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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위기
각국 통화 변동에서 이익을 챙겨…전세계 딜러들의 무수한 허수거래로 환율 형성
[1997 아시아 투기세력⑧] 외환 딜러
2019. 08. 20 by 김현민 기자

 

세계 금융시장의 1번지인 뉴욕 월가가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은 새벽 530분쯤이다. 외환 딜러들이 가장 먼저 월가에 진주, 어둠을 쫓아내고 사무실의 불을 밝힌다. 유럽 외환시장 오후장에 맞추려면 새벽 6시부터 일을 시작해야 한다. 뉴욕 시간으로 새벽 6시는 런던 시간으로 오전 11시다. 이때부터 전화통에 불이 나고 눈코 뜰새 없는 업무가 시작된다. 월가는 물론 미국에서 이렇게 일찍 일어나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빨라야 하고, 부지런해야 하는 직종이 외환 딜러들이다.

외환 딜러들은 뉴욕과 시카고, 보스턴등 미국의 주요도시는 물론 동경, 홍콩, 싱가포르, 런던, 파리, 프랑크푸르트등 세계 전지역의 은행, 증권회사, 뮤튜얼펀드, 헤지펀드등 금융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특히 뉴욕에서는 금융기관이 아니라, 개인 및 팀을 이루어 세계 증권시장, 외환시장, 선물시장등에 투자하는 소수정예의 딜러체제가 산재해 있다. 은행들은 딜링룸을 갖추고, 정예 외환딜러를 확보하고 있다.

국제 외환시장은 증권거래소, 상품거래소와 같이 일정한 거래장소가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의 각은행 또는 기관투자자, 증권회사를 연결하는 전화와 컴퓨터 온라인망이 곧 시장이다. 전세계 주요도시 중에서 외환 거래가 활발한 뉴욕, 런던, 홍콩, 동경 등을 외환 센터라고 하는데, 미국 달러, 영국 파운드, 일본 엔, 독일 마르크, 프랑스 프랑등 세계 100여종의 통화가 거래된다.

국제 외환시장은 24시간 개장되며, 그야말로 글로벌 단일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주식시장은 뉴욕 증권거래소, 동경 증권거래소와 같은 특정 장소에서 자국 기업의 주식을 주로 거래하지만, 뉴욕 외환딜러들은 달러뿐 아니라 엔화, 마르크화, 중국 위안화를 컴퓨터와 전화로 순식간에 거래한다.

 

월가는 외환 딜러들의 진주로 하루가 시작되며, 뒤이어 채권 분야 딜러들이 7시께 출근한다. 시카고 선물 시장이 820분 개장하기 때문이다. (뉴욕 시간이 시카고 시간보다 한 시간 빠르다.) 이어 뉴욕 증권거래소의 딜러, 브로커, 파생금융상품, 헤지펀드등 각종 금융상품을 거래하는 투자은행 펀드매니저들이 줄을 지어 월가의 빽빽한 건물을 채운다. 930분 뉴욕 증권거래소의 오프닝벨이 울리면 맨해튼 남단의 월가는 본격적인 돈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월가에서 근무하는 한 딜러의 하루 일과를 들여다 보자.

미국에서는 외환 딜러를 외환 트레이더(currency trader)라고도 부른다. 외환딜러 K씨는 연봉이 100만 달러 정도로, 월가에서는 중간 정도다. 실적이 좋은 해에는 수백만 달러를 벌기도 한다. 그는 뉴욕에서 한 시간쯤 고속도로를 달리면 나타나는 커네티컷주의 부유층 거주지역에서 산다.

K씨의 하루는 새벽 530분부터 시작된다. 눈을 뜨자마자 잠옷차림으로 그는 밤새 동경과 홍콩등 아시아 금융시장에서 집으로 보내온 팩스를 훑어본다. 통근 열차에서도 투자 리스크를 분석하거나, 휴대폰으로 동경에 전화를 걸어 당일 매입 또는 매각할 종목과 물량을 협의한다.

오전 730분께 사무실에 도착한 뒤 곧바로 소속회사 외환딜러들을 소집, 런던, 동경, 홍콩을 잇는 4자 국제 전화회의를 갖고, 밤새 국제시장의 장세를 점검하고, 전날 거래의 손익을 검토한다. 곧이어 본업에 들어가 4시까지 외환 거래는 물론 파생금융상품 거래를 지휘한다.

딜러들이 하는 일은 돈 놓고 돈 먹기를 하는 것과 같다. 환율이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고객이 교환을 의뢰한 돈을 온라인망에 띄워 바꿀 통화의 매입자를 찾는다. 매입자가 여럿 나타나면 이중에서 가장 유리한 환율을 제시하는 상대를 선택, 거래를 성사시킨다. 외환 딜러들은 하루에도 외환을 사고 파는 거래(trades)2,000번 정도 한다. 10시간을 일한다고 하면, 한시간에 200번의 거래를 하는 셈인데, 이중 고객의 의뢰를 받아 이뤄지는 실제 거래는 2%에 불과하다. 나머지 98%의 거래는 단순한 금융거래다. 98%의 거래가 외환 시세차를 이용해 돈을 버는 투기성 거래로, 국제 금융질서의 부정적 측면을 만들어 냈다.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가 외환 거래를 없애자고 주장한 것은 바로 이런 측면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딜러가 하루에도 수천번씩 진행하는 외환 거래는 시장 가격을 형성하는 순기능을 하기도 한다. 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장관이 외환 거래를 중단하면 투자자들이 말레이시아를 떠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은 후자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은행과 펀드의 딜링룸에서 일하는 외환딜러들은 고객의 외환 수급하는 대신하는 본연의 역할 이외에 환투기에도 일조를 했다. 19975월 중순, 태국 바트화가 떨어질 것으로 판단, 미국의 헤지펀드와 은행 외환 딜러 조직이 20억 달러 어치의 바트화를 매각한 것도 이런 역기능 때문이다.

외환도 상품과 마찬가지로 가치가 떨어질 우려가 있을 때 미리 팔고, 올라갈 가능성이 있을 때 미리 사는 게 남는 장사다. 이른바 환차익이다. 199712월 한국 원화 환율이 1주일 사이에 두배로 폭등(원화 폭락)했을 때 미리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둔 딜러들은 엄청난 환차익을 남겼지만, 한국 원화 폭락을 부채질했다. 외환 거래는 20세기말에 세계 금융질서를 때론 급격히 동요시키고 있는 필요악으로서 자리매김했다.

 

트레이딩룸 /위키피디아
트레이딩룸 /위키피디아

 

국제 외환시장의 규모는 자본 시장의 국경이 무너지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990년대말 각국간 거래되는 외환 규모가 하루에 2조 달러였다. 뉴욕 증시의 하루 주식 거래량의 수십 배나 되었다. 일본 엔화나 독일 마르크화처럼 비중 있는 통화의 하루 거래량은 2,500억 달러에 이르렀다. 태국과 같이 비중이 작은 나라에서는 바트화의 교환 규모가 하루에 수십억 달러에 불과했다.

세계 외환 거래는 영국 런던이 최대의 규모를 자랑했다. 미국을 이탈해 국제적으로 떠도는 달러를 유로 달러(euro-dollar)라고 하는데, 유로 달러의 상당액이 금융 규제가 거의 없는 영국에 집중돼 있었기 때문이다. 19954월 기준으로 런던의 외환 거래액은 하루에 4,637억 달러였고, 뉴욕은 2,443억 달러, 동경은 1,637 억 달러였다.

외환 딜러들은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는 것처럼 거래를 한다. 이들에겐 점심시간이 따로 없다. 거의 전직원이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샌드위치나 햄버거, 피자등으로 식사를 한다. 세계시장의 외환 거래가 점심시간에도 멈추지 않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눈은 컴퓨터 모니터에, 귀는 전화기, 입은 샌드위치에 가있다. 예컨데 일본 엔화가 급락할 경우 외환 딜러의 책상에는 아침에 자동판매기에서 빼온 커피가 식어 뒹구는데도 입에 댈 시간에 없을 정도로 바쁘다.

 

외환 거래는 금본위제도가 붕괴하면서 활성화된 것으로, 그 연령이 한 세대를 갓 지났다. 1972년 이전까지만 해도 각국은 금본위제도를 채택했다. 그러나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금이 모자랐고, 더 이상 금에 매달려 통화정책을 운용할 수 없게 되자, 각국은 금본위제도를 해체했다. 1990년대 들어 미국 경제가 장기호황을 지속하고, 미국 행정부가 달러 강세(strong dollar) 정책을 취함에 따라 각국 통화가 달러를 기준으로 움직이는 달러본위(dollarization)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외환 보유고에는 달러가 가장 많이 보관돼 있다. IMF 통계에 따르면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의 총 외환보유고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에 50%였으나, 199556.6%, 199658.9%로 증가하는 추세에 있었다. 이에 반해 엔화는 198918%에서 199614%, 마르크화는 같은 기간 9%에서 6%로 감소했다.

각국 중앙은행은 자국 통화 가치가 폭락할 때 외환보유고를 풀어 통화를 안정시킨다. 일본은 19984월초 보유외환 2,200억 달러중 200억 달러를 풀었고, 한국과 태국, 인도네시아 등 97년 보유고를 풀어 통화를 방어하려고 했으나, 투기자들을 당해내지 못했다.

국제 외환 시장에 또다른 격변은 19991월로 예정된 유럽단일통화(유로) 창설이었다. 전문가들은 각국 중앙은행이 유로화 보유 비율을 늘릴 경우 엄청난 양의 달러화가 국제시장에 풀려 달러 약세 국면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고했다.

외환 딜러들은 각국 통화의 변동에서 이익을 챙겼다. 그들은 24시간 움직이는 시장에서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쉴 사이가 없다. 뉴욕 증권거래소가 하오 4시 폐장해도 외환시장은 움직인다. 외환 딜러 K씨는 하오 4시부터 6시까지 부가가치가 높은 파생상품을 연구개발하고, 이어 저녁을 먹는다. 저녁 식사 후에도 9시까지 뉴욕 시장의 하루 물량과 인기 종목을 분석하고 집에 들어가는 시간은 밤 10시가 되어야 한다. 집에 들어가서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나려면 잠자기 바쁘겠지만, 그래도 짬을 내서 잡지를 뒤적거린다. 외환 시장이 요동치는 날엔 집에 가지도 못하고 회사 근처 호텔에서 새우잠을 자기도 한다. 월가에서 함께 근무하는 증권 브로커, 은행가, 일반 직원들에 비해 더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외환 딜러라는 직종이다.

외환 딜러의 위력이 국제금융계에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였다. 앤드류 크리거(Andrew I Krieger)라는 외환 트레이더가 뱅커스 트러스트(Bankers Trust New York) 은행을 도와 한번에 5억 달러의 이익을 보태준 적이 있다. 크리거씨가 공격한 통화는 뉴질랜드 달러였다.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크리거와 뱅커스 트러스트 은행가 재공격하자, 단기 금리를 인상하겠다고 위협, 공격을 중단시켰다. 그후 크리거는 뱅커스 트러스트에서 쫓겨났지만, 외환 거래의 중요성과 위험이 국제 금융시장에 인식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조지 소로스와 같이 외환 투기에 성공, 세계적인 금융가 행세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드시 모든 외환 거래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소로스의 부하였던 빅터 니더호퍼(Victor Niederhoffer)는 자산의 저서 투기꾼의 교육에서 외환 거래의 즐거움과 돈벌이에 대해 애써 미화했지만, 정작 자신은 1997년 바트화 공격에서 크게 실패, 자신의 펀드를 폐쇄해야 했다.

성공한 헤지펀드 매니저는 대개 외환 트레이드에서 돈을 번다. 이들 중 일부가 졸부가 되기도 하지만, 무수한 사람이 실패, 패가망신한다. 그들의 성공과 패가망신은 그들 자신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한국과 태국, 러시아와 같은 한 국가의 흥망 성쇠를 좌지우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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