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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위기
미국 부유층의 머니게임 수단으로 급속히 팽창…투기성 강한 펀드
[1997 아시아 투기세력⑥] 헤지펀드
2019. 08. 18 by 김현민 기자

 

헤지펀드(hedge fund)는 높은 위험을 감수하고, 고수익을 추구하는 단기 투자자금 및 관리방식을 말한다. ‘헤지’(hedge)라는 말은 '안전한 자산관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헤지펀드는 본래의 의미와 엄청난 거리가 있다. 헤지펀드는 고객들에게는 안전한 자금 도피처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 헤지(hedge)와 리스크(risk)는 상반된 개념이고, 동전의 양면과 같이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는 존재다.

헤지펀드는 1949년 미국인 알프레드 존스씨가 최초로 설립한 후 1990년대 들어 급성장했다. 1950년대 헤지펀드는 부자들의 안전한 자금관리를 위해 창설됐다. 백만장자들은 주식시장이 불안할 때 안전하게 자금운용을 하기 위해 헤지펀드에 투자했고, 펀드매니저들은 단기매매방식을 동원, 부자들의 돈에 이익을 붙여주었다.

일반 투자자와 헤지펀드는 까치와 까마귀에 비유된다. 일반 투자자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주식과 채권시장을 선호하지만, 헤지펀드에 돈을 맡긴 부자들은 급격한 시장 변화에서 돈을 챙기는 것을 좋아한다. 일반 투자자들은 경기상승 국면에 투자하지만, 헤지펀드들은 추락하는 경제, 추락하는 종목에서 돈을 버는 특성이 있다.

헤지펀드는 부유층의 머니게임 수단이다. 봉급쟁이들이 뮤튜얼펀드에 가입하지만, 백만장자들은 헤지펀드에 돈을 맡긴다. 그렇기 때문에 헤지펀드는 까다로운 가입조건을 불문율로 정해놓고 있다. 1990년대초까지만 해도 헤지펀드의 고객이 될 수 있는 자격은 재산이 100만 달러 이상이고, 2년 동안 연평균 소득이 20만 달러가 돼야 했다. 부부가 동시에 소득이 있을 경우 부부 소득 합계가 연간 30만 달러가 되면 가입이 허용됐다. 이 엄격한 조건을 지킬 수 있는 부자는 미국 성인인구의 3%, 300만 명에 불과하다. 가입 멤버는 최대 99명으로 제한했다.

그러나 이런 불문율eh 점차 무너졌다. 1990년대 후반에 미국의 주식시장이 달아오르면서, 헤지펀드들은 고객 모집 세일에 나서 이전과 같이 까다로운 조건이 아니더라도 고객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파이어버드(FireBird)라는 헤지펀드의 경우 1994년부터 연봉 20만 달러 이하의 고객을 모집했고, 가입자의 재산 평균이 48만 달러에 불과했다. 몇 년전만 해도 연봉 10만 달러의 중산층은 헤지펀드 근처에도 갈 수 없었으나, 1990년대 후반에는 서로 모셔가려는 입장으로 변했다.

미 증권당국(SEC)도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 종전에는 고객을 100명 미만으로 제한했으나, 1996년부터는 투자가 500명 미만일 경우 등록 또는 공시할 의무를 면제해줘, 가입인원을 500명까지 늘릴 수 있도록 했다.

 

자료: 위키피디아
자료: 위키피디아

 

1990년대 들어 헤지펀드는 급속히 팽창했다. 가입조건을 완화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장기호황이다. 돈 많은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연간 20% 이상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헤지펀드에 돈을 맡겼다.

1990420개에 불과했던 헤지펀드는 19931,000개를 넘어섰고, 1998년엔 3,000개 이상으로 창궐했다. 총 자본금 규모도 1992500만 달러를 못 미쳤으나, 1998년엔 2,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조지 소로스의 퀀텀 펀드나 줄리안 로버트슨의 타이거 펀드, 레온 쿠퍼맨의 오메가펀드와 같이 자본금 100억 달러 이상의 스타급 펀드들도 있지만, 대부분 자본금이 1억 달러를 넘지 못했다.

머리회전이 빠른 펀드 매니저는 투자은행이나, 뮤튜얼펀드보다 헤지펀드를 선호했다. 수입이 많고,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월가 투자은행의 펀드매니저들은 능력에 따라 성과급을 받는데, 연말에 100만 달러 이상의 보너스를 받으려면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어야 한다.

헤지펀드 매니저는 1년에 운영자금의 1%를 수수료로 받고, 이익금의 10~30%를 챙겼다. 대개 이익금의 20%를 받는 것이 월가의 공식이었다. 예컨데 5억 달러의 자본금으로 1년에 20%의 수익을 올렸다고 가정해 보자. 펀드매니저는 500만 달러의 수수료에, 이익금 1억 달러의 20% , 2,000만 달러등 모두 2,500만 달러를 손에 쥘 수 있다. 물론 손해를 볼 경우 한푼도 건지지 못한다.

헤지펀드가 다른 기관투자자들에 비해 모험적인 단기 투자에 손을 댈 수밖에 없는 것은 펀드매니저의 소득 계산방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남의 돈으로 머니게임을 하면서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자리가 헤지펀드 매니저다.

월스트리트 저널등 미국의 언론들은 해마다 월가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사람을 조사, 발표하는데, 상위 20명중 절반이 이름 없는 헤지펀드 매니저들이다. 똑똑한 것 하나만으로 큰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월가에 포진한 헤지펀드이기에 미국 금융계에서 내로라는 사람들이 헤지펀드로 몰렸다. 인기 록가수나 유명 운동선수보다 수입이 많은 사람이 바로 월가의 헤지펀드 매니저들이었다.

헤지펀드의 자금을 운용하는 매니저들은 세계 금융시장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사람으로 평가를 받았다. 헤지펀드의 매니저들은 대개 하버드, 예일, 컬럼비아등 미국 동부 명문대학에서 경제학 석사(MBA)를 했다. JP 모건, 골드만 삭스, 메릴린치, 살로만 스미스 바니등 월가 투자은행에서 몇 년간 펀드매니저를 한 뒤 펀드매니저가 되거나, 대학을 나오자마자 헤지펀드를 운영하기도 했다.

월가의 금융인들은 헤지펀드로 이동하는 엑소더스 현상이 나타났다. 미국 최대의 뮤튜얼펀드인 마젤란 펀드의 유명한 펀드매니저였던 제프 비니크씨는 1997년초 회사를 떠나 독자적인 헤지펀드를 만들었고, 살러먼 브러더스의 앤드류 피셔, 골드만 삭스의 클리프 애스네스씨와 같은 펀드매니저들도 헤지펀드로 이동했다. 심지어 하버드 대학의 기부금을 관리하던 존 제이콥슨씨도 헤지펀드로 자리를 옮겼다. “얼굴이 잘생긴 사람은 헐리웃으로 가고, 머리가 좋은 사람은 월가 헤지펀드로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래픽=김현민
그래픽=김현민

 

뉴욕 맨해튼의 미드타운 파크 애비뉴 2379층짜리 한 건물은 일명 헤지펀드 호텔이라 불렸다. 그곳에는 20대 후반 또는 30대 초반의 젊은이 두어 명이 사무실 한 칸을 빌려 펀드를 차려놓았다. 사무실에는 전화와 팩스, 컴퓨터가 놓여져 있고, 벽엔 각종 그래프로 도배질해 놓았다. 이곳에 젊은이들은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하루종일 컴퓨터와 싸우며 많게는 수십억 달러, 적게는 수천만 달러의 자금을 운영했다.

이들의 장점은 월가의 투자은행이나 뮤튜얼펀드의 복잡한 체계를 거치지 않고 마음대로 투자를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증권당국의 제제를 받지 않았다. 최상의 투자라면 어느 곳이나 덤벼들었다. 파생금융상품, 외환 거래, 주식, 채권등 각종 금융상품에 손을 대고, 단기투매, 레버리지 기법등 다양한 금융기법을 동원한다. 펀드매니저의 판단과 성격에 따라 이익이 크게 달라진다.

헤지펀드 정보회사인 리 헤네시(E Lee Hennessee)의 조사에 따르면 1990년에서 97년까지 헤지펀드의 연간 수익률은 평균 17%(수수료 제외)였다. 이 기간 미국 대기업 주가기준인 S&P 500의 연간 수익률 이 18%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익률이다. 소로스의 퀀텀펀드는 1969년이래 연평균 32.6%. 30년전에 퀀텀펀드에 1,000 달러를 투자했다면, 지금은 352만 달러로 재산이 불어났다는 것이다. 래리 바우먼씨가 운영하는 스피네이커 테크널러지 펀드의 경우 연평균 수익률이 60%였다.

그러나 헤지펀드는 반드시 큰 이익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소로스의 퀀텀 펀드와 함께 헤지펀드계에 쌍벽을 이루는 로버트슨의 타이거펀드는 1997년 일본 채권시장에서 단기투매에 실패, 손해를 보기도 했다.

 

헤지펀드는 주가 상승기에는 맥을 추지 못하다가 주가 하락기에는 큰 힘을 발휘한다. 예컨데 미국 증시 불황기였던 1992년에 S&P 지수가 2.5% 하락했지만, 헤지펀드 지수는 6.7% 상승했다. 이에 비해 1995년 호황기에 S&P 500 주가가 9.5% 신장한 반면 헤지펀드 지수는 6.4% 증가에 머물렀다. 헤지펀드는 호황기보다 불황기에 성공하는 까마귀와 같은 존재였다.

헤지펀드의 1997년말 총자산(3,000억 달러)2조 달러 규모의 뮤튜얼 펀드에 비해 한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헤지펀드는 뮤튜얼펀드에 비해 투기성이 강하고, 투자자들에게 높은 수익을 보장하기 때문에 헤지펀드로 돈이 몰리는 추세였다. 19967월부터 976월까지 12개월 동안 200억 달러의 신규자금이 헤지펀드로 유입돼, 1993년이래 가장 많은 자금을 보충했다.

헤지펀드의 또다른 특성은 자본을 카리브해의 섬에 묻어둔다는 점이다. 세금을 물지 않기 위해서다. 헤지 펀드의 대주주 또는 매니저들은 국적이 있지만, 자본은 원천적으로 초국적의 속성을 지고 있다. 이들 자본이 애국심을 가질 리 없고, 특정국가의 민족적, 역사적 배경을 . 이해할 리 없다. 아시아 금융시장은 이들에 의해 무너졌다.

IMF는 헤지펀드의 핫머니 운용이 세계 금융질서를 교란한다는 비난을 받아들여 이를 제제하는 방안을 밝힌바 있다. 그러나 자유로운 자금의 이동을 보장하는 미국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IMF도 구체적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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