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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이름을 남기려던 인간의 허영에 의해, 기독교인의 이단 배척에 의해 붕괴
인간에 의해 파괴된 아르테미스 신전
2019. 09. 12 by 김현민 기자

 

고대국가의 거대한 신전 모두가 인간이 만든 걸작품이다. 신전을 짓는 주인공도 인간이요, 신전을 파괴하는 자도 인간이다.

터키 남서부 셀축(Selçuk)에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라는 아르테미스 신전(Temple of Artemis, 또는 Artemision)이 있다. 당대 최대였다는 신전은 무너지고, 127개였던 기둥들 중 하나만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그 불가사의한 신전을 파괴한 자는 누구였던가. 바로 크리스챤이었다.

 

아르테미스(Artemis)는 제우스가 티탄족 여신인 레토와 낳은 쌍둥이 중 한명이다. 쌍둥이 오빠는 태양의 신 아폴론이고, 아르테미스는 달의 여신이다. 아르테미스는 사냥과 야생동물의 신이기도 하며, 출산을 돕는 신이기도 하다.

터키 셀축은 그리스·로마 시대에 에페수스(Ephesus)였는데, 에페수스인들은 아르테미스를 주신으로 모셨다.

신전은 세 번 지어졌다. 첫 번째 신전은 홍수 무너졌고, 두 번째로 지은 신전은 허명에 가득찬 미치광이의 방화로 붕괴되었고, 3번째로 지어진 신전은 달랑 기둥 하나와 신전의 토대와 조각 파편만이 남아있다.

 

터키 셀축의 아르테미스 신전 유적지 /위키피디아
터키 셀축의 아르테미스 신전 유적지 /위키피디아

 

첫 번째 신전은 청동기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신전은 고대 아마존족이 지었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건립 시기는 알수 없고, BC 7세기에 홍수에 의해 파편 한점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파괴되었다.

두 번째 신전은 첫 번째 신전이 파괴된후 100년이 지난 BC 550년에 리디아(Lydia)의 크로이수스(Croesus) 왕이 자금을 대고 크레타 출신의 케르시프론(Chersiphron)과 그의 아들 메타게네스(Metagenes)가 건축했다. 그 계획에 10년이 걸렸다.

두 번째 신전은 헤로스트라투스(Herostratus)라는 미치광이의 방화(放火)에 의해 무너졌다. 그의 신분에 관해 알려진 게 없다. 방화범은 에페수스인이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며, 노예였다는 설이 있다. 그는 다만 자신의 이름이 길이 남을 방법을 찾다가 아르테미스 신전을 불태우기로 했다. 신전의 지붕은 나무로 되어 있었다. 그는 불을 질러 신전을 태우고 붕괴시켰다. 즉시 에페소스 당국에 체포되어 형틀에 고문을 받다가 죽었다. 재판관들은 허명심에 불탄 그를 저주하기 위해 아무도 그의 이름을 언급하지 말라고 명했다.

하지만 테오폼푸스(Theopompus)라는 역사가가 자신의 역사서에 그의 이름을 기록했고, 그후에도 사가들이 그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페로스트라투스는 자신의 뜻대로 이름을 길이 역사에 남기게 되었다. 이로부터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는 현상을 일컬어 헤로스트라투스 명성( herostratic fame)이라는 용어가 생기게 되었다.

 

두 번째 신전에 관해 기록이 남아 있다. 그리스 시인 안티파트로스(Antipatros)7대 불가사의를 서술하면서 아르테미스 신전을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전차(戰車)를 위한 길이 있는 바빌론의 높이 치솟은 성벽을 보았고, 알페우스가 세운 제우스 신상(神像), 공중정원, 태양의 거상과 수많은 노동력으로 지은 높은 피라미드와 거대한 마우솔로스의 묘를 봤었다. 그러나 내가 구름 위에 치솟은 아르테미스의 집을 보았을 때, 그들 다른 불가사의들은 그 빛을 잃었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보라, 올림푸스를 빼면, 어떤 장대한 것에도 태양이 비추지 아니하였구나.’”

두 번째 신전이 방화로 붕괴된 날은 BC356년이었고, 그날은 우연하게도 마케도니아에서 알렉산더 대왕이 탄생한 날이었다고 한다.

 

아르테미스 신전 모형 (터키 이스탄불 미니아투르크 공원) /위키피디아
아르테미스 신전 모형 (터키 이스탄불 미니아투르크 공원) /위키피디아

 

에페수스인들은 세 번째 신전의 건립을 추진했다. 알렉산더 대왕이 에페수스를 점령하고 자신이 돈을 내서 신전을 세우겠다고 제의했다. 자존심 강한 에페수스인들은 재빠르게 대왕의 제의를 거절했다. 그들은 알렉산더가 죽은 후에 자신들의 돈으로 신전을 건립했다.

세 번째 신전은 BC323년에 착공해 완공에 이르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이 신전은 두 번째 신전보다 컸으며, 아테네에 경쟁심을 갖던 에페수스인들이 파르테논 신전보다 더 크게 지었다.

길이 137m, 너비 69m에 높이 18m였으며, 기둥 수만 127개였고, 건물 전체를 대리석으로 지은 당대 최대 신전이었다.

세 번째 신전은 600여 년을 살아 남았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신성한 곳으로, 죄수들이 도망쳐도 관원들이 체포하지 못하는 곳이었다.

 

아르테미스 신전 그림 (16세기, Martin Heemskerck) /위키피디아
아르테미스 신전 그림 (16세기, Martin Heemskerck) /위키피디아

 

하지만 기원후 기독교인들이 소아시아반도로 진출해 오면서 종교적 마찰이 빚어졌다. 기독교도들은 하느님 이외의 신을 믿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 아르테미스 여신은 이교의 신이었다. 신약 성서에 에페수스(한글 성경에는 에베소)의 아르테미스 신전에 관한 내용이 몇차례 등장한다.

사도행전(1921~41)에 아르테미스 신전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에베소(에페수스)에서 사도 바울이 우상숭배를 금하는 설교를 하자, 아르테미스 신상모형 장사로 부를 쌓던 은장색 데메드리오가 바울이라는 그리스도교 선교사가 사람이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고 설교를 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위대한 아르테미스 여신을 숭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업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라고 직공들과 시민들을 선동했다.

때문에 바울과 같이 선교활동을 하던 마케도니아 사람 가이오, 아리스다고가 연극장에 잡혀갔고, 2시간이나 아르테미스를 찬양하며 바울이 전하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배척하는 집회가 벌어졌는데, 시의 지도자인 서기장이 시민들에게 항의할 것이 있으면, 총독들과 민회에 고소하여 시비를 가리십시오. 불법집회를 일으키는 것은 책망받을 것이니 신중하지 못합니다.’라면서 이성을 되찾아서 진정하도록 설득했다.“

2세기 작품인 요한행전(Acts of John)에도 아르테미스 신전의 파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도 요한이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공개적으로 기도하매, 그 악령을 몰아내고 갑자기 신전의 제단이 여러 조각으로 부서지고... 신전의 반이 무너졌다. 그리하여 비탄에 잠겨 있던 에페소스 사람들이 즉시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한다.”

 

서기 268, 신전은 게르만족의 일파인 고트족(Goths)에 의해 약탈되고 파괴되었다. 하지만 신전이 얼마나 파괴되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그 뒤에 신전이 수리되어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서기 313년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아르테미스 신전은 이교도의 신전으로 배척당하고, 신전 활동도 종식된다. 그후 신전의 보존 상태에 대한 기록이 없다. 기독교를 국교로 선택한 로마 제국은 그리스 신전을 방치했고, 아르테미스 신전의 훌륭한 대리석들이 하나씩 뜯겨 나갔다. 신전의 석재는 다른 건물의 건축에 사용되었다. 콘스탄티노플의 성 소피아 사원 기둥 일부는 아르테미스 신전의 것이었다. 일부는 셀축의 아야술루크 언덕의 성 요한 성당의 석재로도 사용되었다.

 

잊혀졌던 아르테미스 신전은 대영박물관의 후원을 받은 존 터틀 우드(John Turtle Wood)가 이끄는 탐사대가 6년의 탐색 끝에 1874년에 재발견되었다.

 

에페수스 고고학박물관의 아르테미스 여신상 /위키피디아
에페수스 고고학박물관의 아르테미스 여신상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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