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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로마 유력자들이 말년을 온천수와 함께 보내던 곳…원형극장, 공동묘지 등 보존
로마제국의 신성한 도시, 히에라폴리스
2019. 09. 10 by 김현민 기자

 

터키 서남부 파묵칼레에서 발굴된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Hierapolis)는 이름 그대로 신성한 도시다. 원형 극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조밀한 주거지역, 거대한 공동묘지는 대지진이 도시를 붕괴시키기 이전에 고대인들의 삶을 그대로 조영시켜 주었다.

도시 이름 히에라폴리스는 성스럽다는 히에로스’(holy)와 도시를 의미하는 폴리스’(city)의 합성어로, 신성한 도시라는 의미다. 고대인들은 지하에서 흘러나오는 유독성 물질에 놀라움을 표시하며 그 광물질에 의해 정신적, 육체적 치료를 받았던 곳이다. 로마 시대에는 유력자들이 말년에 이 곳 온천에 몸을 담그며 치유하다가 조용히 생을 보내는 곳이었다. 덕분에 대규모 공동묘지가 발달되어 있다.

이 고대도시는 지정학적 의미로 그다지 중요성을 갖지 않았다. 로마 제국의 평화기에 자연광천이 주는 매력이 대도시를 형성했다.

 

히에라폴리스의 원형극장 /김현민
히에라폴리스의 원형극장 /김현민

 

도시의 시작은 고대에 패권을 다투던 그리스나 히타이트, 페르시아가 아니었다. BC 7세기경 프리기아(Phrygia)라는 소왕국이 주요 도시의 하나로 건설했다. 그후 BC 2세기경에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정복되어 알렉산더 부하였던 셀루코스 왕의 지배를 받았다.

 

BC 130년경에 로마가 이 지역을 접수해 본격적으로 로마의 도시로 발전했다. 로마 제국은 이 지역의 온천에 주목했다.

로마는 이곳에 원형극장, 아폴로 신전, 공동묘지, 온천욕장 등 귀중한 문화유적을 남겼다. . 원형극장은 최대 1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으며,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방문을 기념해 만들었다고 한다.

남쪽과 북쪽에 위치한 두 개의 거대한 공동묘지에는 1,200기의 무덤이 남아 있다. 네크로폴리스(Necropolis)라는 공동묘지에는 지금도 수많은 석관들이 뚜껑이 열리거나 파손된 채 여기저기 널려 있다.

테르메라고 하는 온천욕장은 온욕실과 냉욕실은 물론 스팀으로 사우나를 할 수 있는 방, 대규모 운동시설, 호텔과 같은 귀빈실, 완벽한 배수로와 환기장치까지 갖추고 있었다.

온천수의 치유력은 거대한 온천수 분지와 수영장 등 다양한 온천 시설을 통해 활용되었다. 물을 이용한 치료법이 지역 신앙의 맥락에서 발달한 종교 관습과 더불어 생기기도 했다. 아폴로 신전이 유해한 증기가 발생하는 단층 위에는 세워져 두려움을 신성함으로 변형시켰다.

 

히에라폴리스의 네크로폴리스(공동묘지) /위키피디아
히에라폴리스의 네크로폴리스(공동묘지) /위키피디아

 

기독교 사도 빌립보(Philip)가 이곳에서 기독교 포교활동을 하다기 서기 87년경에 도미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이곳에서 십자가형을 당했다고 한다. 기독교 주교구였으며, 기독교 건축물로는 대성당, 세례당, 교회 등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건축물은 순교자 성 빌립보 기념 성당(martyrium of St Philip)이 있다.

 

사도 빌리보의 무덤 /위키피디아
사도 빌리보의 무덤 /위키피디아

 

로마 시대에 이곳은 아나톨리아인, 마케도니아인, 로마인, 유대인들이 뒤섞여 지내는 국제 도시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 온천으로 와서 물을 가져갔는데, 이 물은 양모를 씻고 염색하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번성했을 때 히에라폴리스의 인구는 10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유독가스가 배출되고 있는 플루토의 문 /위키피디아
유독가스가 배출되고 있는 플루토의 문 /위키피디아

 

서로마가 멸망한 후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히에라폴리스는 번영을 구가했다.

하지만 비잔틴 제국이 쇠퇴하면서 7세기초에 페르시아 군의 공격을 받아 파괴되었고, 그후에 잦은 지진으로 파괴와 복구를 거듭했다.

11세기 후반에 셀주크 투르크의 지배를 받으며 파묵칼레라는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1354년 이 지방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도시가 폐허로 변해 버렸다. 2000년 가까이 존속했던 도시는 석회암에 묻혀 사라졌다.

1887년 독일 고고학자 카를 후만(Carl Humann)이 발굴과 복원 작업을 시작했다. 20세기 들어 관광객 유치를 위해 호텔이 지어지면서 자연 훼손이 심각해졌다. 1957년 이탈리아 과학자들에 의해 재발굴 작업이 진행되어 2008년에 마무리되었다.

198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히에라폴리스의 수차 활용 제재기계 모형도 /위키피디아
히에라폴리스의 수차 활용 제재기계 모형도 /위키피디아

 

특히 히에라폴리스에는 수력을 활용한 제재소가 발굴되었다. 물의 힘으로 수차를 돌리고, 기어와 크랭크를 이용해 톱을 움직여 나무를 잘라내는 기술이다. 이 기계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아미아노스(Marcus Aurelius Ammianos)라 불리는데, 인류 초기의 기계장치로 간주되고 있다. 제직 시기는 3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히에라폴리스의 이모저모 /김현민
히에라폴리스의 이모저모 /김현민
히에라폴리스의 이모저모 /김현민
히에라폴리스의 이모저모 /김현민
히에라폴리스의 이모저모 /김현민
히에라폴리스의 이모저모 /김현민
히에라폴리스의 이모저모 /김현민
히에라폴리스의 이모저모 /김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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