방향 사이에 화기(火氣)가 있어 공중에서 떨어지는 형태가 기둥 같았는데, 줄이어 선 것이 4, 길이는 수 으로 밝기가 대낮 같았다. (161112, 황해도 해주)

10시경에 하늘이 이상하게 검어지더니 곧 낮처럼 불빛이 비추고 하늘이 갈라지면서 위는 뾰죽하고 아래는 넓고 크기가 항아리만한 한 물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면서 대포 같은 소리를 세 번 내고 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계속 났으며 별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1711520, 경상도 김해 등 6)

 

이태진의 연구팀은 또 해와 달의 무리현상, 태백성(금성)의 낮출현 등에 대해 조사했다. 해와 달무리 현성은 조사기간에 모두 5,231회 나타났는데, 이중 4,385(84%)가 소빙기에 나타났다. 태백성의 낮 출현은 천체 4,572회였는데, 이 가운데 3,880(85%)가 소빙기에 집중되었다.

무리 현상은 현대 천문학에서 태양의 발광이 약해진데 근본 원인이 있는 것으로 연구되었다. 이 시기에 몇겹으로 해무리가 나타났는데, 오늘날에 상상하기 힘든 것이다.

또 조선시대에 태백성 낮 출현이 잦아진 것은 음성(陰星)인 태백성이 중양(重陽)인 태양이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대 천문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이 시기에 태양의 발광과 발열이 약해졌음을 의미한다.

수많은 소유성들이 대기권에 돌입하면서 전리(電離)의 미립자가 늘어나고 대유성(운석)이 대기권에서 폭발해 부서지면서 먼지(테크타이드)가 많아졌기 때문에 태양의 빛과 열이 크게 차단되었다는 것이다.

태양이 하루종일 빛을 잃고 벌겋다던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던가, 돌로 보인다는 기록들은 모두 이러한 가림 현상으로 인한 이변을 기록한 것이다. 당시 사관들은 이를 일변(日變)이라 기록했다. 일변이 계속나타날 경우를 교일(驕日)이란 표현까지 썼다.

 

1570sus 보헤미아 지방에서 나타난 오로라를 보고 한 마술사가 우주촛불로 묘사했다. /SCIENCE PHOTO LIBRARY
1570sus 보헤미아 지방에서 나타난 오로라를 보고 한 마술사가 우주촛불로 묘사했다. /SCIENCE PHOTO LIBRARY

 

색깔 있는 천기(天氣)에 대한 기록도 자주 나오는데, 白氣, 赤氣, 火氣, 黑氣 등으로 표현되었다.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기록인데, 이태진 교수는 그 사례를 몇가지 들었다.

서쪽에 성운(星隕)이 떨어졌는데, 白氣가 늘어 놓은 빨래처럼 아래로 내려오면서 아득하게 멀리 퍼져 몸체의 끝이 없으며 땅에 닫기 4~5척이 안 되어 천둥소리 같은 것이 났다. (148511, 使臣北京에서 관찰한 보고)

새벽까지 사방 하늘가가 어슴프레 하면서 불 같은 기운(火氣)이 보였다가 없어졌다 했다. (150836)

동남쪽 사이에 밤마다 번개 같은 붉은 기운(赤氣)이 있었다. (1509228)

이태진은 이러한 기록들이 소혹성이 떨어져 나타난 현상임이 틀림없다고 했다. 소혹성이 낙하한 상황을 전혀 상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본 것만으로 제시된 견해라는 것이다.

 

또 소빙기 시대에 지진의 횟수가 많았는데, 이는 단순한 지층 운동의 결과로만 설명하기 어렵고, 소혹성 충돌시 강한 발생하는 강한 진동일 가능성이 있다고 이태진은 보았다.

또 운석 낙하 때 많은 미립자가 전리층을 형성하므로 소빙기 기간에 천둥가 번개(雷電) 발생빈도가 높게 나타나는 것과 무관치 않을 것으로도 해석했다.

 

조선왕조실록에 이런 기록이 있다.

신이 목격한 흑기(黑氣)는 그 기운이 비 같기도 하면서 비가 아니고, 연기 같기도 하면서 연기가 아닌 것이 북쪽에서 몰려 왔는데, 소리는 바람이 몰아치듯하고, 냄새는 비린내 같았는데 잠간 사이에 산골짜기에 가득차서 햇빛을 가려 지척에 있는 소와 말도 분별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참으로 괴이한 일입니다. 가까이는 적성(積城)과 장단(長端) 사이, 멀리는 함경도의 남쪽 경계까지도 모루 그러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이태진은 운석 충돌시 대규모의 태풍이 발생하고, 붉은 색, 누런 색의 눈 또는 비가 내리는 것은 운석 먼지와 관련이 있으며, 안개는 한랭화에 의해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누런 안개가 짙게 끼어 비린내가 나면서 사방이 어두운 것은 운석의 분진현상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파악했다.

이태진은 자신의 팀이 조사한 소빙기 일지를 통해 지구가 큰 규모의 운석군(隕石群 )을 만나 통과하는데 250년이 소요되었고, 그 기간에 지구는 각종 기상이변 속에 한랭화 이상기온 속에 빠져 있었다면서 이것이 바로 소빙기 현상의 실체라고 진단했다.

 


1) 중종실록 36, 중종 1469일 신미 6번째 기사 1519년 명 정덕(正德)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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