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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위기
조지 소로스, 1992년 9월 영국 파운드화 하락에 베팅 걸어 성공
[1997 아시아 투기세력⑤] 영란은행 파괴자
2019. 08. 17 by 김현민 기자

 

태양이 지지 않는다던 대영 제국은 1992916일 일개 투기꾼에 무릅을 꿇은 치욕을 기록했다. 역사가들은 이날을 검은 수요일’(Black Wednesday)이라고 불렀다.

조지 소로스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은 영국을 보복할 절호의 기회를 발견했다. 그는 영국 파운드화의 평가절하가 임박했다고 판단, 퀀텀펀드 자금을 풀어 파운드화 공격에 나섰다. 그가 사용한 방법은 국제 외환시장에서 보유 파운드화를 일제히 팔고, 상대적으로 강한 마르크화를 사두는 이른바 단기투매방식’(short-sale)이었다. 통화도 상품과 마찬가지로 비쌀 때 사서 쌀 때 파는 게 이문을 남긴다. 통화 가치가 폭락할 조짐이 보일 때 빨리 팔고, 가격이 바닥에 떨어진 후 사면 이문을 챙길 수 있다. 이때 강세 통화에 헤지해두면 환차익이 커진다. 문제는 누가 가치하락을 먼저 눈치 채고 모험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소로스는 파운드화가 고평가됐으며, 조만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그날 정오, 영국의 노먼 라몬트 재무장관은 단기 금리를 2% 포인트 인상하면서 소로스와 그를 따르는 투기꾼 무리들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그때 영국 재무장관은 큰 실수를 했다. 라몬트 장관은 150억 달러를 차입해서 파운드화를 방어하겠다고 밝혔던 것이다.

소로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머지 않아 영국이 두손을 들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영란은행이 금리를 2% 포인트밖에 올리지 않은 것은 투기자에게 항복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나중에 라몬트 장관의 발언은 우리(투기자들)가 얼마나 투자하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자신의 퀀텀 펀드가 보유하고 있는 자본 전액을 마르크화 매입에 퍼부었다. 다른 헤지펀드도 소로스와 함께 움직였다. 파운드화 공격에 나선 헤지펀드 금액은 200억 달러를 넘었고, 영국 재무부는 마침내 항복을 하고 말았다.

 

영란은행 /위키피디아
영란은행 /위키피디아

 

당시 영국의 상황을 살펴보자. 19929월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은 유럽통화제도(EMS: European Monetary System)의 중심 기구인 유럽환율체제(ERM: Exchange Rate Mechanism)에서 탈퇴한다고 전격 선언했다. 유럽은 물론 세계가 깜짝 놀라는 조치였지만, 소로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을 테지하면서, 그는 영국을 노려보고 있었다.

당시 유럽 국가들은 19991월 유럽단일통화(유로) 창설을 앞두고, 과도적으로 준고정환율 체제인 ERM을 운영하고 있었다. ERM은 유럽국가들이 독일 마르크화를 기축통화로 해서 자국 통화의 환율변동폭(밴드)6% 범위 내에서 변동을 허용하고 있었다.

영국의 ERM 탈퇴를 부추긴 원인은 독일 통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통일독일 정부는 쓰레기와 같은 동독 지폐를 폐기하고, 서독의 마르크로 대체했다. 그리고 동독지역을 복구하고 복지제도를 확립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그러자니 돈이 필요했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Bundesbank)는 마르크화를 마구 찍어냈다. 당연히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분데스방크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대폭 인상했다. 분데스방크는 2년동안 금리를 10차례나 인상, 고금리정책을 유지했다. 2차 대전 전에 하이퍼 인플레이션를 경험한 독일로서는 인플레이션도 잡고, 동독을 복구해야 하는 이중의 부담을 안고 있었다.

자본은 속성상 많은 이윤을 보장해주는 곳으로 움직인다. 세계의 핫머니들이 높은 이자율을 보장해주는 독일로 몰려들었고, 마르크화는 강세를 유지했다. 문제는 독일 이외의 다른 유럽국가들에서 발생했다. 자국 내에 있던 핫머니들이 대거 독일로 흘러 들어가는 바람에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유동성()이 부족하게 됐다. 독일 이웃국가들은 자국 내에 핫머니를 붙잡아 두기 위해서는 경기 후퇴를 감수하더라도 금리를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나라에서나 금리 인상과 통화가치 하락은 정권을 흔드는 치명적인 것이다. 19929월은 유럽 각국에 재앙의 달이었다. 먼저 핀란드가 자국 통화를 마르크화에 연동시켜온 고정환율제를 폐기했고, 뒤이어 스웨덴도 단기금리를 5배나 올렸다. 이탈리아 리라, 스페인의 페세타가 폭락했고, 다음 순서는 영국의 파운드화였다.

영란은행은 단기금리를 10%에서 15%로 올렸으나, 밀물처럼 밀려오는 투기자들을 막을 수 없었다. 영국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가뜩이나 높은 금리를 추가로 인상하는 방안과 차제에 ERM을 탈퇴, 환율 밴드의 구속에서 해방되는 방안등 두 가지였다. 메이저 총리는 여론에 밀려 후자를 선택해 마침내 ERM을 탈퇴하고 말았다. ERM 탈퇴는 6%의 밴드를 풀어 투기꾼들의 공격에 탄력적으로 대항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힘에 부칠 경우 환율 폭등(파운드화 폭락)의 가능성을 남겨두었다.

 

소로스는 파운드화 공격에 앞서 이탈리아 리라화를 공격, 이문을 남겼다. 그는 여기서 용기를 얻어 파운드화를 공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소로스가 결정적으로 파운드화에 베팅을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헬무트 슐레진저 분데스방크 총재와의 대화였다. 슐레진저는 그에게 유럽단일통화가 창설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 속에는 단일통화가 마르크화이어야 한다는 강한 의미가 함축되었다.

소로스는 이를 재빨리 간파하고 명석한 두뇌를 회전시켰다. 독일 중앙은행은 유럽 단일통화가 창설되기 전에 자국의 이익을 충분히 챙길 것이며, 당분간 금리를 인하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독일이 금리를 인하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영국은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 그러나 영국은 더 이상 금리를 인상할 경우, 모기지 론으로 주택을 구입한 서민들의 저항을 이겨내야 한다. 따라서 영국은 금리를 인상할 여력이 없고, 남아있는 보유 외환으로 파운드화를 방어하려 할 것이다. 영국의 방어능력은 100억 달러에 불과하다. 당시 소로스의 퀀텀 펀드의 총 자산이 100억 달러였다.

그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전 재산을 파운드화 폭락에 베팅했다. 그리고 다른 투기자들의 호응을 구했다. 소로스 특유의 전술이다. 소로스는 특정 국가의 통화를 공격할 때 자신이 단기투매에 나섰다는 것을 살짝 흘려 다른 투기자들의 도움을 청한다. 그는 많은 우군을 만들어 특정 통화를 공격하는데, 파운드화에서도 같은 방법을 취했다.

소로스는 마침내 영국의 무릎을 꿇렸다. 영란은행은 파운드 절하를 용인하고 말았다. 그는 순식간에 10억 달러, 정확히는 95,000만 달러의 이문을 남겼지만, ‘영란은행의 파괴자라는 불명예를 얻게 됐다.

 

그러면 여기서 소로스의 투기 철학을 살펴보자. 그는 시장은 항상 왜곡돼 있다고 믿었다. 시장 참여자들이 부정확하게 인식하고 있고, 정부의 개입도 시장을 거스르고 있다는 것이다. 소로스는 정치적 위기와 시장질서의 붕괴를 얼마나 미리 감지하느냐에 모험을 걸었다. 그는 며칠 이내에 결단을 요구하는 베팅을 하기도 했고, 어떤 경우에는 한두달 걸리는 모험을 하기도 한다. 실패할 경우도 있다. 그는 1997년 하반기 아시아 통화 폭락에 참여, 비난은 비난대로 받았지만, 실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영국의 정치제도를 철저히 파악하고 있었다. 영국에서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그는 영국을 잘 알았다. 영국은 노동자, 서민의 파워가 강한 나라다. 금리를 인상하면 서민들의 주택 자금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정부는 정치적으로 치명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영란은행도 그런 부담을 질 수 없게 된다. 영란은행은 투기꾼들을 방어하기 위해 200억 달러를 썼지만, 영국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소로스와 같은 투기꾼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영국 국민들은 나중에 검은 수요일이 자신들에게 이익을 주는 백색 수요일’(White Wednesday)이었음을 알게 됐다. 영국 정부가 파운드화 절하후 인위적인 고금리 정책을 포기함으로써 서민에 대한 금리부담을 줄였기 때문이다. 소로스는 파운드화 가치를 떨어뜨려 영국 재무당국자의 잘못된 철학과 정책을 단호히 처벌했지만, 국민들을 고금리의 족쇄에서 풀어주는 해방자였다. 파운드화는 하락했지만, 금리는 인하됐고, 영국은 다시 경제 회복의 길을 걷게 됐다. 이런 것들을 소로스가 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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