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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위기
수하르토 항복문서 서명에 인도네시아 국민들 패닉…대규모 자금이탈
[1997 인도네시아③] 사진 한 장의 충격
2019. 08. 29 by 김현민 기자

 

1998115, 자카르타의 대통령궁. 수하르토 대통령이 침통한 표정으로 책상에 구부정하게 앉아서 무언가 쓰고 있었다. 옆에는 미셸 캉드시 IMF 총재가 팔짱을 끼고 선 채 노려 보았다. 32년간 인도네시아를 지배해온 76세의 독재자 수하르토는 IMF에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캉드시는 가슴이 없는 외교관이다. 금융위기에서 벗어나려고 IMF와 협상을 벌여본 나라의 지도자들은 캉드시라는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 그는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를 역임한 경력으로 국제 금융에 대한 이론적 토대는 단단한 사람이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정이 메마른 사람이라는 평을 지울 수가 없다.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식민지로 전락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인도네시아인들은 서양인들의 도도함을 잘 알고 있고, 그들에게 굴종한 과거를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그들은 식민지에서 해방된지 50년만에 또다시 과거의 모습을 보았다.

이날의 치욕적인 장면을 TV와 신문으로 지켜본 인도네시아 국수주의자들은 마음 속에 무엇을 느꼈을까. 그것은 외세 지배에 대한 분노였다. IMF가 파산 위기에 처한 나라에 자금 지원을 해주기로 하고 독립국을 이처럼 무참하게 짓누를 수 있단 말인가. 배고프게, 가난하게 살지언정 남의 지배를 받지 않고 살겠다는 것이 인도네시아인들의 자존심이었다. 네덜란드의 식민지 지배를 게릴라 활동으로 독립을 쟁취한 자존심 강한 민족이었다. 수하르토도 독립운동가 출신이다.

 

필자는 수하르토의 독재를 용납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수하르토가 물러나기까지 국제 자본과 이를 대표하는 IMF, 미국의 압력이 어떻게 작용했던가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식민주의가 청산됐다고 하지만, 세기말에 새로이 나타나고 있는 금융 제국주의가 새로운 식민주의를 창출하고 있다는 사실이 인도네시아에서 단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스페인군이 산사람의 피를 제물로 바치는 남미의 잉카족을 야만인으로 몰아붙이고, 카톨릭이라는 이질 종교를 이식시키려고 하다 끝내는 고대문명국가를 멸망시키고 식민화했던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인도네시아가 IMF에 저항하는 과정을 이해하려면 이날의 국치를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자존심의 상처는 IMF 처방에 대한 불신으로 나타났고, 수하르토는 인도네시아인들과 국제사회를 볼모로 정권적 차원에서 IMF에 항전했다.

뉴욕타임스가 이 점을 정확히 캐치했다. 1)

수하르토 대통령이 국제적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국민 대다수에게 고통을 줄 긴축 재정 패키지에 서명을 한 사진이 (언론을 통해) 널리 배포됐다. 데위 안와르라는 정치학자는 다음날 사람들이 무엇을 합의한지에 대해 전혀 이야기하지 않고, 사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우리 대통령이 저렇게 수모를 당해야 하는가라는 얘기였다. 이 정치학자는 인도네시아는 자부심이 강한 나라이며, 우리는 외부의 압력에 굴복하기보다 배고픈 것을 선택하는 민족이라고 말했다. 그후 수하르토 대통령은 (IMF와의) 합의 내용에 전면 반기를 들었고, 자신이 내세운 IMF 플러스정책을 밀고 나갔다.”

IMF 처방은 잉카족의 카톨릭처럼 처음부터 인도네시아에는 맞지 않았다. 이점을 IMF도 인정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비극은 19971031IMF로부터 43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받기로 한 날부터 시작됐다. IMF는 태국에 적용했던 것처럼 긴축 재정정책 금리 인상 부실 은행 폐쇄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 청산 등을 요구했다.

수하르토 정부도 처음에는 IMF 패키지를 충실히 따랐다. 수하르토는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독재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IMF 요구가 아무리 고통스럽다고 해도 밀어부칠 충분한 힘이 있었다. 그런데 IMF 처방의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던 게 문제였다.

 

1998년 1월 15일, 자카르타 대통령궁에서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미셸 캉드시 IMF 총재가 지켜보는 가운데 IMF 합의서에 서명하고 있다. /CNN 인도네시아
1998년 1월 15일, 자카르타 대통령궁에서 수하르토 대통령이 미셸 캉드시 IMF 총재가 지켜보는 가운데 IMF 합의서에 서명하고 있다. /CNN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정부는 199711IMF 요구대로 16개 금융기관을 폐쇄시켰다. 당시 국제 금융계에서는 인도네시아의 과감한 조치를 칭찬했다. 더욱이 인도네시아 정부는 수하르토 대통령의 아들이 소유하고 있는 은행마저 폐쇄했다. 수하르토의 아들은 거세게 저항했지만, 인도네시아 재무부는 권부 핵심마저 도려내는 노력을 보였다. 국제 금융계도 일시적이나마 인도네시아에 대한 낙관론을 기대했다. 2)

IMF1995년 멕시코에서, 1997년 한국과 태국에서도 단골 메뉴로 부실 은행 폐쇄를 요구했다. 이들 나라에서도 처음에는 반발이 있었으나, 고통이 지나간 후 약효가 있었다.

그러나 철저한 독재와 정경 유착이 지배했던 인도네시아에서는 은행 폐쇄가 오히려 독약으로 작용했고, 경제를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다. 자본주의 역사가 일천한 인도네시아는 은행을 폐쇄시킨 경험이 한번도 없었다. 민간 은행도 국가의 것이고, 은행이 부실하면 국가가 건져준다는 믿음이 사회 기저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최고 권력자의 아들이 운영하고 있는 은행도 문을 닫지 않는가. 이런 판에 건실한 은행마저 폐쇄시키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예금주들 사이에 이런 불안감이 팽배했다.

국내외 예금자, 투자자들은 IMF와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돈을 해외로 빼돌렸다. 그들은 은행에 돈을 넣어둘 수 없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달러는 여전히 빠져나갔고, 루피아화는 바닥을 모른 채 떨어졌다. 해를 넘겨 18일 루피아 환율은 1달러당 1만을 돌파했다. 6개월전 1달러당 2,500 루피아였던 환율에 비교하면 루피아는 4분의1 값으로 폭락한 것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더 이상 IMF 처방을 따를 수가 없었고, 은행 폐쇄를 중단했다. IMF는 은행 폐쇄가 인도네시아 위기를 악화시켰음을 내부 비밀 문건을 통해 자인하고 있었다.

뉴욕타임스는 18981월초에 작성된 IMF 비밀 보고서를 인용, IMF의 은행 폐쇄 요구가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했다. 3)

보고서는 인도네시아인들이 은행 폐쇄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한 워싱턴 IMF 본부의 오판이 인도네시아의 정치적 마비 상태를 복잡하게 했다. 은행 폐쇄가 (인도네시아의) 신뢰도를 제고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금융시스템을 오히려 붕괴시켰다. 예금자들은 비교적 건실한 금융기관에서도 돈을 인출해 빠져나갔고, 이미 상처난 통화를 바닥으로 가라앉혔다.”

 

IMF는 회원들에게 비밀리에 돌린 문건에서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었으나, 대외적으로는 문제의 책임을 전적으로 수하르토에게 돌렸다. IMF는 수하르토 정부가 4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은 후에 합의된 경제 개혁을 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가 침몰하고 있다고 몰아붙였다. 수하르토 정부는 IMF 처방이 맞지 않는다며 저항했고, 국제 시장의 투자자들은 IMF의 편에 서서 루피아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IMF 비밀 문건은 스스로의 모순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다음은 뉴욕타임스지가 입수, 보도한 IMF 보고서의 요약이다. 4)

인도네시아 경제의 전환점은 수하르토 아들이 가지고 있는 은행을 포함, 16개 은행을 폐쇄한 때였다.

IMF 경제학자들은 부실 금융기관을 폐쇄하면 썩은 사과를 버리듯 경제의 신뢰도를 높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달러가 다시 들어올 것으로 믿었다.

은행 폐쇄는 의도한 것과 달리 상황을 패닉 상태로 몰아 넣었다. 은행 폐쇄는 (자금이) 보다 안전한 곳으로 도피케 했을 뿐이다.

인도네시아인들은 은행 폐쇄를 우려, 문을 닫을 가능성이 없는 은행에서도 돈을 빼냈다. 그 규모가 20억 달러에 이른다. 일부는 빼낸 돈을 국영 은행에 돈을 넣었다. 국영 은행은 안전한 곳으로 인식됐다. 11월말까지 예금인출 사태(bank run)를 겪은 은행은 전체의 3분의2나 된다.

중앙은행은 연쇄 은행 도산을 막기 위해 두달(11~12) 동안 GDP5%에 해당하는 돈을 은행에 퍼부었다. (편집자주: 중앙은행이 루피아를 찍어 은행을 지원했기 때문에 루피아 하락을 가중시켰다.)

은행을 구제하려는 (중앙은행의) 충격 처방은 다른 금융 문제를 야기했고, 루피아 하락을 부채질했다.

 

통화(루피아) 방어를 위해 중앙은행이 쓸 수 있는 가장 무서운 무기는 금리다. 그런데 중앙은행은 금리를 높일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예금인출로 금고가 텅빈 은행들을 지원하자니 돈을 찍어내야 했다. 통화 팽창은 금리 인하와 동의어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에서는 중앙은행이 IMF 처방대로 은행 폐쇄와 금리 인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고 동분서주했다.

중앙은행은 갈팡질팡했다. 하루는 루피아 방어를 위해, 그 다음날은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해, 상이한 조치를 내렸다. 상호 모순된 정책을 취하다보니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가 더 떨어졌다. IMF는 이런 사실을 꿰뚫고 있었다. IMF 비밀 문건은 일관된 경제정책을 집행할 여건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중앙은행의 정책 방향이 더 시급한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고 적었다.

수하르토 정부는 딜레마에 빠졌다. IMF 이행조건을 수용하자니 경제는 가라앉고, 따르지 않자니 국제 사회의 여론이 무서웠다.

기업들은 돈을 달라고 아우성인데, IMF 지원금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했다. IMF 자금은 기업 지원에 쓰지 못하도록 못이 박혀 있는데다 빠져나가는 달러를 메우기에도 급급했다. 인도네시아 신문과 TVIMF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했다. IMF와 미국 재무부는 인도네시아가 족벌 경제를 청산하고 시장경제로 나가는 길만이 위기에서 극복하는 길이라는 앵무새 같은 답변만 반복했다. 잉카족에게 카톨릭을 믿으면 천당에 간다고 하는 말이나 다름없다.

 


(:1) NYT, 98310Crisis aside, What pains Indonesia is the humiliation

(:2) NYT, 98120Indonesia begins the rescue and consolidation

(:3) NYT, 98114IMF now admits tactics in Indonesia deepened the crisis

(:4) 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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