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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의 시대

푹 아인, 선교사 도움으로 응우옌 왕조 수립…카톨릭 탄입 이후 프랑스와 적대관계

프랑스, 베트남 조력자에서 침략자로

2019. 08. 26 by 김현민 기자

떠이 선(西山) 농민왕조에 쫓긴 웅유옌조의 응우옌 푹 아인(阮福映)은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아 메콩 지역을 전전하며 피해 다녔다. 그에게는 군대도 없었다.

응우옌 왕조 초대 황제 푹 아인 /위키피디아 — 응우옌 푹 아인 /위키피디아

1777년 푹 아인이 타이 만에 있는 어느 한 섬에서 프랑스인 선교사 피뇨 드 브엔느(Pigneau de Behaine) 주교를 만났다. 푹 아인은 선교사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브엔느 주교는 파리로 돌아가 루이 16세에게 베트남 지원을 요청했다. 혁명 전야에 있던 프랑스는 지원을 거부했다.

그 사이에 푹 아인은 쟈 딘(嘉定) 성(사이공)을 점령했다. 그는 군벌 보 타인을 사위로 삼아 다시 쟈 딘을 장악했고, 사이암에 조공으로 지원을 얻어냈다.

6년여의 긴 여행 끝에 브엔느 주교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브엔느 주교는 사재를 털었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돈으로 최신식 프리깃함 2척과 용병 300명을 끌어모아 푹 아인을 도왔다.

주교는 요새 건축술과 군사훈련가, 범선운영 기술자, 측쟝 전문가등을 데려왔다. 이들은 푹 아인의 군대와 전술을 서양식으로 개조했다. 용병 중에는 무기 제조, 성곽 건축, 선박 제조 등이 가능한 기술자들도 섞여 있었다. 푹 아인은 믈라카, 페낭, 바타비야 등 당시 영국 또는 네덜란드 인들이 지배하던 도시에서 선진 무기를 구입했다. 푹 아인 정권은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성격을 띠었다. 메콩 유역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능력도 큰 몫을 했다.

오랜 시간 해외를 전전하던 푹 아인은 생각을 바꿨다. 우선 군대의 전략과 기술을 서양식으로 전환했다.

대표적인 것이 보방식 요새 구축이다. 보방식 요새란 루이 14세 때 세바스띠엥 보방(Sébastien le Prestre Vauban)이라는 프랑스 축성기술자가 개발한 최신형 요새로, 이전 요새의 결함을 보완해 별(☆) 모양으로 건축하는 방식을 말한다.

보방은 요새 축성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입했다. 첫째 돌보다 흙으로 축성했다. 돌벽은 포격을 당할 때 파편이 튀어 위험하지만, 흙벽은 쉽게 쌓을수 있는데다 포탄이 박혀 무너지지 않았다. 둘째 요새의 외형을 과거의 원형 또는 정다각형에서 뾰죽한 별 모양의 각을 만들어 적 침투시 교차사격이 가능하고, 적의 포격시 포탄이 빗맞도록 했다.

응우옌 푹 아인은 브엔느 주교가 데리고 온 요새축성 기술자의 지도에 따라 사이공에 모방식 요새를 짓기로 했다. 3만명의 인력이 동원됐다. 건축기간은 1년. 막대한 세금과 고된 노역으로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쟈 딘 성은 1890년 완공됐다. 돌과 흙으로 축조된 요새의 둘레는 4,176m로, 네모난 꼴의 구조에 모서리에 4개의 주된 능보(稜堡, 성곽 외각의 삼각형 건축물)와 6개의 반(半)능보로 구성돼 있었다.

쟈 딘 성이 완공된 이후 떠이 썬 군은 다시는 사이공을 점령하지 못했다. 떠이 썬 군이 포격을 해도 포알이 성벽에 박혀 성을 무너뜨릴수 없었고, 군인들이 성벽 가까이 몰려들면 정면과 측면에서 총알이 날아와 공격이 어려웠다.

응우옌 푹 아인은 쟈 딘 성을 거점으로 확보했다. 더 이상 뺏기지 않는 성을 가졌다는 것은 기회를 엿벌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메콩강 하류의 사이공은 배를 움직이기도 좋은 항구도시었다.

브엔느 주교가 사준 서양식 함대는 떠이 썬 군의 해군과 그들의 연합함대인 중국 광동성 해적선에 타격을 주는데 효과적이었다. 푹 아인은 모든 비용을 들여 서양식 범선을 건조하는데 주력했다. 선진 기술로 무장한 군대는 재래식 무기를 가진 수많은 적을 물리칠수 있다. 세계 역대 전쟁사가 이를 입증한다. 푹 아인의 군대는 보방식 요새라는 지상전 신병법과 서양식 함대라는 신기술을 활용하면서 전선을 북으로 확대했다.

그는 몬순(계절풍)이라는 자연의 움직임을 활용했다. 재래식 전투는 계절풍이 적을 향해 불 때 배를 움직여 공격을 하고,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 후퇴하는 전술을 섰다. 하지만 푹 아인의 군대는 계절풍이 북으로 불 때 북진해 떠이 썬의 성을 함락시킨 다음, 역풍이 불 때 내려오지 않고 그곳을 지켰다. 점령한 곳에 모방식 요새를 구축해 수비했기 때문에 버텨낼수 있었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북쪽의 주요 거점을 점령하는 방식으로 떠이 썬 군을 격퇴해 나갔다.

1793년 응우옌 푹 아인은 떠이 썬 군의 발원지인 베트남 중부 꾸이 년(歸仁)을 공격했다. 그곳은 떠이 썬 운동의 발원지였고, 황제의 큰 아버지인 응우옌 반 냑이 지키고 있었다. 푹 아인은 꾸이 년 함락에 실패했지만, 시간을 기다렸다. 그 사이에 힘을 길렀다. 1799년 다시 꾸이 년을 진격했다. 해상에서 적선을 궤멸시킨 이후 지상의 성채를 함락시켰다. 그리고 성의 이름을 빈 딘(平定)으로 바꾸었다. 떠이 썬을 평정하겠다는 의미다. 꾸이 년의 함락은 푹 아인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떠이 썬 세력과 힘의 균형이 깨졌다는 징조였고, 조만간 북쪽 수도 탕 롱을 넘볼수 있게 됐다.

북쪽의 떠이 썬 군과 남쪽의 응우옌 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1802년 응우옌 푹 아인의 군대는 다시 북벌을 전개했다. 순식간에 떠이 썬 군의 주력을 소탕했다. 한달만에 떠이 썬 군을 평정하고 응우옌 푹 아인은 황제에 즉위했다. 연호는 쟈 롱(嘉隆)으로 정했다. 푹 아인의 남쪽 발원지인 쟈 딘(嘉定)에서 북쪽 수도인 탕 롱(昇隆))에서 한 글자씩 딴 것으로, 통일의 의지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응우옌 푹 아인은 수도를 조상들의 고향인 푸 쑤언으로 정하고, 이름을 후에(Hue)로 개칭했다. 그리고 탕 롱은 나중에 하노이(河內)로 바뀌었다.

이로써 베트남은 찐(鄭)씨와 응우옌(阮)씨의 분열, 떠이 썬의 반란을 거쳐 300년만에 통일되고, 베트남의 마지막 응우옌 왕조가 시작된다. 응우옌 왕조(1802-1945)는 명목상으로 2차대전 종전 후인 1945년까지 132년의 숨 줄을 이어갔다.

응우옌 왕조를 창업한 푹 아인은 1802년 황제에 오르고, 떠이 썬 일당과의 전쟁에서 도움을 준 프랑스 사람들을 궁정에 두었고, 카톨릭에 대해서도 관용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들은 보수적으로 돌아서 유교주의에 입각해 서양 문물을 배척했다. 푹 아인을 이은 2대 민 망(明命), 3대 티에우 찌(紹治), 4대 뜨 득(嗣德) 황제는 카톨릭을 무섭도록 탄압하고 서양을 적으로 돌리는 쇄국정책을 썼다. 조선말기 대원군과 비슷한 정책을 취한 것이다.

베트남엔 17세기부터 카톨릭이 전파됐다. 주로 프랑스와 스페인의 신부들이 베트남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응우옌 왕조의 종교탄압이 심해지면서 19세기 중엽엔 배트남 중부인 안남(安南)과 북부 통킹(東京) 지역에서 30만명의 카톨릭 교도들이 배교해야 했다.

응우옌 왕조의 탄압은 반란으로 이어졌다. 2대 민 망 황제 때인 1833년 프랑스 신부의 교사로 레반코이 반란이 일어나 카톨릭 황제를 세운다는 명분으로 사이공(쟈 딘)을 점령하기까지 했다. 민 망 황제는 반란을 진압한 후 응우옌 왕조의 초석이었던 쟈 딘 성을 폭파시키고 유럽에서 온 선교사들을 처형하고 신자들을 탄압했다. 많은 카톨릭 신자들이 산악 지대로 도주했다. 이후에도 카톨릭 신자들의 산발적인 저항이 발생했다. 응우옌 왕조의 카톨릭 탄압은 프랑스에 침공 명분을 만들어 줬다.

하지만 프랑스가 베트남을 욕심 낸 것은 카톨릭 탄압 때문은 아니다. 그것은 명분일뿐, 실제는 인도차이나에 대한 식민지 팽창이 목적이었다. 프랑스는 중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베트남에 교두보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베트남 및 주변 캄보디아와 라오스도 중요한 시장이었으며 원료 공급지로도 주목되었다. 영국이 버마 남부, 믈라카, 페낭, 싱가포르를 식민지로 가지고 있었고, 태국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다는 것도 프랑스인들의 마음을 급하게 했다. 베트남에 대한 프랑스의 식민지 침탈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